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12 18:42
1.
이런 상상을 해보죠. 대구 시장이 코로나로 너무 고생을 한 나머지 잠적을 해버리고, 수색 끝에 다음 날 자살한 것을 발견합니다.
지금 정의당 등에 악담을 날리고 있는 저 커뮤니티들에선, 아 정치적 의견은 달랐지만 고인에 대한 예의를 지킵시다 이랬을까요?
(대구 시장에게는 죄송합니다.)
지하철에서 누가 자살했다고 해도 민폐끼친다고 욕하는 게 일반적인 분위기잖아요.
공직을 맡은 사람이 판데믹 상황에서 인수인계도 없이 자살해서 시민과 자기 정당에 피해를 준 무책임함,
선택한 자살 방식 때문에 하루동안 상당한 경찰력 소방력 행정력이을 소모된 것 등을 들며 민폐왕이라고 욕을 하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마침 전날 그 사람을 향한 의혹이 제기된 것이 있었다? 이건 빼박이라며 난리도 아니었을 겁니다.
정말로 그들이 장례절차가 끝날 때까진 예의를 지키며 기다립시다 이랬을까요?
축하하면서 4월 보궐에 누가 나가야 승산이 있을까 논의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솔직히 미래한국당까지 갈 필요도 없어요. 이재명 도지사나 금태섭 전 의원만 됐어도 일부 분위기는 달라졌을걸요.
2.
공교롭게도 이런 의문을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는 일이 일어났죠. 친일의혹이 있는 백선업 장군이 사망하신 겁니다.
민주당은 고인과 유족에 대한 예의를 갖추긴 커녕, 민주당은 입장을 내지 않겠다고 언론을 통해 밝힙니다.
입장을 내놓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떠벌리는 건 입장을 내지 않는 게 아닙니다. 일부의원은 의견을 확실히 밝히기도 했고.
과연 이 모순을 어떻게 할까 했는데, 오히려 정의당 의원들에게 빨리 여기에도 입장을 내라며 윽박지르더군요.
(물론 정의당은 현충원 안장이 부적절하다는 공식입장을 냈습니다.)
친일행적은 확인된 것이지만 성폭력은 확인되지 않은 것이니까 다르다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그쪽에선 간도특설대에 복무한 것만 확인됐지, 어떤 적극적 친일행위를 했는진 "의혹"일뿐이라고 주장하던데요.
확인된 사실과 확인되지 않은 사실의 구분은 의외로 꽤나 주관적입니다.
3.
결국 고인에 대한 예의니 장례가 끝날때까진 기다려야 한다느니 하는 건 선택적으로 적용되는 핑계인 것이죠.
박원순 씨가 그런 일을 했을 것이라는 걸 마지막까지 인정하기 싫은 발버둥이거나,
그런 일을 했다손 쳐도 그게 그의 공적에 비해 하찮을뿐이라는 속내이거나.
지금까지 내가 봐온 그 분의 모습과 제기된 의혹간에 괴리가 너무 커서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성들은 이젠 학습된 것이 있어요. 그 어떤 누구가 성폭행범이라고 해도 놀라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실 연쇄살인범도 잡히면, 늘 그 지인들이 나타나서 꿈에도 몰랐어요! 라고 인터뷰하는걸요.
저도 처음엔 찌라시가 가짜이길 바랐고, 고소사실을 알게 된 후엔 산속에서 길을 잃었을 뿐이길 바랐고,
자살했음이 확인됐을 때는 죄책감 또는 억울함으로 인한 자살이기를 바라며 유서를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유서 내용까지 나온 상황에서 할 수 있는 합리적 추론은 회피를 위한 자살이란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끝까지 판단을 유보하고 싶다는 건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혼자 조용히 유보하면 될 일이지 남에게 입막음을 요구할 일은 아닙니다.
최소한 장례는 끝마친 뒤에 조사하자는 것도 어쩌면 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민주당이나 서울시에서 장례 후 진실을 밝히겠다는 책임있는 발언이 있었을 때나 할 수 있는 이야기죠.
4.
우린 가해자가 자살했을 때 피해를 호소했던 피해자가 어떤 고통을 겪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 그 가해자가 이번처럼 유명한 사람이라 언론에 끊임없이 가해자의 모습이 나오고
사회 명망인들이 그를 찬양하고 있다면 그 고통의 크기는 상상하기도 어렵습니다.
고소내용이 거짓일 수도 있습니다. 그 경우 유서내용을 어떻게 설명하겠냐 싶지만, 거짓일 수도 있죠.
하지만 거짓일 때 망자가 억울하게 받은 모독과, 사실이라고 밝혀졌을 때 피해자가 겪는 고통을 비교한다면
당연히 살아있는 사람의 고통, 피해자의 고통을 우선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피해자일지 모르는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힘을 주기 위해 쓴 류호정 의원 장혜영 의원의 글을
고인 모독으로만 보는 건 피해자를 완전 지웠을 때나 가능한 일 같습니다.
예의가 그렇게 중요하다면, 피해자를 걱정하는 사람을 윽박지르고 욕할 일이 아니라
반드시 진실을 밝혀줄 테니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이해를 구하는 것이 옳은 일 아닐까요.
5.
어쨌든 언젠간 진실이 밝혀질 겁니다. 민주당이 거기서 얼마나 적극적인 역할을 해주길 바랄뿐이지만.
만약에 의혹이 모두 사실로 드러나도, 지금까지 그걸 인정하기 싫어서 발버둥치던 그들은 이렇게 말할걸요.
이것 봐요 좀만 기다리면 민주당과 정부가 진실을 밝혀내잖아요.
정의당 같은 입진보애들은 인륜도 모르고 떠들기만 하지, 실제 일을 하는건 민주당뿐입니다.
박원순 시장은 좀 실망이네요 흠흠흠. 저들이 설계한 함정에 빠진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 여성이 먼저 여지를 준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 하여튼 여자 조심해야합니다!
2020.07.12 18:47
2020.07.12 18:51
진중권씨 페북을 가봤더니 이 일에 대한 여러 얘길 했더군요. 분노가 느껴졌습니다.
민주당과 서울시가 판을 깔아줬으면서 "피해자에 대한 비난은 하지 말라"라는 착한척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이 멍청한 작자들은 자기들이 키운 판을 감당못하고 있습니다. 네. 40년 친구인 덕분에 앞뒤 분간이 잘 안가나봅니다.
애초에 이렇게 될 문제가 아니었습니다.사안이 사안인만큼 장례절차자체는 가족과 가까운 지인들 위주로 치르면됩니다.
아무도 가족과 가까운 지인들마저 장례와 애도를 하지 말라는 얘긴 하지 않습니다. 코로나 정국에 시민단위의 추모나 애도는 성추행 사건자체를 특별조사하건 뭘하건 해도 늦지 않습니다.
당장 시민 단위로 추모하지 않는다고 유가족들이 더 애통해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사안이 조금이라도 규명된 뒤 추모하는 것이 훨씬 더 깔끔하게 고인을 추모하는 일이지요.
이런건 유가족과 협의하에 얼마든지 할 수 있는일입니다. 그런데 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사적으로 챙겨주고 싶은 마음에 박원순 지지자들의 마음을 얻는다는 정치적 이유 결합시켜 자위하고 있겠죠. 그리고 그 원대한 결과물은 "님의 뜻 기억하겠습니다 -더불어 민주당-"이라는 현수막일테고요.
님의 뜻이란건 도대체 뭘까요. 전문을 긁어올 필요조차 없을만큼 박원순씨의 유서는 그 내용도 짧거니와 별다른 내용이 없습니다. 이해찬씨는 기자들을 쏘아붙이던 그 와일드한 성정을 백선엽에겐 쏟아붓지 못하는 듯 합니다.
2020.07.12 18:54
2020.07.12 18:52
2020.07.12 18:56
2020.07.12 19:02
2020.07.12 19:51
2020.07.12 19:59
불편하게 들리셨다면 유감입니만 사실 사안이 사안이니만큼 좀 불편하시라고 좀 거칠게 표현했습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친일문제는 진행형의 문제이자 한국사회를 좀먹는 근간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좀 더 신중한 워딩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아베의 삽질 덕분에 최근들어 다소 숨죽여 있긴 하지만 한두해전만 해도 대 놓고 친일잔재를 미화하고 합리화하는 경향이 심각했었어요.
2020.07.12 20:01
2020.07.12 19:53
잘 모르실 분들을 위해 부연합니다.
’간도특설대’는 일본제국이 (청나라 영토였었던 만주지역에) 괴뢰국인 만주국을 세우고 그 만주국에서 동북항일연군 및 팔로군 등 항일조직을 공격하기 위해 1938년 조선인 중심으로 조직하여
일본 패망까지 존속한 소규모 부대였습니다. 이런 부대의 일반사병도 아닌 장교로 복무했는데 친일행적에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건 그냥 역사에 대해 무지한거에요.
한편,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도 문제가 많습니다. 그냥 일개연구소에서 뚝딱 만들어진 서적이 아닙니다.
백선엽이 친일파로 등재되어 있는 ‘친일인명사전’은 해방 직전 직후 김구선생으로 부터 시작된 사업입니다. 이승만과 박정희를 거치면서 그대로 살아남아 권력의 중심에 있었던 친일파들의 방해로 반세기나 빛을 보지 못하였다 민주정부가 들어서고 나서야 겨우 시작되어 제 기억으로는 2010년경에 겨우 출간될 수 있었던 기록물입니다. 한두사람의 억측이나 추측이 아니라 오랜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의 수고로 조사와 검증을 통해 겨우 만들어진 것이에요.
백선엽의 천수를 누리고 죽었는데 그 죽음에 대해 ‘자살’과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는 것도 문제지만 분명한 친일행적을 갖고 있는 인물에 대해 ‘의혹’수준으로 치부하는 것에 반대합니다.
그런 사례 아니고도 박시장의 죽음과 성추행을 연결지어 문제를 제기하는데는 전혀 무리가 없어요. 물론 그에 동의하지 않는 민주당 지지자들이 있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설득할려는 의도를 갖고 쓴글이라면 너무나 적절치 못한 사례하는 이야기에요. 그냥 의미없는 화풀이식 조롱과 비아냥을 하고 싶었다는 것이라면 이런 댓글도 달지 않았을거에요.
2020.07.12 20:13
백선엽에게 최대한 예의를 갖춰 아무 논평을 내지 않은 것으로 뭐라 한다면 정의당도 마찬가지로 아무 논평을 하지 말아야죠.
이게 맞는 겁니다.
백선엽과 박원순을 1:1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사례가 딱 와닿지 않네요.
그냥 조롱을 하시지요
2020.07.12 20:39
2020.07.12 20:50
2020.07.12 21:06
굉장한 글이네요. 저는 특히 박원순의 자살을 두고 그 이상의 진실을 추정하는 사람들이 제발 좀 정신을 차려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깝깝해 죽겠어요.
5번은 진짜 킬포네요...ㅎㅎㅎㅎㅎ
2020.07.12 21:51
그렇지요...어떤 죽음이든....
박원순의 죽음은 추모하지만, 백선엽의 죽음은 추모할 수 없지요...
비교를 하려면 급이 맞는 사람을 가지고 하면 공감을 얻기 쉽겠지요...
2020.07.13 16:59
네, 고인에 대한 예의가 선택적으로 강요되고 있다는 제 주장에 동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20.07.12 23:41
2020.07.13 14:28
2020.07.13 16:59
서로의 판단을 존중하자는데, 무슨 문제가 있나요?
이 정황을 설명할 다른 합리적 가능성을 제시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반론을 펴는 건 괜찮다고 생각해요. 인륜이나 공작 같은 것 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