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4.11 17:59
꼭 이것 때문이라고는 볼 수 없지만 요즘 제 시절이 하수상해서 그러한 지, 그냥 다 거슬립니다.
회사에서 나름 친하게 지내는 지인 중 한 명이, 올초에 상당히 늦은(?) 나이에 결혼을 했어요.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나이가 상당하다 보니 벌어둔 돈도 많고, 사치 안 하고 알뜰하고, 생활력도 강하고 몸에 해로운 기호나 식성은 갖고 있지 않고, 얼굴도 예쁘장하게 나이에 비해 동안이고... 어찌보면 결혼상대로 너무 좋은, 이미 준비된 신부감이었을 지도요. 그런데 가끔 제가 낯설던 것은 통상적인(?) 혼기가 지난 사람들이 다 그런 건지는 몰라도 결혼 전에 결혼에 대한 열망과 조바심이 너무 지나쳐 여자인 제가 봐도 정말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대부분이 다들 잘만하는 결혼 나는 왜 못하나 그걸 해야 나도 평범한 인생축에 끼는데 싶은 열등감을 여과없이 솔직하게 표출할 때면, 이 분이 사람들 처음보자마자 물어보는 혈액형이 뭐냐는 질문을 들을 때마다 제가 느꼈던, 무난하고 평범한 게 뭔지는 알겠는데 어딘가 막막한 느낌을 받았던 것처럼요.
올초 결혼에 골인하기까지 지난 몇 년간 온갖 선과 소개팅으로 만났던 모든 남자들과의 연애사를 제가 다 알고 있을 만큼 털어놓았던 지라 지난한 시간을 보내고 1월의 신부가 되더니, 사실 뭐 이제 몇 달이 지나서 한창 신혼이니 그러려니 이해는 합니다만, 모든게 다 결혼 가치관으로 보이는 듯 합니다. 사실 결혼 확정되고부터 아이를 가질 몸을 만들겠다고 적극적일 때부터, 그래 나이도 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결혼 후 부터는 대놓고 임신대작전에 매달립니다. 결혼 초 집들이니 뭐니 툭하면 병원이나 뭐다 반차니 휴가니 자리를 비운 때도 많은데 그것도 제 재량으로 하는 거 아니고 결혼해서 많이 바쁜가 그러려니 하겠는데, 일전의 회식 때 일입니다.
그 전엔 이 분이 주당인데다 술도 약해서 전체회식이고 소그룹회식이고 제일 먼저 취해서 몸을 못가누고 그래서 저 또는 누군가가 집까지 데려다주거나 택시를 태워 보내기 부지기수였던 주인공이었는데 임신 준비한다고 몇달 전부터 술을 일절 입에 대지도 않더군요. 몸을 만들어야 한다고. 그것도 존중해서 술도 전혀 권하지 않고 그렇다 치려는데 이번 주 전체 회식 때 으레 그렇듯 사람들이 고기 좀 먹으면서 술 좀 편하게 마시고 불콰해서 업된 모습을 보며... 경멸하더군요. 물론 그 불콰해진 대상이 저는 아닙니다. 저는 그 날 낮에 PT갔다와서 컨디션이 많이 안 좋아 술을 거의 안 마셨고, 또 마셨다한들.... 회사에 저보다 술 센 사람이 없어서요. 그런데 그 모습을 목도한 저는 기분이 참 묘하게 뒤틀리더라는... 저도 술 좋아하고 술 좀 먹는, 그럼에도 안 취하는 사람이지만, 체질상이라며 또는 의식적으로 술을 먹지 않는 사람들과의 술자리에서 억지로 술을 권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사실 기분 별로일 때가 많거든요. 뭐랄까 안 마시는 사람은 하릴없이 마시는 사람 취해가는 꼴을 보게 될 것이고, 마시는 사람은 또 별 수 없이 안 마시는 사람 신경쓰이면서 서서히 무너져 갈 수도 있는 거지만... 그냥 다 떠나서 사람은 이래서 자기가 놓인 상황과 입장에서만 판단하는 것인가 라는 새삼스러운 꽁기함.
소위 말해 주량도 약하면서 술욕심은 많은데 술버릇은 나빠서 술자리 파트너로서는 최악에 가까웠던 자신의 옛모습을 잊고 그 날 누가 과하게 취해 주정을 부린 사람도 없는데, 그냥 술마시는 누군가를 볼 때마다 "쟤 왜 저러니?" 라며 한심하다는 눈으로 보면서 저에게 흉을 보는데, 술도 거의 마시지 않던 저는 그냥 술맛밥맛이 떨어지더라구요. "불과 연말까지만 해도 자기는 더 했어요" 라는 말이 혀 끝까지 나왔다가 겨우 멈춤.
취향과 기호, 성격이 너무 정반대라 제가 오히려 더 배울 게 많다고 장점을 먼저 보긴 했지만, 가끔 너무 강한 생활력이나 현실적인 욕망을 여과없이 드러낼 때마다, 이걸 뭐라 해야 하나 이 사람이 너무 평범하고 건강한 사람인가, 아니면 내가 비현실적이고 병적인 사람인가 헛갈리던 적이 있었는데 그것이 갑자기 싸하게 확 증폭되는 느낌.
물론 늦게 시작했지만 결혼 생활 행복하기 진심으로 바라고, 지금 신혼이니까 더더욱 어떤 면에선 편중될 수도 있겠다 라고 관대하게 이해하려고 애쓰며, 아이 원하는데 정말 임신 성공해서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는데요, 친분에 너무 기대서 최소한의 객관성을 담보하지 않는 일련의 언행들에 저는 뭔가 자꾸 마음이 결빙되는 느낌적 느낌.
어디서 읽은 댓글대로, 남의 흥을 깰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즐거운 사람이 되어야 할 텐데, 제가 요즘 매사에 몹시 지쳤나 봅니다.
괜찮은 척을 너무 오래했나 봐요. 그냥 다 피곤하고 거슬립니다.
2014.04.11 18:22
2014.04.11 18:45
2014.04.11 19:08
2014.04.11 19:43
제 PT는 프레젠테이션의 약자입니다만 ㅎ. 그쵸, 자기 올챙이적 옛날 생각 못하는 사람들은.
2014.04.11 19:58
2014.04.11 20:06
왠지 저는 아주 오래 전부터 삶의 의욕이 넘치는 사람들에 대한 불편함이 있었어요. 성실히 열심히 사는 순수한 느낌의 의욕 말고, 그러니까 지나치게 정력적이고 현실적인 느낌을 주는 사람들, 식욕도 성욕도 그 밖의 욕구들도 넘쳐나고 그것을 얻기 위해 매진하는 그래서 삶이 즐겁다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요. 이건 어떤 종류의 제 열등감일까요 아니면 투사로 인한 거부감일까요.
2014.04.11 20:39
이 댓글에 엄청 공감해요. 열등감일수도 있을것 같고 그냥 기운 자체가 안맞을수도 있을것 같구요. 그런 사람들이 추진력 에너지는 있지만 남의 기분은 전혀 보살필줄 모르며 자기 뜻대로 하고싶어하는 경우가 많아서 가까이 지내면 불편하고 귀찮고 그러더라구요.
2014.04.12 10:14
2014.04.11 20:24
오래 산 분들이 깨우친 진리라며 자주 말하는 것 중 하나가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지만, 사람이 한순간에 확 바뀌기도 하지 않던가요. 아니 간절히 바뀌고 싶어서 바뀐 척 자신을 속이는 거라도, 어떤 계기로 또는 필요 때문에 그렇게 변하기도 하는 것 같아요. 글을 읽어보니까 그분이 늦은 나이에 어서 아이를 낳아야 여러모로 좋다는 생각에 휩싸여 몸에 안 좋단 건 병적으로 경계하는 것 같은데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을 향해 혀를 차는 건 좀 불편합니다만, 그런 얘기를 쿠델카님께 하는 것도 친한 쿠델카님이니까 한 거겠죠. 하나에서 둘이 되어 결혼 생활을 영위하고 또 거기서 셋이 되려고 애쓰는 와중에 벌어지는 일로 조금은 너그럽게 바라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2014.04.12 06:55
2014.04.12 11:50
저를 친하고 편하다고 느끼기에 그렇겠지 라고 저도 생각하고 그래서 글에 쓴 것보다 실제로는 훨씬 더 관대하고 또한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면 믿으시겠어요? 아마 저와의 극명한 차이가 있다면 저는 어떤 경우에도 제 욕망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않으려는 편이고 그것이 지극히 사적이고 민감한 사안이라면 더더욱 그렇다는 데 있겠지요 이래서 제가 인간미 없다는 말을 듣게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제 속을 누구와 공유하고 드러낼 만큼 누구와도 편하고 이무롭게 지내는 것을 상당히 꺼리는 편이긴 하지만 차라리 너무 가까운 것보다 이게 편하고 안심인 인간이라서요
2014.04.11 22:21
쿠델카님의 피로가 느껴지네요. 전 술을 못마시면서 술 먹으려 드는데 술버릇까지 나쁜 주당은 만나본 적이 없어요. 일단 술을 많이 마시건 아니건 술기운을 빌어 고약한 버릇 보이는 사람과는 다시는 술 함께 안 마셔요. 전 술은 죄가 없고 인간이 죄가 많다고 보는지라 술 마셔서 그랬어요 라는 소리 별로 안 믿거든요. 더 싫은 사람은 술 못마신다는 핑계로 남 술 먹이는 사람이에요. 같이 즐기자는 게 아니라 탐색하는 거 같아서 그런 사람 만나면 정신 바짝 차리게 됩니다.
2014.04.12 21:23
네 좀 야뱍하게 보일지 몰라도, 요즘 많이 피곤하다고 느낍니다 내가 피곤해서 더 관대하지 못한가는 별개의 문제 같고요 좋은 면이 많은 사람이고 장점도 강한데 저한테 많이 기대다보니 제가 많이 편해서 그런가보다 생각은 합니다만 놓인 상황에 따라 급변하여 자신이 취하고자 하는 목표에 돌진하는 융통성도 에너지도 없는 저는 늘 이런 성질들이 낯설게만 느껴지니 매사에 더 제 자신을 단속하느라 피로감만 누적되네요
2014.04.12 03:08
그러게요. 그냥 다 거슬리시는거 같네요. 제가 그 여자분이고 이렇게 모를 이유로 거슬리는 여자 취급 당하는 걸 알게 되면 거참 기분 묘할 듯 싶습니다. 사람이 사람 싫어하는데 이유가 없다지만요.
2014.04.12 09:13
네 제가 너무 대놓고 다 거슬린다고 전제하니 이런 혐의에서도 자유롭지는 못하겠지만...뭐랄까 그냥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지상최대의 목표인 것을 너무 대놓고 당연시하며 남들도 다 그런 가치관을 최상부에 두고 있으리라 전제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서 저는 어쩔수 없는 불편함과 이질감을 느끼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미묘한 차이가 있다면 저는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하고 이해하려 하거나 또는 분석하려하거나 그렇죠
2014.04.12 03:31
2014.04.12 09:08
그럴 수도 있을 것입니다 모든 걸 그 일반적이고 평범한 기준에 둔다면요 저는 가끔 그게 어떤 기준인가 모호하고 헛갈릴 때가 있지만요 그렇다고 이게 제가 더 특별하다는 뜻은 아니랍니다
2014.04.12 04:12
그 사람이 평범한 사람이라면, mediocre 로서의 평범함이겠죠..
글로 보아온 평소의 쿠델카님이시라면 이 정도의 피곤함에는 끄떡도 하지 않으실것 같은데, 몸이 좀 안좋으신 건 아닌지..
2014.04.12 09:05
네 정확히 짚어주셔서 감사하고 뭐랄가, 좀 시원한 느낌입니다. 강철 멘탈은 아니어도 웬만한 일은 저를 위해서라도 소소히 넘기는 편이고 그렇기에 별 잡음없이 지냈는데 좀 지치는 시즌인가 봐요 몸이 여기저기 나빠진 것도 사실이구요 그래도 또 극복하고 잘 살아야겠습니다
그 분 일종의 강박으로 보입니다. 본인의 늦은 신혼과 아이에 대한 강박때문에 배려를 잊는군요. 일견 그 심리가 이해도 되긴 하지만, 무엇보다 동료로서 옆에서 겪다 보면 충분히 질리고 피곤하시겠어요. 거리를 두시는 편이 Koudelka님을 위해 좋겠네요.. 이제 신변의 변화와 성격적 특성으로 인해 관심사가 많이 달라지게 된 분이니 점점 멀어지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