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태풍클럽

2024.07.10 17:13

Sonny 조회 수:237

@ 평어체로 씁니다. 양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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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서 태풍이 몰아치자 나는 궁금해졌다. 왜 아이들은 집에 가지 않는가? 태풍이 거세서 그렇다는 건 이상한 답변이다. 아무리 비를 맞고 바람에 고생해도 집에 가서 씻고 교복을 빨고 쉬는 게 훨씬 더 편하다. 아이들이 태풍 앞에서 머뭇거리는 건 태풍 때문이 아니다. 이것은 집, home의 문제일수도 있다. 안그래도 집에 가기 싫은데 태풍이라는 편리한 변명거리가 생긴 것이다. 아이들은 태풍이 잠시 잠잠해졌을 때도 집에 가지 않는다. 굳이 학교에서 밤을 지새운다.

home은 좋거나 싫거나의 문제가 아니다. 있거나 없거나, 즉 존재의 문제다. 아이들에게 돌아갈 곳이 없다면 어떻게 되는가. 태풍이 오자 학교에서 머무르는 미카미 일행과 도쿄로 가출한 리에의 모험이 동시에 진행되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행선지가 다를 뿐 [태풍클럽]의 아이들은 모두 일시적 가출상태다. 집에 돌아가는 것을 유보할 수 밖에 없는 무언가가 이들에게 있다. 이 영화의 도입부에서 여자아이들이 학교 수영장에서 음악을 틀고 노는 장면은 영화가 진행될 수록 의미심장하다. 처음에는 그저 귀여운 자기들끼리의 파티처럼 보였던 것이 더 이상 단순해보이지 않는다. 밤중에 일부러 학교에서 모여 노는 학생들이 어디 있는가. 친구 집을 가거나 아니면 다른 곳을 쏘다니는 게 훨씬 나은 선택이다.

영화 속에는 총 세 명의 집을 엿볼 수 있다. 시간순으로 짚어보면 가장 모범생처럼 보이는 미카미의 집이 보인다. 그에게는 도쿄대생인 형이 있고, 형의 말에서만 등장하지만 따분한 철학을 이야기하는 아버지도 있다. 미카미네 집은 상당히 유복해보인다. 겉으로 봤을 때는 별 문제가 없어보인다. 그 다음으로는 켄의 집을 볼 수 있다. 다녀왔습니다, 이제 왔니? 라고 혼자 상황극을 하는 켄은 불안정하게 보인다. 술에 취한 켄의 아버지가 잠깐 나오지만 어떤 교류도 없이 그냥 켄 일행을 지나간다. 그리고 리에의 집이 있다. 리에는 엄마를 찾으며 방에 들어가보지만 아무도 없다. 이들의 집에서 부모와 일반적인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아예 보이지 않는다.

영화속에서 부모가 부재한 장면이 단지 아이들에게 집중한 탓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영화가 명확히 보여주는 어른인 우메미야 선생에 초점을 맞춰서 볼 수도 있다. 영화는 이상할 정도로 그를 집중해서 보여주는데, 그가 집에서 널부러져 자신의 여자친구에게 투덜대는 장면을 길게 보여준다. 그에게서는 딱히 책임감이나 아이들과의 유대감은 보이지 않는다. 이후 미카미가 태풍이 몰아치는 날 학교에서 그에게 전화를 했을 때도 우메미야의 무책임함은 그대로 확인된다. 이 영화 속에서 아이들은 그 어떤 어른의 보호도 받지 못한 채로 방치되어있다.

[태풍클럽]의 태풍은 그냥 아이들의 일탈이 아니다. 거기에는 돌아갈 집이 없고 아이들을 지켜주는 어른이 없다는 위험천만의 방치 상태에서 맞닥트리는 외부의 에너지다. 그러니까 '학교'라는 공간에 모인 아이들의 상태를 다른 식으로 생각해보게 된다. 이들이 불안을 감지하고 본능적으로 자기들끼리 무리를 짓기 위해 학교에 모인 것은 아닐까. 학교는 '무리'를 전제로 하는 곳이다. 토요일 방과 후 이들은 남겨진 것에 가깝지만 그 모여있는 상태를 굳이 해체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들이 폭풍우 속에서 무리를 지어 찾아낸 최후의 안식처가 학교라면 그 땐 어떡할 것인가.

이것이 태풍과 만난 일시적 현상이라기엔 영화 처음부터 여자아이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이 일련의 사건은 태풍 때문에 생긴 변덕이 아니고 아이들은 처음부터 억눌려있었다고 봐야할 것이다. 태풍을 만난 아이들의 나체 춤판은, 이 내부 에너지가 태풍이라는 외부 에너지를 만나서 생긴 결과에 더 가까워보인다. 태풍 전에도 어떤 에너지들이 여기저기서 작게 분출되며 맴도는 현상들이 보인다. 우메미야 교사에게 신부 측 가족이 쳐들어와서 날뛸 때, 토요일 수업시간에 우메미야에게 해명을 해주라며 미치코가 항의할 때 에너지가 몰아친다. 특히 미치코가 항의할 때 저마다 항의하며 세 그룹 정도가 그 안에서 서로 싸우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야말로 통제불가의 상황처럼 보인다. 우메미야가 체육관으로 학생을 찾으러 갔을 때 야구부와 농구부가 그 안에서 서로 뛰어다니는 모습 또한 화면 속에 에너지가 느껴진다. 태풍은 외부에서 찾아온 에너지 덩어리일 뿐 그 내부의 에너지 역시 계속 소용돌이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왜 자기들끼리 춤을 추다가 태풍을 직접 맞이하러 가는 것일까. 이 의식이 단순한 장난처럼만 보이지 않는 이유는 이것이 일련의 자해에 더 가까워 보이기 때문이다. 현기증을 극복하는 방법이 떨어져버리는 것처럼, 아이들이 학교 안에서도 끝내 그 불안을 억누르지 못해 스스로 태풍의 일부가 되기로 한 선택은 아닐까. 불안과 소외를 극복하고싶은 그 에너지는 학교에서 얌전히 있는다고 해소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것을 다 뿜어내야한다. 춤을 추고, 옷을 벗고, 마침내 태풍 속에 뛰어들어서 아주 재미있는 무언가를 하고 있다고 몰입해야한다. 외부의 거대한 에너지에 휩쓸려서, 원초적 상태로만 돌아가야만 잊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자신들을 완전히 내버려두는 어른과 사회 그 자체는 아닐까. 너희들이 우리를 신경도 쓰지 않겠다면, 그 신경쓰지 않음을 마음껏 누려주겠다는 결심이 휘몰아친다.

그렇지만 이것은 투정이나 애정갈구의 다른 감정이 아니다. 아이들은 그 어떤 어른도 찾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 미치코가 우메미야에게 해명을 요구했다가 묵살당했을 때, 우메미야가 리에를 찾지 못하고 다른 아이들이 학교에 있는지도 몰랐을 때, 태풍 속 학교에서 미카미가 우메미야에게 전화했다가 실망했을 때 끝장난 감정이다. 어른, 사회와 단절된 채 아이들은 붙잡는 사람이 없는 연과 풍선처럼 태풍 속을 사정없이 오간다. 어쩌면 그 태풍은, 버려진 것만이 실감할 수 있는 막다른 곳의 자유일 것이다.

수많은 이야기를 생략하고 마지막을 이야기해야할 것 같다. 미카미는 왜 죽었는가. 학교에서 제일 얌전하고 늘 앉아만 있던 그가 마침내 그 아이들과의 태풍에 기꺼이 휘말렸을 때, 그는 절망을 완전히 이해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이 무관심한 세계에서 계속 그렇게 성장할 것이고 그는 우메마야 선생처럼 무기력하고 그 어떤 책임도 없는 어른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고. 다른 아이들이 태풍 속에 들어갔다가 나왔을 때 미카미는 여전히 그 태풍의 에너지를 안에 담고 있다. 그렇게 그는 스스로 태풍이 된다. 그러나 낙하하는 에너지만을 담고 땅에 처박힌다. 쩍 벌어진 다리는 자신을 버린 채로 두는 세상에게, 내가 나 자신을 스스로 버려주겠다며 보여주는 V 사인처럼도 보인다.

영화는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도쿄로 가출했던 리에는 일요일이 아니라 굳이 월요일에 곧바로 지하철을 타고 돌아와 등교한다. 아키라는 해맑게 웃으며 등교하다가 리에를 만났다. 미카미가 죽은 걸 전혀 모르는 채로 이 두 아이는 학교에 간다. 태풍이 몰아칠 때 학교에 없었던 유이한 두명이 뒤늦게 학교에 가는 셈이다. 이 아이들은 굳이 운동장 가운데의 물웅덩이로 들어간다. 아직 그 태풍을 겪지 못해서일까. 이것은 불길한 상상을 건드린다. 수많은 청소년들이 아직 태풍을 만나지 못했을 뿐이라면, 그리고 제대로 태풍을 만난다면 어떻게 될까. 그 중 몇몇은 미카미처럼 세상을 향한 승리를 온몸으로 태풍처럼 외치게 되지 않을까.


@ 푸른 산호초가 영화에서 나와서 괜히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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