그냥그냥

2020.08.16 10:34

어디로갈까 조회 수:528

곧 비가 쏟아질 듯한 하늘을 곁눈으로 흘깃거리며 맥주 한 캔을 땄습니다. 몇달 만에 접하는 알콜이에요. 이 시원함이 위 안에서 밤샘 작업의 고단함을 달래줄 거라는 기대는 없으나 세포들의 미세한 휘청거림은 흡족합니다.
(뻘덧: 형부가 결혼 전 우리집에서 첨 일박했던 날,  아침에 제가 눈 비비며 일어나더니 물 대신 맥주 한 캔을 원샷하는 꼴을 보고 문화충격을 받았다던 게 생각나네요.  그보다 아버지가  더 잘 '히야시'된 맥주로 바꿔주며 오구오구~ 내 새끼 시원하지? 라는 모습을 보고 숨멎 했었다고. - -)

몇달 만에 제 아파트로 돌아오니 까마귀들의 까악대는 외침이  도드라져 들려요. 베란다 창을 열면 흰 깃털과 검은 깃털이 엉터리로 디자인된 새들이 이차선 도로 위까지 낮게 날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비의 비릿한 냄새를 맡은 저 최종 진화물이 지구의 이상 기류를 느끼는 중인 걸까요? 지구의 개체들이 서로 접속헤 만드는 '연합환경'에 대해 골똘해지느라  또 맥주 한 캔을 땁니다.  
까악~ 대는 새소리를 들으며 인간이 새의 감각을 알 수는 없는 거구나 라는 안타까움에 잠겨 있습니다. 당연한 거겠죠. 같은 종인 타인의 감각도 잘 읽지 못하는데 다른 종의 감각을 어떻게 읽어내겠어요.

여긴 김포공항 근처라 (지금은 무뎌진) 뱅기가 나는 소리가 친숙한 곳이에요. 방금 전, 우웅~ 하는 비행소음에 까마귀와 이름 모를 새들이 감각의 촉을 날카롭게 세우고 까아악~ 조잘조잘 응답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인간인 저로서는 흉내낼 수 없는 불가능한 감각이라 환경에 반응하는 저 선율이 놀랍고 신기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새들에게  휘파람을 불거나 주술을 걸어보거나 찬탄의 한숨을 내쉬는 것 정도인데, 뭐 다 부질없는 짓이죠. 저로서는 불가능한 감각이 내는 환경적 선율이 부러울 뿐입니다. 
아서 클라크였나요? 인간의 의식은 우주의 초의식으로 점프하기 위해 준비된 전능한 작인의 옵션이라고 주장했던 이가. (곰곰)

'생명은 '연합환경' 속에서 새의 감각으로 저 하늘을 하늘답게 풀어놓는다'는 게 과학자들의 논리지만, 우주의 논리는 불완전한 인간에게 의식이라는 성가신 부대현상-  마치 양자도약처럼 치명적인 이동을 위한 플랫폼-  이 있다는 걸 여러 모습으로 암시해주는 것 같습니다. 
의식을 깨뜨리기 위해 전두엽도 공격하고 뇌량도 절단해왔던 해부학 영상 기록을 본 적이 있는데,  아무튼 의식이란 것이 왜 포스트휴먼에서,  아니 포스트휴먼에 이르러야 하는가 라는 중요한 질문에 대해 새삼 생각해보는 아침입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34760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54101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64517
113542 가장 최초의 기억 & 세상 어디에 던져놔도 벌어먹고 살 수 있는 직업 [17] 달려야하니 2014.05.18 4044
113541 돌아온 음란도 테스트. 난이도는 하. [13] chobo 2013.02.14 4044
113540 오늘 셜록2 [59] 보이즈런 2012.02.04 4044
113539 <치즈인더트랩> 2부 30화 불청객(2) [13] 환상 2012.01.12 4044
113538 으하하, 옥수역 귀신이 포털 검색어 상위권입니다 (스포 있습니다) [12] 라곱순 2011.07.21 4044
113537 [유튜브] 해맑은 한국의 중학생들 [12] Nemo 2010.09.17 4044
113536 포화속으로 어쩔... [3] 아.도.나이 2010.06.20 4044
113535 가장 힘든 건 아이가 있는 맞벌이 기혼여성이죠. [53] 엘시아 2013.04.16 4043
113534 의무감으로 보게 된 에미넘의 내한 공연 잡담 [6] 질문맨 2012.08.20 4043
113533 블랙코미디 영화 추천좀 해주세요 [19] 엄마 2012.08.08 4043
113532 무한도전/조작과 연출의 경계는 어디에 있을까요. [8] 유빅 2012.01.29 4043
113531 부산 벽화마을에 대한 불편한 시선 [13] chobo 2011.12.06 4043
113530 [가정] 만약 박원순이 패배한다면.. [20] 파라파라 2011.10.16 4043
113529 여러 가지... [18] DJUNA 2010.12.28 4043
113528 존박은 애국가 부를때 주머니에 손 넣고 있었다고 까이고 [14] 달빛처럼 2010.10.04 4043
113527 Jtbc 이승현군아버지 동영상 [9] anonymous1111 2014.04.27 4042
113526 [역시 임성한, 죽지 않았네요] 오로라 공주 1회 각종 섹드립.swf [8] 黑男 2013.05.22 4042
113525 가계부 어플 어떤거 쓰세요? [10] 바다속사막 2011.02.03 4042
113524 [대물] 작가 교체-_-^ [11] 아.도.나이 2010.10.14 4042
113523 토론토 국제 영화제 '렛미인' '악마를 보았다 무삭제판' [1] 코그니션 2010.09.14 4042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