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이야기 하나


 꽤 오래된 일입니다.

 한국 회사에서 상해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를 위해 2주일 정도 팀장으로 스탭들과 함께 여러번 출장을 다녀오곤 했는데

 마침 스텝 3명이 모두 여성인 경우가 있었어요.   

 그나마 그 중 두 명은 마무리되는 시점에 한국으로 돌아갔고 맡은 업무상 끝까지 남아야 했던 한 명과 저만 남게 되었는데

 보스가 그 프로젝트와 별개의 일정이 생겨서 몇몇 임원과 함께 상해로 오게 되어 만나게 되었습니다.

 현지 사무소에서 합류하여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식사를 하려고 이동중에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보스가 뜬금 없이 “A야 조심해 남자는 다 늑대야”  라는 말을 하더군요; (A는 당시 마지막까지 남았던 여성 스탭)

 어이 없는 ‘농담’ 에 피식 웃어 넘기고 잊어버렸는데  A는 좀 달랐나 봅니다.


 그 다음날, 둘만 따로 밥을 먹는데 어제 그 보스의 ‘농담’을 거론하더군요.

 “X소장님께선 왜 그런 말을 하셨을까요...”  (우리 업계에선 보스를 ‘소장님’이라고 부릅니다. 공식 직책이야 대표이사지만 클라이언트측에서도 그리 불러요)

 그 자리에선 안절부절 못하고 꾹 참고 있다가 저한테 당시 불쾌했던 마음을 그렇게 조심스럽게 드러낸 거였어요. 


 평상시라도 뻘 농담이었을텐데 이국땅에서 남녀 단둘이 출장 업무를 진행중이었던 상황 (전 당시 유부남 팀장, A는 미혼에 이제 대학원 졸업하고 실무 1년차)

 에서 민감하게 느껴질 수 있는 언어폭력이었던거죠.  

 전 그 썩은 농담에 대 놓고 피식 웃었는지 깔깔대며 웃었는지 잘 기억 안나지만 -남자여서, 그리고 소장님과 허물없는 관계여서 즉 A가 갖고 있지 못한

 안전한 권력이 있어선지 그게 가능했는데, A는 자신이 느낀 불편함을 당사자 앞에서 조금도 내비치지도 못한거에요. 

 지금이라면 성희롱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발언을 그 당시 보스가 했다고 생각해요. 

 물론 아직도 전혀 문제거리가 안되는 조직이나 기업이 여전히 있기도 합니다. 

 문제는 용기를 내어 작심하고  따지면 범죄가 되어 처벌을 받을 수 있는 일들이 오래전부터 우리 주변에는 차고 넘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박원순도 위에 말한 X소장같이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다고 해서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박원순으로 하여 A 같은 상처를 얻게된 사람이 생긴다는 것 역시 말이죠.

그런 낡은 잔재가 온몸에 베어 있고 그 잔재를 지적하고 제지하기 어려운 위치에서 너무 오래 있었던 거죠.


 

 박원순 서울시장의 위력에 의한 성폭력 의혹사건에서 

 내가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런거에요. 

 박원순은 본인 스스로 인지 못하는 여러 문제 행동을 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박원순정도 되는 사람까지 그렇다는 것도 문제지만 주변에서 아무도 그것을 지적하지 않았고 제지하지 못했다는 것 역시 더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욱 더 이번에 그냥 넘어가면 안됩니다.   굉장히 많은 박원순이 살아서 돌아 다니고 있을 가능성이 높거든요.  그것도 감히 누구도 지적하고 제지하지 못하는 권력을 갖고서 돌아다니는 사람들 말이죠.   그런 사람들이 문제가 불거졌을때 비로서 X 되었다고 느끼게 만들게 아니라 아 저러면 X 되는 거구나! 라고 깨닫게 만들어야 합니다.


또 그 보다 오래된 이야기 

저도 매우 가까운 사이였던 측근의 절친 B겪었던 이야기에요.  아마 지금도 세상에서 저를 포함해 세사람 정도만 알고 있는 사건일거에요.

당시 90년대초 전국단위 학생운동 조직의 상급자X가 B를 강간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입니다.  다행히 B 의 기지로 별 다른 상해 없이 대화로 상황이 종료되었지만

B 가 겪은 충격은 엄청났어요.   

(그 상급자는 당시 학생운동에 미약하게라도 참여한 학생들이었다면 모르지 않을 이름이 꽤 알려진 네임드였지만 다행인지? 현재에는 그 어디에서도 그 이름 찾아 볼 수 없는 익명으로 살고 있는 듯 보입니다)

그런데 B는 본인이 겪은 피해와 상처보다 이 것을 공론화 했을때 초래될 학생운동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과 그 논란에서 겪게 될 개인적인 고초를 먼저 떠 올리게 되었고 결국 절친이었다 A 와 밤을 새며 고민을 하다 결국 뭍고 가기로 결정을 했다고 해요.  그리고 난 수년이 지나서야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측근에게 들어 알게 되었어요.   

그 시절에 이런 일들이 학생운동 내에서만 있었던게 아니었고 사회운동권 내는 물론이고 보통의 직장, 보통의 공무원 조직 어디에서나 다반사로 벌어지는 일이었겠죠.

얼마나 많은 A 와 B 의 침묵에 이 사회가 빚을 지고 있는지요....


수십년이 흐른 지금 또 다른 A 와 B 는 여전히 살아가고 있는데 오늘의 A 와 B 가 살고 있는 사회는 어제의 A와 B가 살던 사회보다 얼마나 나아진 것일까요?

그리고앞으로 얼마나 더 나아질 수 있을까요?

여전히 A 와 B 에게 침묵과 굴종을 강요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제도는 (이수정 교수의 주장에 의하면) 여러가지로 보완이 되었다고 해요.

그런데 제도가 별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이번 사건으로 드러난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또 다른 수많은 A 와 B 가 더 이상 참지 않고 혼자 감수하지 않고 드러내어 말하고 고발하고 가해자들을 응징하는 용기를 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지금 현재 유일한 희망이고 돌파구라고 말할 수 있어요.  

그리고 더 이상 A 와 B 가 애초에 그런 개똥같은 일들을 겪지 않을 수 있는 더 나은 방법도 찾아야죠.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의 새로운 주류가 되었다고 하는 민주당과 그 지지층에서 이 사안에 대해 반동적인 태도와 자세가 아니라

자기 보위에 급급한 태도가 아니라 이해찬처럼 망자에 대한 감성팔이에 머물 것이아니라 

수 많은 A 와 B 의 삶을 보호하고 복구하는 정치를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미통당이나 보수 유투버들이 폐륜적인 행동으로 도발을 한다해도  상대하지 말고 (정쟁 프레임이라는 편한 유혹에 뛰어 들어가지 말고)

새로운 주류로서의 책임을 갖고 나서길 다시 한번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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