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23 21:12
기존의 스타워즈 6부작은 짧게 말하면,
여러모로 인류가 긴 시간 향유해 왔던 신, 혹은 신성과 인간성의 사이에 위치한 드라마틱한 남성캐릭터가
신성을 획득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다 스스로의 모순으로 몰락하고 말았단 이야기입니다.
연령대를 떠나 남성 관객이 흔히 정석적으로 몰두하기 딱 좋은 이야기였고
프리퀄 1,2편을 대차게 말아먹었던 것과 달리 다행히도 3편에선 썩 괜찮게 6부작의 마무리를 지어서
이 기존 6부작에 대한 외전들은 2020년 지금까지도 끝없이 나오고 있습니다.
딱 남성관객들이 몰두하기 좋은 거대한 자기연민과 자기비하가 황금비율로 버무려진 연작 시리즈로서.
물론 몰입의 대상은 시리즈의 간판, 다스 베이더고요.
그런데 시퀄은 어찌보면 기획 자체는 대단히 도발적이었습니다. 거기까진 좋았어요.
베이더의 손자인 카일로 렌이 주인공 중 한명인데, 이 녀석은 무작정 베이더를 숭앙하고 그처럼 되고 싶어하지만
그가 어떤 행적을 거쳤는지, 그 은하계에 어떤 악영향을 끼쳤는지는 전혀 모르는 것처럼 묘사됩니다.
사실 벌써 이 자체가 말도 안되는 설정붕괴이기도 합니다. 제가 시퀄을 극혐하는 이유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시퀄 7편 이전의 내용을 배경으로 한 외전들을 보면, 렌의 어머니이자 베이더의 딸인 레이아가
정계에서 몰락한 이유가 딸이란 것이 밝혀져서인 것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아들인 카일로는 그런 정황도 자세한 사정도 모른다, 말이 되나요?)
어쨌든, 렌은 메타적으로는 제법 흥미로운 캐릭터라고 봅니다. 어떤 후일담 서사의 인물로서는 기본 설정부터 글러먹었지만요.
렌은 기존의 베이더-제국-스톰트루퍼에 몰두해 이 시리즈에 40년간 충성해온 팬덤, 특히 팬보이들에 대한 직접적 비유이자
극렬한 디스에 가까운 캐릭터입니다. 이건 이토록 팬들의 충성도가 높은 오래된 프랜차이즈에선 엄청난 도발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렌의 캐릭터성은 일부의 호평과 달리 관객 다수의 엄청난 혹평을 면치 못했지요.
심지어 베이더와 함께 스타워즈 인기의 한 축인 스톰트루퍼들은
시퀄에선 나쁜놈들 집단 (퍼스트 오더)이 멀쩡한 인간 아이들을 납치해 병사로 세뇌시킨 것으로 나옵니다. 저는 이것도 시퀄의 큰 패착이라고 봐요.
결국 악에 물들었다 라이트사이드로 돌아오는 렌과 함께 스톰트루퍼들의 갱생을 9편에서 그리고 싶었다면,
트루퍼들도 세뇌가 아닌... 차라리 '돈'을 위해 아무 생각없이 군에 입대해서 자발적으로 봉사한 민간인들이었다면 어땠을까 싶어요.
8편에서 정치적 중간지대의 사람들은 오직 돈을 위해 움직일 뿐이란 묘사도 했고요.
9편에서 원래 그리려던 이야기가 소수자인 흑인, 동양인 외형의 캐릭터들이 합심해서 은하계의 시민들과 함께
제국에 대항한 시민봉기를 일으킨다는 레 미제라블 적인.. 원래 스타워즈의 흐름을 훌륭히 계승하는 이야기였다는 점도 아쉬움을 더하고요.
좀 길게 쓰다 보니... 꽤나 스타워즈 광팬이었던 저도 이젠 모든 열정을 상실해서(,,,,,) 더 쓰고 싶지가 않네요.
이만 줄이겠습니다.
2020.07.23 21:25
2020.07.23 21:30
2020.07.24 00:00
시퀄시리즈에서 맘에 안드는 것중에 하나는 캡틴 파스마같은 캐릭터 낭비하는 거였어요. 라제에서 좀 유감인 부분도 그거고요 ㅋㅋ 그웬돌린님 웅장한 전투장면을 보고팠는데 말입니다.
2020.07.24 01:38
파스마의 취급도 정말 이해가 안갔죠. 클래식의 성의없는 디자인 베끼기 투성이인 시퀄에서 그나마 인상적인 디자인 중 하나였는데.
2020.07.23 23:46
전 차라리 그래서 스타워즈 세계관에서 "천출"들이 지들끼리 지지고 볶고 하는 이야기가 더 좋은것 같습니다. 라스트제다이는 참 좋은 작품이었고 다시한번 스타워즈 팬심을 부글부글 끓어오르게 만들어주는 영화였는데요. 반어적인 제목도 너무 맘에들고 후반씬도 너무 좋았어요. 루크의 대사들, 어딘가의 포스센서티브한 아이들, 그리고 레이. 너무나도 멋진 스타워즈 영화 아닙니까. 아직도 루크의 "이건 제 잔상입니다만"씬만 보면 너무 멋져서 토나오고 새로운희망의 바이너리선셋과 수미쌍관한 그 마지막신도 눈물 철철흘리면서 보았는데 그런 감상에 동의하지 않는 팬들도 많다는 사실을 알고는 좀 충격이었습니다.
2020.07.23 23:51
제가 마지막 줄에 나온 그런 팬들 중 한 명인데 조조로 보고 평가하기 힘들어 저녁에 일부러 한 번 더 보고 신경 껐어요. 케이블에서 어쩌다 하는 것 보면 극장에서 본 것보다 더 별로네 합니다.깨포 9번 로그 원 9번 극장에서 봤어요.
2020.07.23 23:57
깨포와 로그원은 저도 너무너무 즐겁게 본 영화였어요. 여기서 몇회차 관람으로 배틀을 뜨고 싶은 덕후의 호승심도 있습니다만, ㅋㅋ 아무튼 유감입니다. 부디 소모적 논쟁에 지쳐서 그러셨던것은 아니길 바라고요.
2020.07.24 00:00
2020.07.24 10:27
반대로 재밌게 본 사람들은 다 진정한 팬이 아니고 PC충이라고 모는 듯 해서 참 별로더군요.
2020.07.24 11:44
2020.07.24 12:58
님이 못 보신 겁니다. 솔직히 몇몇 곳을 제외하면 라스트 제다이는 대부분의 커뮤니티에서 PC 범벅, 망작이라고 까이는 분위기가 훨씬 많은데 상대적으로 어떤쪽 의견이 수가 많을까요?
제가 하도 저런 반응이 많아서 각종 영화관련 게시판에서 스타워즈 관련 게시물은 거르게 됐는데요.
2020.07.24 00:14
라스트 제다이 정말 멋진 스타워즈 영화였죠. 저도 라스트 제다이 덕에 팬심을 오랜만에 활활 태워봤습니다. 저는 호불호가 꽤 갈린다는 이야기를 미리 듣고 극장에 보러 갔는데, 끝나자 마자 든 감상은 "이렇게 재미있는데 도대체 왜 어디에서 불호가??"였습니다. 집에 와서 인터넷을 켜보니 '망작'이라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서 당황했던 기억이 나네요. 언젠가 그런 멋진 스타워즈 영화가 또 나올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2020.07.24 01:42
이건 전적으로 제 생각입니다만...
달리 말하면, 예전처럼 학교에서 의무교육으로 쌓은 지식과 한정된 채널 (TV채널 3,4개, ~세기말까지는 고작 케이블방송 몇개) 정도에서 지식과 경험을 쌓은 세대가 이젠 한참 지나갔죠.
다양한 인터넷방송과 유투브, 참여형 위키 등으로 정보를 얻는 것이 일상화된 세대에게는
기존 세대들이 어떤 컨텐츠의 감상에 대해 비교적 '정론'과 크게 벗어나지 않는 입장을 취했던 것과는 다르게 평이 크게 갈리는 경우가 많이 보입니다.
2020.07.24 00:07
렌은 기존의 베이더-제국-스톰트루퍼에 몰두해 이 시리즈에 40년간 충성해온 팬덤, 특히 팬보이들에 대한 직접적 비유이자
극렬한 디스에 가까운 캐릭터입니다.
ㅡ 이거 글쓴 분의 해석이죠? 제작진이 이렇게 밝힌 건 아니죠? 그냥 물어보는 겁니다.
저는 나치 추종하는 중2병환자 정도로 생각했고 다스베이더의 그림자는 씨퀄에서 벗어나길 바랐습니다. 다스베이더가 아직까지도 팔리니까 제작진에서 안 놔 주고 질질 끌고 가는 듯 했어요. 벤의 캐릭터 설정이 매력없었고 잘못 꿴 첫 단추이긴 했어요
2020.07.24 01:46
네 물론 제 생각이지요~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고 분석하는 팬은 꽤나 많이 보아왔습니다.
저는 렌의 캐릭터 빌딩 자체가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렌(벤) 자체는 그야말로 '이유없는 반항'을 하는 인물이어서
관객에겐 계속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데, 그 원인은 부모, 조부 세대에 대한 어긋난 숭배지요. 충분히 베이더나 트루퍼, 제국에 사로잡혀
스타워즈를 그들 위주로만 소비하는 팬층에 대한 비유로 읽을 수는 있다고 봅니다.
2020.07.24 11:14
사실 “이랬었으면 좋았을텐데” 이야기 하는게 세상 쓸데없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3편(에피소드9) 연출을 엄청나게 제멋대로인(?) 감독이 맡아서 레이가 흑화하는 걸로 마무리했다면 길이길이 회자되었을 것 같아요ㅎ
렌은 다스베이더같은 카리스마를 갖기에는 너무 유약해보였고 (그렇게까지 변하는 거 보여주려면 3부작이 아니라 10부작 필요..ㅎㅎㅎ)
레이가 라제의 우물씬에서 잠깐 다크사이드 매료되었던 것을 복선으로 그쪽으로 쭈욱 직진...
그게 핀이라는 캐릭터의 종착점으로도, 시퀄의 방향성으로도 괜찮은 답이었던 것 같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