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일기...(열차)

2020.07.07 01:57

안유미 조회 수:307


 1.여러분 중엔 결혼을 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겠죠. 태어나서 지금까지 계속 말이죠. 20년이든 30년이든 35년이든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는 건 가능해요. 그러나 문제는 35년하고 1일째에는 어떻게 생각하냐는 거죠.



 2.35년동안 결혼을 절대 하고 싶지 않던 사람이 어느날 한번 결혼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먹으면? 그러면 그 순간부터는 결혼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커지게 되거든요. 35년동안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로 지냈으니까요. 35년 중에 25년이나 30년을 결혼하지 않은 상태로 지낸 게 아니라 35년을 통째로 결혼하지 않은 상태로 지낸 거예요. 


 그야 이건 결혼을 하고 싶다...라는 것과는 조금 달라요. 결혼을 해보고 싶다와 결혼을 하고 싶다는 말은 완전 다르니까요. 그 사람은 결혼을 하고 싶은 게 아니라 결혼이 그냥 궁금해진 거거든요. 결혼을 하면 지금보다는 좀더 나아질까? 라는 궁금증에서 출발해서 결혼에 대한 호기심이 점점 강해지는 거죠.



 3.하지만 그건 약간 함정일 수도 있죠. 결혼을 하지 않고 사는 삶이 심심하다고 해서, 그 삶의 처방전이 반드시 결혼일 리는 없으니까요.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울할 수는 있겠지만 어차피 그런 사람은 결혼을 해도 결혼을 했기 때문에 우울할 거예요. 


 어차피 부정적인 성향을 지닌 인간은 나이가 들면 그래요. 결혼을 하지 않고 있어도 우울하고 결혼을 해도 우울한거죠. 자신이 처한 상황이 가져다주는 이점이 아니라 단점에만 집중하며 사는 게 기본 방침이니까요. 긍정적인 사람은 백수로 멈춰있어도 재밌게 살거든요.



 4.휴.



 5.이런 게시판에 글을 쓰는 걸 보면 내가 마치 분명한 의견을 가진 사람 같겠지만...그렇지는 않아요. 물론 나는 매 순간마다 나라는 그릇 안에 담겨 있지만 다음날이 되면 그릇의 모양이 바뀌는 법이니까요. 그릇 안에 담겨 있는 건지 갇혀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요.


 어제는 인간들이 싫었다가 다음날엔 인간들이 좋기도 하고...어느날은 여자가 좋았다가 다음 날엔 여자가 싫기도 하고...뭐 그래요. 어떤 날에는 인간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어떤 날에는 인간이 아니라 인류를 중요하게 생각하죠. 


 이건 내 생각이지만 개개인의 인간을 좋아하는 것과 인류 자체를 좋아하는 건 양립할 수 없는 일이예요. 인간은 좋지만 인류는 싫어지는 날도 있고...인류는 좋지만 인간은 싫어지는 날도 있고...뭐 그래요. 



 6.그래서 요즘은 무언가를 결론짓거나 생각하는 걸 잘 안해요. 왜냐면 오늘 무언가를 생각하고 결론을 지어봤자 내일이 되면 헛수고일 거거든요. 내일의 기분에 따라서 생각이나 결론 같은 건 쉽게 바뀌니까요. 


 예전에는 이건 이거다...저건 저거다...라고 정해놓는 걸 좋아했지만 이젠 별로 그러지 않아요. 나는 규칙이 규칙이 아니라 기분이 곧 규칙인 사람인 것 같더라고요. 그냥 그날그날의 기분에 좌우돼요.



 7.내일은 뭐하나...글쎄요. 열심히 살지는 않겠죠. 뭔가 좀...미친짓을 하거나 안 하거나 둘 중 하나겠죠. 후자였으면 좋겠어요.


 담소를 나누거나 그냥저냥 시간을 같이 보낼 사람은 쉽게 찾을 수 있거든요. 하지만 뭔가 미친짓을 하려면 그런 사람을 찾아가거나 그런 사람이 사는 곳에 찾아가야 하니까요. 그건 설레는 일이기도 하면서 귀찮은 일이기도 해요.


 그리고 문제는, 뭔가 미친짓을 하려면 그런 사람을 '찾아내야' 한다는 거죠. 찾아가려면 찾아내는 것부터 해야 하잖아요? 귀찮은 일이예요. 왜냐면 미친 여자를 찾아내도 그 여자는 처음엔 '난 미친사람이 아냐.'라고 발뺌하는 법이니까요.



 8.아니...하지만 역시 열심히 살아야죠. 요즘은 '열심히 산다'는 사실에 가속도를 붙이려고 하고 있어요. 일정한 속도의 궤도에 올라야 멈추기가 힘들어질 거니까요. 열차 같은 거죠. 계속 달리게 만들어야 하는 거예요.


 멈춰 있는 열차를 달리게 만드는 건 매우 힘들지만, 어쨌든 이미 달리고 있는 열차를 계속 달리게 만드는 건 덜 힘드니까요. 열차가 다시 멈춰 버리면 또다시 달리게 만드는 데 긴 시간이 걸릴 거니까요. 나는 몇년 동안 멈춰있어 봐서 그것만은 잘 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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