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2.21 01:19
수학자 앨런 튜링에겐 멋들어진 경력이 하나 있죠. 제2차 세계대전 때 그는 블레츨리 파크에서
독일군의 암호기계인 에니그마의 해독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의
승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고 이를 통해 만들어진 암호 해독기는 현대 컴퓨터의 시조로
알려져 있죠. 이 정도면 전쟁, 추리, 첩보, 과학이 어우러진 근사한 영화 소재가 아니겠습니까.
심지어 그는 박해받는 동성애자이기도 했으니 영웅 서사의 재료로는 나무랄 게 없죠...
사실 그게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역사책이나 전기 소재로는 기가 막히게 재미있어요. 하지만
이것을 드라마로 만드는 건 사정이 다르죠. 수학자나 과학자의 일생에서 재미있는 일이
꼭 인간적인 드라마로 전환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앤드루 호지스의 앨런 튜링 전기인
[이미테이션 게임]을 각색한 모르텐 틸둠의 이 영화도 그 때문에 애를 먹습니다.
영화는 비교적 융통성 있는 해결책을 택합니다. 블레츨리 파크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큰 붓으로
그리면서 튜링의 인생에서 여러 재료들을 가져와 적당히 이어붙이는데, 필요하면 픽션도
넉넉하게 붓는 거죠. 영화는 튜링의 인생 상당부분을 보여주지만 그만큼이나 첩보물 공식과
일반적인 과학자 신화의 고정관념에서도 많은 덩어리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허구와 실제 사건들을 구별해내는 건 꽤 재미있는 놀이입니다. [뷰티풀 마인드]
정도를 생각하시면 될 거 같아요.
진실성은 의심스럽지만 그 결과물은 재미있습니다. 천재 과학자/수학자가 주인공인
첩보 멜로드라마식으로 재미있는 거죠. 물론 이 모든 사건들은 정형화되어 있는데,
멜로드라마의 힘이란 게 다 그런 데에서 나오는 거죠. 진실성이 의심스럽다고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에 나오는 캐릭터의 고통이나 이야기의 메시지가
죽는 것은 아닙니다.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앨런 튜링을 연기한다는 점이 가장 화제를 모으는 영화지만
배우에 관심이 없는 관객들에게도 충분히 재미있을 수 있는 영화입니다. 단지
영화를 보고 난 뒤에 인터넷 검색이라도 하면서 실제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었고,
실존 인물들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확인해보는 게 좋겠죠.
(15/02/21)
★★★☆
기타등등
요샌 튜링의 죽음이 자살이 아닌 사고일 수도 있다고 보고 있는 모양입니다. 영화에서도 이 부분은
미해결로 남겨놓고 있어요.
감독: Morten Tyldum, 배우: Benedict Cumberbatch, Keira Knightley, Matthew Goode, Rory Kinnear, Allen Leech, Matthew Beard, Charles Dance, Mark Strong, James Northcote
IMDb http://www.imdb.com/title/tt2084970/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13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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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프리퀄 같기도 하고....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