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바낭] 20년 전엔...

2023.10.30 00:45

로이배티 조회 수:703

 - 일단 백수였습니다. 취업 준비생. 열심히 준비... 를 안 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백수 2년차였는데, 뭔가 그냥 어떻게든 되겠지... 이런 심리 상태로 밥만 축내고 있었던 듯 하구요. 다행히도 다음 해에 바로 '어떻게든' 되긴 했습니다만. 당시의 한심한 저를 감당해주신 부모님께 한 없는 뤼스펙을 바칩니다. ㅋㅋ

 그러고 보니 올해가 취업 20년째였고 내년이 20주년이군요. 남몰래 혼자 자축이라도 해야할까봐요. 오래도 했습니다. 아직도 10여년이 더 남았지만요.



 - 세상은 더디게 변하지만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imf도 그럭저럭 지나갔다고 할 수 있을 시기였고. 또 박정희 전두환 사랑하는 분들은 20년쯤 세월이 흐르면 많이 떠나시고, 비중이 줄어서 당시 기준 보수보단 진보와 중도 쪽이 주류가 되어 있을 거라 믿었는데요. 요즘 나라 상황을 보면 참으로 순진했죠. ㅋㅋㅋ 오히려 한국 말고 다른 '선진국'들 꼴이 더 격하게 복고 모드인 걸로 위안을 삼아야 할까요.



 - 설마 그 시절 mp3에 담아 갖고 다니던 플레이 리스트가 20년 후에도 거의 그대로일 거란 생각은 못 했네요. 대략 이때쯤부터 제 문화 생활이 정체되기 시작한 것 같아요. 80년대와 90년대, 그리고 2000년대 초반 정도. "요즘엔 들을 음악 없다는 건 다 본인 게으름을 합리화 하려는 노땅들 핑계다." 라고 준엄하게 꾸짖던 김창완 아저씨 말씀에 격하게 끄덕끄덕하던 젊은이였습니다만. 이젠 김창완 할배보다 훨씬 뒤쳐져 있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ㅠㅜ



 - 음악 얘길 꺼낸 김에 그 시절 히트곡이 뭐였나... 하고 검색해 보니 김건모 8집이 연간 판매량 1위였다네요. 음. 전 이 앨범에 아는 곡이 하나도 없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듣고 다 잊었어요. 타이틀곡이 '청첩장'이었다는데 대체 왜 아예 기억이 안 나지? 하고 검색해서 들어보고 있지만 정말로 모르는 노래네요(...)

 근데 그 시절에 들었어도 분명 싫어했을 거에요. 그 때나 지금이나 이런 노골적인 신파 가사 노래는 제 감성으로 감당이 안 돼서 못 들어요.


 하지만 음반 말고 음원 순위를 보니 그래도 마음이 놓입니다(?) 연간 1위가 빅마마의 'Break Away'이고 브라운 아이즈의 '점점' 이라든가. 이효리의 '텐 미닛'이라든가... ㅋㅋ



 - 좀 짜증나는 이야기도 해 볼까요. 전문어씨의 '29만원' 드립이 이 해에 나왔습니다. 노무현은 '이쯤 되면 막 하자는 거지요?'를 검사들에게 발사했구요. 대구 지하철 방화 사건도 이 해의 일이었네요. 강남 아파트 값은 20년째 계속 폭등했나 봅니다. 대북 송금 특검이 있었고 정몽헌이 자살...

 아. 그만하겠습니다. 그냥 '그 때도 올해 못지 않게 개판이었구나'라고 생각하며 정신 승리하는 걸로.



 - 인터넷이 세상을 크게 바꿔 놓을 거라 믿었죠. 당연히 사람들이 좀 더 똑똑해지고 필요한 사람들이 전보다 더 쉽게 연대할 수 있는 아름다운 방향을 생각했습니다만. 뭐 결과적으로 크게 바꿔놓긴 한 것 같은데 그게...;



 - 몸이란 건 대충 막 굴려도 어떻게든 감당 해주는 편리한 물건... 이라는 생각 조차 안 하고 그냥 막 살았죠.

 요즘처럼 잠이 들 땐 바른 자세로 잠이 들어야 한다고 신경 써서 눕는 건 당연히 상상도 못 했고. 피자와 콜라, 튀김을 먹을 때 얼마 정도 먹으면 배가 안 불러도 그만 먹고 싶어지는 날이 오리라곤... ㅋㅋㅋㅋ 

 근데 이 시절의 저는 식탐이 전혀 없는, 그냥 살기 위해 필요한 만큼만 먹으며 사는 인간이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게 좋았는데요. 왜 지금의 저는 세상 모든 걸 다 먹고 싶어하는 과체중 아저씨가 되어 있는 걸까요.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길래!!!



 - 2003년에 개봉한 영화들 목록에서 '갈갈이 패밀리와 드라큘라'를 보고 피식 웃다가, '국화꽃 향기'를 보고 숙연해지구요. 근데 이 해의 한국 영화들은 되게 강력했군요. '살인의 추억'과 '올드 보이'가 한 해에 나왔고. '장화, 홍련' 에다가 '지구를 지켜라'도 있었구요. '스캔들: 조선 남여 상열지사'와 '실미도', '황산벌', '...ing' 같은 영화들도...

 물론 '대한민국 헌법 1조', '은장도', '조폭 마누라2',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 '낭만자객', '마들렌' 등등 다른 방향으로도 굉장히 강력하긴 합니다만. 아무튼 좋은 해였던 것 같구요.

 괴상하게 기억에 강하게 남은 건 이 때 개봉한 '원더풀 데이즈' 때문에 듀게에서 한 유저님이 매일 같이 불판을 깔고 무쌍을 벌이며 활약하던 모습입니다. 아주 많이 극찬을 하던 분이었는데 다들 기억하시겠지만 그 영화의 퀄리티는 그다지...; 



 - 그렇습니다. 그 때도 저는 듀게를 하고 있었습니다. ㅋㅋㅋㅋ 다만 그 때는 글은 잘 안 올리고 거의 댓글만 달며 살았죠. 당시 듀게는 일상 잡담 같은 것 자꾸 올리면 혼나는(...) 엄근진 커뮤니티였거든요. 바로 지금 제가 적고 있는 이런 글 말입니다.



 - 넷플릭스에 '인피니티 풀'이 들어온 걸 보고 어맛! 이건 바로 봐야해!!! 라고 생각해 놓고 왜 이런 뻘글을 적고 있는진 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다시 20년이 흐르면, 그 때까지 듀게가 존재하진 않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환갑을 넘어 한참 전에 정년 퇴임하고 칠순을 향해 달리고 있을 저는 뭘 하고 있을지...

 ...생각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ㅋㅋㅋ 지금이라도 바로 영화를 틀면 평소 취침 시간 맞춰서 간신히 잘 수 있을 것 같으니 일단 그렇게 하는 걸로.



 - 마무리는



 글 주제(?)가 있고 하니 2003년 노래를 올려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1993년 노래입니다. ㅋㅋ 그냥 조금 전에 유튜브가 저한테 들이밀어서요.

 제목을 보니 이번 달 영상인데, 이상은씨 여전하시고 좋네요. 만수무강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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