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일기...(새벽)

2020.08.04 04:10

안유미 조회 수:510


 1.우울한 새벽이네요. 하지만 대체로 새벽은 우울한 법이니까요. 까닭 없이 말이죠.



 2.생각해보면 그래요.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재수없는 놈이 맞거든요. 물론 재수없지 않은 사람을 연기할 수는 있지만 그걸 해내는 걸 한 순간이라도 실패하면, 결국 들켜 버리고 마는 거죠. 쩝. 내가 재수없는 놈이라는 걸요. 역시 나는 돈주고 사람을 봐야하는 건가...일반인을 보면 안되는 건가 싶기도 해요. 휴.



 3.동네에 카라쉬 호텔이라는 곳이 있는데...그냥저냥 보통의 부티크 호텔이예요. 5성 호텔이나 5성중에서도 신축인 호텔들과 비교해보면 호텔이라고 하기도 무색하죠. 하지만 사실 헬스클럽이 가까울수록 좋은 헬스 클럽인 것처럼, 때로는 호텔도 가까운 호텔이 곧 좋은 호텔이거든요. 음. 가까워서 가끔 가서 쉬어 보고 싶긴 하지만 몇년 동안 한번도 안 가고 있어요. 왜냐면 좋은 기억이 있거든요. 


 원래 장소라는 곳이 그래요. 안 좋은 기억이 있어도 가기 싫지만 좋은 기억이 있으면 가기가 무서운 거죠. 그 좋은 순간이 지나갔다는 걸 상기시켜 주니까요.



 4.휴.



 5.그래서 서울에서 갈 수 없는 카페라던가 역이나 뭐 그런 곳이 많이 생겼어요. 그런 곳은 지나가는 것도 꺼려져요. 버스나 택시를 타고 지나가고 있는데 갑자기 와이파이 연결이 되면 갸우뚱하다가 알게 되거든요. 작년에 이곳 카페에 왔었다는 걸 말이죠. 그렇게 와이파이가 한순간 연결됐다가 풀어지는 걸 보면 우울해지곤 해요. 그 사람과 이곳에 왔다 갔었는데...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6.어렸을 때는 오늘 해야 할 노력이나 걱정을 미래로 보낼 수 있었어요. '아 부탁해~내일의 나.'라는 느낌으로요. 미래라는 저금이 잔뜩 있었고 미래에도 젊은 버전의 내가 잔뜩 존재했으니까요. 하지만 사람은 나이가 들면 알게 돼요. 노력이나 걱정을 미래로 보내거나 맡기면 안된다는 거요. 인간에겐 내일부터 열심히 사는 게 아니라 그냥 오늘...오늘 하루만 열심히 사는 것밖에 없다는 걸 말이죠.



 7.시간이 지나보니 나에게 잘해준 여자에게는 다시 연락할 수가 없게 돼요. 그래서 내가 고마워할 필요가 없는 여자...부채감이 없는 여자가 좋은 것 같아요. 나에게 잘해준 여자는, 다시 연락할 수 없다는 점에서 안 좋지만 나에게 잘해주지 않은 여자는 다시 연락도 하고...쉽게 얼굴이나 한번 볼 수 있는 게 장점이니까요.



 8.대학교 때 알던사람들을 보는 건 좋기도 하고 마음이 아프기도 해요. 대학교 때 알고 지내고 놀며 지냈던 사람들을 만나면 그 시절 생각이 나서 기분이 좋기도 하지만 그들이 위대한 작가가 되지 못했다는 사실이 슬프기도 하거든요. 


 전에 썼던 A처럼 추억 얘기를 할 정도의 여유도 없는 사람의 경우엔 마음이 더 아플 거고요. 기술을 배우거나 공무원시험을 보거나...전공과 전혀 상관없는 직장에 다니려고 미대에 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요. 그러나...그렇게 되어버렸다면 그렇게 확정되어 버린 거니까요.


 그야 디자인대에 오는사람들이 모두 위대한 작가가 되려고 오는 건 아니겠죠. 그러나...내가 친하게 지낸 사람들은 다들 그런 사람들이었어요. 삼성이나 LG입사 따위가 꿈이었던 사람은 하나도 없었어요. 물론 나이가 들어서 생각해보면 삼성이나 LG에 가는 건 매우 힘든 일이긴 하지만...



 9.요즘 친구-의 여자친구-소개로 아티스트라는 만화를 봤는데 마지막 쯤에 공감가는 장면이 있었어요. 사람들이 만나서 술도 마시고 네가 잘났니 내가 잘났니 말싸움도 하다가 헤어져요. 그렇게 뒤돌아서 서로 갈 길 가는 거 같다가 곽경수라는 녀석이 한번 더 돌아봐요. 그리고 또 보자고 한번 더 말하는 장면이죠. 

 

 요즘 나도 그러곤 하거든요. 상수역이나 신논현역에서 사람들과 헤어지고 나면 가다 말고 그들의 뒤에 대고 괜히 큰 소리로 한번씩 더 인사하곤 해요. 지나가는 사람이 옆에서 보면 마치 오랫동안 안 볼 사이인 것처럼요. 하지만 아니거든요. 사실 며칠이나 몇주 안에 또 볼 사람들인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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