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22 22:54
오늘 병원에서 무척 기분 나쁜 일을 당했어요.
이 글은 하소연이기도 하고 도움을 구하는 글이기도 합니다.
유쾌한 이야기는 없으니 비오는 우울한 목요일을 보내신 분이라면 건너뛰셔도 좋겠습니다.
원래 피곤하면 침샘이 붓곤 했지만
최근 들어 더욱 붓고 아픈데다가, 입마름이 너무 심해져서 집 근처 이비인후과를 갔더니
병원에선 현재 고름이 고여있고 침샘염이나 타석증이 의심된다며 소견서를 써주고 대학병원에 가보라고 권하더군요.
그래서 오늘 집에서 가장 가까운 비교적 작은 규모의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았습니다.
몇 가지 과정을 거치고 교수님 진료가 시작되었는데, 그 때 부터 갑자기 테러 아닌 테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야기는 이러합니다.
5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의사였는데, 진료실에 앉자 마자 어디가 불편해서 왔냐고 물었고, 저는 제 상태를 설명했죠.
그런데 제 말을 듣는 도중 이유없이 자꾸 피식 피식 웃는가하면, 도중에 제 말을 끊고 입 안을 살펴보더니
대뜸 저에게 얼굴에 미용 시술을 받은 적이 없냐고 묻는 겁니다.
너무 뜬금없고 당황스러운 질문이라 저는 없다고 대답했는데, 그러자 코웃음을 치며 재차 물었어요.
'아니, 솔직히 말해봐' 등의 반말을 섞으면서요.
그 때부터 너무나 불쾌했지만 제가 십대 후반 시절부터 앓아온 턱관절 질환과, 그 때문에 2년 전 쯤에 측두근과 저작근에
긴장을 줄여주는 보톡스 시술을 타 대학병원에서 받은 경험이 있어서 그 부분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다시 한 번 의사가 기분 나쁜 웃음을 지으며 계속 제가 거짓말을 한다는 듯 취급하더군요.
그리고는 계속해서 '그러니까 미용 시술을 함부로 받으며 안된다니까' ,'브이라인이다 뭐다 그런 거 집착하지 마세요' 라는 요지의 말만을 되풀이했습니다.
아, 정말 이상한 의사에게 걸려들었구나 하는 마음에 저는 이미 그 때부터 응대할 마음을 접은 상태였고
어떻게든 치료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고 일단 의사의 말을 듣고 있었어요.
그런데 정작 진료는 이루어지지 않고 계속 저에게 '요새 워낙 젊은 여자들이 얼굴에 손을 많이 대' 라고 하거나
'미용 시술을 왜해요?' 라고 하는 등 제 침샘염 증상과는 상관 없는 미용과 성형 이야기만 반복했습니다.
제가 참다 못해 미용 목적이 아니고, 대학병원 치과에서 정식으로 보톡스 한 번 맞은 게 다인데 왜 환자 말을 믿지 않으시냐라고 했더니
'아니 말은 그렇게 하지만 미용 목적으로 받은 거 맞잖아요~' , '턱관절이 안 좋으면 근본적인 치료를 해야지 누가 보톡스를 맞으라고 해요~'
라고 하는 등 제 말은 아예 듣질 않더군요. 거기에 자꾸 대답하다 보니 진료가 아니라 거의 지저분한 말싸움 수준으로 번져나갔습니다.
의사가 계속 헛소리만 해대니 저도 억울해서 제 오래된 턱관절 병력에 대해 줄줄이 쏟아냈어요.
그래도 다행히 그 때 까지는 흥분하지 않고 차분한 상태였습니다.
턱관절 질환은 저에게는 무척 고통스러운 부분이었어요. 십대 시절부터 턱관절 질환 때문에 병원을 상당히 드나들었고,
치과에서는 교합 문제로 교정을 권유했지만 경제적인 문제도 있고해서 스플린트라고 불리는 장치를 맞추는 수준에서 치료가 그쳐있는 상태였지요.
그러다 근육 긴장도가 너무 심해 대학병원 치과에서 보톡스 치료를 받았던 게 다였습니다. 그런 이력들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답했구요.
하지만 의사는 손사래까지 쳐가며 '아이 그러니까 어쨌든 미용 시술 앞으로는 받으시면 안된다니까요' 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제가 포기하고, 그럼 치료 목적이든 미용 목적이든 보톡스 시술을 받은 게 침샘염의 원인이라고 생각하시는 거라면 이제 알아들었다,
알겠으니 치료 방향에 대해 알려주셔야지 왜 계속 제게 훈계하듯 미용 시술 받지 말라는 말만 되풀이하시냐고 여쭈었습니다.
그랬더니 버럭 신경질을 내며 침샘염의 원인은 아무도 모르는 거라며 CT를 찍어봐야 알 수 있는 거라고, 나가서 CT를 찍으라고 하더군요.
그 때까지 제 침샘 부근에 촉진 한 번 안하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CT 찍기 전에는 원인을 모르는 거였다면 왜 그렇게 제게 집요하게 미용 성형 이야기를 했는지...
이쯤되면 정말 미친사람이 아닌가 저도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속으로 화가 나더군요.
같은 진료실에 있던 두 분의 간호사 분들도 굉장히 민망한 얼굴로 저와 의사의 대화에 어쩔 줄 몰라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뒤로 정적이 흘렀고, 간호사가 제게 궁금한 게 없냐고 묻고는 궁금한 게 없으면 이제 나가도 된다는 말을 했습니다.
진료실 문을 나오는데 정말로 분노했고 심장이 쿵쾅거릴 정도였습니다.
최근에 붓기와 통증으로 너무 고생한터라 심적으로 약해진 상태이기도했고, 병원에서 이런 말도 안되는 모욕을 당하니 저도 답답하고 억울했어요.
아픈 것도 힘든데 대학병원 이비인후과에 진료받으러 가서 성형 시술받지 말라는 말도 안되는 소리만 잔뜩 듣고 나오다니요.
따라나온 간호사가 대신 미안해하며, 제게 CT 검사 설명을 해주는데 결국 제가 울컥해서 눈물을 터뜨렸어요.
그런데 마침 그 교수가 다른 곳으로 이동하며 복도를 지나가던 차였고,
제가 그 교수를 붙잡았습니다.
제가 앓고 있던 오랜 병력을 무시하고 성형 운운하며 독단적인 추측으로 모욕을 준 점, 막상 제대로 진료가 이루어져야 했던 부분은 모두 생략된 점 등을
열거하자 교수는 뻣뻣한 태도로 서서 저를 내려다보며 '아니 그래서 어쩌겠다고? 치료를 안받겠다고? 라고 대답했고
거기에 이런 저런 변명을 덧붙이면서 제게 계속 손가락질을 하더군요.
제가 '삿대질하지 마세요' 라고 했더니 ' 아 그럼 치료 받지마!' 하고 자리를 떠났습니다.
정작 제게 계속 사과를 하고 안쓰러워했던 건 아무런 잘못도 없는 간호사 분들이셨구요.
이런 저런 사소한 병을 달고 사는 터라 대학병원 자주 드나들었고, 무신경하고 기계적인 진료는 많이 받아봤지만
이렇게 몰상식하고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은 건 처음입니다.
제가 원하는 건, 정중한 사과예요.
대학병원 차원에서 그 의사에게 징계가 이루어지면 좋겠지만 그건 너무 큰 기대일 것 같고요.
저는 그냥 평범한 이십대 후반의 직장인입니다. 제가 무얼 할 수 있을까요?
그 병원 홈페이지 불편사항 접수에 신고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도가 떠오르지 않네요.
가족들은 제 얘길 듣고 분개했지만 그냥 똥 밟았다고 생각하고 넘어가라 정도인 것 같구요.
하지만 저는 꼭 사과를 받고 싶어요.
평일에 오랜 시간 기다려 비싼 특진비 내고 받은 진료가 이런 언어폭력이었다는 게, 제 자신에게 미안합니다.
혹시 대학병원에서 당한 부당한 대우나 진료 과정 중의 피해사항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지 아시는 분이 있다면
제게 댓글로 도움을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어요.
쓰고 나니 제 마음도 조금 진정이 됩니다.
아프면 여러 모로 화나는 일이 더 생기는 군요.
병원에 가면 작은 병이든 큰 병이든 개인의 존엄함을 순식간에 잃어버리게 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혹시 이 긴 글을 다 읽어주시는 분이 계시다면 감사하다는 말씀도 전해요.
2016.12.22 23:04
2016.12.22 23:06
안 좋은 일이네요. 어느 병원인가요?
2016.12.22 23:22
혹시 이비인후과 관련해서 병원을 알아보고 계시는 중이라면 저에게 쪽지를 주세요. 알려드릴게요.
2016.12.22 23:09
2016.12.22 23:11
2016.12.22 23:23
병원이든 어디든 이런 식의 황당한 일은 처음 겪어봐서 녹취는 생각도 못했네요. 한참이 지나서 이런 일이야말로 정말 녹취를 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저 혼자 후회했습니다. 지금 홈페이지에 불만 접수하는 것도 망설이고 있어요. 괜히 저한테 피해가 돌아올까봐서요.
2016.12.23 00:19
[주의: 욕] 별 미친놈을 다 보겠네요. 녹취 안 하면 이 경우 어떤 조처가 불가능한가요? 아시는 다른 분이 계시면 좋겠네요. 심연 님, 정말 기분 상하셨을텐데, 그 와중에도 내내 대처 잘 하셨어요. 그냥 넘어가면 안 됩니다!
2016.12.23 00:39
2016.12.23 01:02
굳이 성별을 표기할 필요 없다고 생각해서 안적었는데 의사 선생님은 여성분이셨어요. 제가 한참 어린 딸벌이나 후배쯤으로 보였던 모양입니다. 아직도 제게 반말로 쏘아붙이던 얼굴이 잊혀지질 않네요. 제가 간호사 옆에서 얼굴이 벌개져 울고 있는데도 끝까지 당당하고 여유로운 표정으로 호통치더군요. 집에 와서도 분이 풀리지 않아서 성함과 진료 과목으로 검색을 좀 해봤더니 정보가 많지는 않지만 병원에 공개된 프로필에 의하면 나름대로 그 분야 권위자였어요. 누군가에겐 좋은 의사였을 지도 모르지만 오늘 저한테는 거의 트라우마를 남기셨네요.
2016.12.23 01:10
아, 그리고 위로해주시고 저 대신 욕해주시는게 사실 큰 도움이 되네요. 애초에 글 쓸땐 그걸 바라고 쓰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댓글들을 읽어보니 제게 필요했던 건 함께 분노해줄 사람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2016.12.23 05:15
2016.12.23 09:30
2016.12.23 13:15
네, 원래 턱관절 진료를 받고 있던 대학병원은 가능한 예약 일자가 너무 늦어서 여기 저기 전화 돌리고 있는데 힘드네요.
2016.12.23 09:45
동성간에도 성희롱이 일어나는군요. 관습적인 호칭이 아까운 '병원 직원'이 열폭할 만큼 예쁜 분이신가 봅니다.
2016.12.23 14:55
성희롱이나 성추행은 성별,나이,계층,학력에 상관없이 일어날 수 있어요. 그리고 꼭 외모가 이쁜 사람만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심연님이 안이쁜 분이란 건 아니고..)
2016.12.23 10:43
요즘도 저런 식으로 행동하는 대학병원 의사가 있나요....참 어이가 없네요.
어지간한 대학병원은 대부분 민원창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전화, 팩스, 직접 투고 등등... 홈페이지에서 어떤 방식으로 민원을 접수하는지 알아보시고요, 만약 명확하게 알기 힘들다면 전화걸어서 민원을 제기하고 싶다고 말하면 방법을 안내해 주실 겁니다. 그러면 여기 글 올리신 것처럼 자세한 상황묘사와 옆에서 도와주셨던 간호사들에 대해서 언급하십시오.
그리고 원하시는 게 '의사의 직접적인 사과'인지 '경제적 보상(진료비 환불 등)'인지 명확하게 말씀해 주시는 게 낫습니다. 그냥 억울하다 말씀만 하시는 것보다요.
의사의 사과라면 못받으실 가능성이 높습니다. 전공의나 젊은 교수같은 경우 정황상 확실하다면 사과하도록 병원에서 강력하게 요구하는 경우도 있으나 50대 초반이라면 이러저러한 변명을 할게 뻔하고 병원에서 어떻게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사람이므로 의사가 아닌 고객지원팀이나 기타 부서에서 대신 사과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진료비환불등은 이정도 상황이라면 끝까지 요구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병원측에서도 간호사들과 면담하거나 CCTV를 보거나 해서 의사의 잘못여부를 판단하겠죠.
어지간하게 고가의 검사비용 아니면 사과의 말과 함께 환불해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진료도 의료서비스인데 이런 형편없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돈받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설령 최종적으로 어떤 종류의 보상을 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민원제기는 하시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대로된 병원이라면 이런 민원들은 차후에 정리되어서 어떤 형태로든 병원장에게도 최종보고가 되니까요.
2016.12.23 13:33
말씀 감사합니다. 사실 어제 듀게에 글 올린 뒤로 병원에 민원 제기는 마음을 접고 있었는데 이 글을 보고 다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홈페이지에 불만 신고란이 있었는데 그 곳에 자세히 어제 일을 투고해보려구요. 말씀하신 대로 그 의사의 사과는 받기 어려울 것 같아요. 진료비 환불을 요구해보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2016.12.23 14:26
정말 화나네요. 윗분 말씀대로 현재로서는 민원이나 진료비환불로 압박하시는 게 적절할 것 같네요. 크게 관련은 없어 보이지만 찾아보니 한국환자단체연합회나 보건의료단체연합이 검색되는데 의료사고나 의료민영화 관련단체인 듯하니 참고만 하시구요. 사건이 여성혐오적 성격이 더 강해서 여성단체에 도움을 요청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은데 여의사라니 정말 폭력은 성별만큼이나 권력의 문제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되네요. 아무쪼록 압박이 꼭 성공하시길 빕니다.
2016.12.23 18:40
읽으면서 내내 제 손이 부들부들 떨릴 만큼 화가 났습니다.
본문 중에 쓰셨고, 댓글에서 다른 분들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그 의사의 사과를 받기 힘든 상황인 거 같아서 무력감... 이나 좌절감 이런 거, 본인만큼은 아니겠지만ㅠ 그랬어요.
제 3자인 제가 그랬으니 본인은 저의 열배, 스무배 정도쯤이시겠죠. 병원에 불만(... 만족하지 못했음이 아니라 정신적 피해 보상 받고 환불도 모두 받아야할 것 같은데요. 그치만) 제기는 꼭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너무 상처 받지 마시고 치료도 다른 병원에서 계속 하시길 바라고요. 자신의 지식과 기술을, 권력 삼아 휘두르는 저런 부류의 인간들, 정말...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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