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18 01:27
- 딱히 치명적인 스포일러는 없습니다. 가장 큰 스포일러라면 시즌 3이 존재한다... 는 것 정도겠죠. ㅋㅋ
이전 시즌들도 안 본 분들을 위해 제 멋대로 woxn3님의 소개글을 링크해 봅니다.
http://www.djuna.kr/xe/board/13670699
- 전 시즌의 마무리를 이야기하지 않고 시즌 3의 줄거리를 요약하는 건 좀 어려운 일입니다만. 스포일러는 피해서 대충 적어 보자면 이번 시즌은 우리의 진상 형사 마르첼라의 잠입 수사 이야기입니다. '잠입 수사'라는 점을 빼고 보면 시즌 2와 좀 비슷하기도 해요. 어둠의 우주 갑부 패밀리가 빌런으로 등장하고 마르첼라의 목표는 증거를 수집해서 이 패밀리를 붕괴시키는 것. 하지만 마르첼라 고유의 흩날리는 멘탈이 계속 발목을 잡고 또 이 가족들도 그렇게 만만한 상대는 아닙니다. 게다가 그 와중에 설상가상으로 마르첼라의 정체를 알고 있는 듯한 누군가가 계속해서 신호를 보내고... 아. 그리고 배경이 런던에서 벨파스트로 바뀌었어요. 그 이유는 시즌 2 피날레 스포일러라서 생략.
- 사실 이 시리즈는 시즌 2에서 끝내는 게 깔끔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시리즈의 가장 중요한 소재이자 드라마의 동력은 마르첼라의 개인사인데, 그게 시즌 2 말미에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끝장을 볼 수 있는 방향으로 전개가 되었었거든요. 그리고 사실 일단락도 되었구요. 하지만 그냥 끝내기엔 나름 드라마 반응이 괜찮았던지 마지막 장면에서 뭔가 추가 떡밥이 투하되며 끝났었고, 시즌 3은 그 떡밥을 바탕으로 흘러가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보니 이번 시즌은 그냥 사족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야기의 퀄리티와 상관 없이 그냥 어쩔 수 없이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이 번뇌, 이 고통 이미 다 지나간 것 아니었나. 거기에서 이야기를 이렇게 연장해 버리면 도대체 마무리는 어쩔 셈인가. 뭐 그렇게 투덜투덜거리며 그래도 마르첼라 캐릭터에 대한 정으로 보는데...
음? 이야기 자체는 의외로 괜찮습니다? 미스테리도 적당히 깔고 가면서 긴장감은 시리즈 중 가장 강하고, 후반에 툭툭 던져지는 국면 전환도 잘 먹히고. 예상치 못하게 재밌게 봤습니다. 다만... 그래도 역시 '사족이다!'는 느낌이 사라지진 않네요. ㅋㅋ 사족은 사족인데 재밌는 사족 정도로 평을 해야겠군요.
- 이번 시즌의 핵심은 마르첼라 본인보다도 마르첼라가 얹혀 사는 이번 시즌의 빌런, 진상 패밀리입니다. 위압적인 리더, 음험한 브레인, 거친 행동 대장과 이 '패밀리 비지니스'와 거리를 두고 있는 딸. 그런데 이 가족에서 인정 받으려고 과하게 몸부림치는 멍청한 골칫덩이 사위... 와 같은 식의 전형적인 구성입니다만. 그 와중에 은근히 캐릭터들이 살아 있고 관계 설정이 잘 되어 있어서 구경하는 재미가 있어요. 그 안에서 마르첼라가 굴러다니며 느끼는 복잡 다단한 감정들도 식상하지 않은 느낌이구요. 그리고 넷플릭스 드라마들이 언제나 그렇듯 그 와중에 나름 매력이 있는 건 여성 캐릭터들이었네요.
그리고 거의 유일한 마르첼라 외의 전시즌 출연 캐릭터 한 명도 잘 쓰였구요. 스토리 전개 도구(...)로 잠깐 등장하는 캐릭터들도 나름 묘사가 좋습니다. 하지만 할 일만 끝내면 가차 없이 사실 완성도만 놓고 보면 1, 2, 3 시즌 중 이번 시즌이 가장 잘 쓰인 각본 같기도 해요. 사족 느낌이 영 떨어지질 않아서 그렇지. ㅋㅋㅋ
- ...까지 적고 보니 뭐 상당히 잘 만든 드라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은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시리즈의 고질병인데, 이야기와 캐릭터의 '어떤 디테일'에는 상당히 신경을 쓰면서도 또 다른 디테일들은 심할 정도로 대충 무시해버리는 게 있어요.
예를 들어 시즌 3의 빌런들은 벨파스트라는 도시를 마음대로 주무르는 권력자이자 갑부들인데, 사는 모습이 그렇지가 않아요. 나름 저택에서 살고 있는데 그 저택에 집안 일 하는 고용인이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뭐 하찮은(?) 인부 하나 손 봐주는데도 본인들이 직접, 혼자 가서 막 두들겨 패구요. 별 큰 동기도 없이 주인공을 가족으로 들이는 것도 웃기고 그런 후에 벌어지는 온갖 사건들을 다 일일이 직접 해결하거나 주인공에게만 부탁하는 것도 말이 안 되죠. 제작비가 모자랐던 것인가 작가의 역량 한계였던 것인가... 를 보면서 계속 고민했는데 아마 둘 다가 아니었나 싶었네요.
또 클라이막스가... "아니 정말 개판도 이런 개판이 없군!" 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듭니다. ㅋㅋㅋ
개판으로 허접하다... 가 아니라 그냥 개판이에요. 허접하지 않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냥 개판' 쪽이 좀 더 적절해요. ㅋㅋㅋㅋㅋ 그게 그냥 등장인물들의 관계나 감정선을 생각하면 나름 이해할 수 있는 클라이막스이기도 합니다만. 위에서 언급한 그 비현실적 디테일과 주인공 마르첼라의 안드로메다를 헤매는 멘탈과 결합돼서 거의 부조리한 코미디를 보는 기분까지 들게 합니다.
아... 그나마 잘 키운 주인공 캐릭터 하나가 나름 힘을 발휘하긴 했어요. 얘가 하도 멘탈이 비정상이다 보니 막판 주인공의 괴상한 행동들, 그리고 주변 인물들의 멍청하기 그지 없는 행동들이 다 그냥저냥 받아들여지더라구요. 물론 제가 그랬단 얘기고, 아마 저만 그럴 겁니다. 제가 좀 주인공 캐릭터를 맘에 들어하는 사람인 데다가 드라마를 좀 쉬다가 봐서 그런지 평소보다도 3배 더 관대한 모드였거든요.
- 결말을 보고 나니 아마도 시즌 4는 안 나올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안 나왔음 좋겠습니다. 제 만족도와는 상관 없이 '이걸로 끝이다!'라는 태도로 뭔가 마무리를 하는 엔딩이기는 하고, 위에서 수차례 말 했듯이 이 시즌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사족'이어서 이 사족에다가 사족 하나를 또 덧붙이는 건 여러모로 별로일 것 같아요.
- 정리하자면.
시즌 1, 2가 맘에 드셨다면 그냥 보세요. 사족스럽긴 해도 나름 정성들인 사족이라 시리즈 팬은 봐야합니다. ㅋㅋ
전혀 안 보신 분들에게는... 추천할 맘은 없습니다만. 시즌 1을 한 두 편 보시고 주인공 캐릭터에게 재미를 느끼신다면 쭉 보셔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계속 강조한 것처럼, 잘 만들어서 재밌는 드라마... 라기 보단 그냥 주인공 캐릭터가 맘에 들면 그 정으로 보게 되는 그런 드라마입니다.
세 시즌 다 더해봐야 에피소드 24개에 편당 43분 정도라 작정하고 달리면 금방 끝낼 수 있어요.
암튼 저는 그럭저럭 관대한 맘으로 봤습니다. '마르첼라'의 캐릭터가 맘에 들어서요.
+ 벨파스트 주민들은 자기 동네가 이렇게 막장으로 그려지니 기분이 나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또 가만 생각해보니 어차피 시즌 1, 2에선 런던이 거의 무정부지대 상황의 생지옥으로 묘사됐으니 거기 주민들도 이해를 해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
++ 주인공 '마르첼라' 역을 맡은 안나 프리엘(?)이 맘에 들었습니다. 연기도 잘 하고 분위기가 괜찮아요. 뭔가 엘리자베스 올슨의 현실적으로 나이 먹은 버전 같달까요.
+++ 이 시리즈의 핵심 아이디어였던 마르첼라의 '필름 끊김' 장치는 이번에도 여지 없이 등장합니다만. 활용하는 방식이 달라졌어요. 나름 시즌 3의 상황을 잘 반영한 성실한 아이디어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딱히 놀랍거나 전 시즌들처럼 강렬한 미스테리를 유발하거나 그러진 않습니다만. 그래도 뭐 이 정도면 노력한 걸로.
++++ 암튼 이 시리즈의 핵심은 주인공 캐릭터이고, 그 양반의 내면입니다. 이 부분에서 재미를 느낀다면 시즌 3까지도 만족스럽게 보실 것이고, 그게 맘에 안 든다면 안 보시는 게 최선이구요.
+++++ 아 근데 방금 본 클라이막스는 정말 생각할 수록 웃기네요. 마르첼라 이 자기 밖에 모르는 못 돼 먹은 아줌마... ㅋㅋㅋㅋㅋㅋㅋ
2020.06.18 07:46
2020.06.18 11:02
네 쿠키는 없어요. 그냥 엔딩 자체가 쿠키 느낌이라... '반응 아주 좋으면 더 이어갈 여지도 살짝은 남겨 두자?' 라는 정도의 느낌으로 마무리했는데, 내용상으론 더 안 나와도 충분할 것 같은 엔딩이었습니다. ㅋㅋ
미모... 사실 머리만 금발로 바뀐 건데, 말씀대로 이번 시즌에는 좀 미모를 써먹는 전개가 나오긴 합니다. 하하.
생각해보니 제가 이 드라마를 본 게 woxn3님 글을 읽어서였네요. 덕분에 재밌게 잘 봤습니다. ㅋㅋㅋ
2020.06.18 12:10
2020.06.18 12:52
시즌2 나왔을 땐 볼 생각이 없는데, 시즌3도 나오고 로이배티님도 열심히 보시는 걸 보니 볼까 고민되네요.
저는 요즘 미뤄두었던 다크를 정주행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곧 시즌3가 나온대서요. 어설픈 로스트 같을까봐 걱정했는데 나쁘진 않습니다. 그런데 너무 캐릭터가 많고 복잡해서 옆에 캐릭터 가계도를 두고 봐야하네요 ㅋㅋ
2020.06.18 13:07
아뇨 이건 뭐랄까... 소수 취향에 아주 정밀하게 어필하는 그런 드라마라는 느낌이에요. 한 편이라도 이미 보셨는데 별로였다면 그냥 안 보시는 게 맞습니다. ㅋㅋㅋ
다크는 저도 재밌게 보고 게시판에 글도 적었는데... 뭔가 고대 비극 느낌 & 유럽 '아트' 무비풍의 장중한 분위기 같은 게 취향 저격이라서요. 그래서 이번 달에 나올 시즌 3도 기다리고 있지만 (이번이 완결이라고 미리 예고했습니다. 만세!) 스토리 정리는 포기했어요. 보는 중에도 100% 이해하며 보길 포기한 드라마라서 시즌 3도 그냥 보려구요.
근데 드라마 특성상 가계도는 중대한 스포일러 아닌가요. ㅋㅋㅋ 실제로 제가 시즌 2 초반에 가계도 한 번 찾아봤다가 거하게 스포일러를 밟았던 기억이...
2020.06.19 20:31
안나 프리엘은 푸싱 데이지즈에서 이얼굴씨와 아주 사랑스러운 강제플라토닉 커플을 연기했었죠. 그때의 상큼한 인상이 기억에 남아서 시작했다가 몇에피 보고는 갑갑해서 접었는데 저도 다시한번 시도해볼까 생각이들어요. 안그래도 넷플릭스가 보라고 보라고 대문에 자꾸 3시즌 광고를 밀어서 혹하던 차인데 말이죠. ㅎㅎ
2020.06.19 2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