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1.22 19:54
여자애 한 명과 남자애 두 명이 있습니다. 남자애 왕신렌/아론은 여자애 린메이바오/메이블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린메이바오는 다른 남자애 첸쭌량/리암을 좋아해요. 그런데 첸쭌량은 알고 봤더니
왕신렌을 좋아하고 있었네요. 무한회전하는 영구기관 삼각관계의 탄생입니다.
이들은 모두 하얀 여름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들. 이 정도면 우리는 대만에서 종종 만들어지는
성정체성 모호한 청춘 로맨스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 중
두 명은 이전에도 이와 비슷한 삼각관계의 영화에 나온 적 있죠. 첸쭌량 역의 장효전은
[영원한 여름]에, 린메이바오로 나오는 계륜미는 데뷔작인 [남색대문]에. 그리고 [남색대문]은
이 영화 [여친남친]의 감독 양아체의 원작소설을 각색한 것이기도 합니다.
단지 [여친남친]은 두 가지 면에서 앞의 영화들과 다릅니다. 우선 계륜미와 장효전은 모두
20대 후반이라, 영화 전체를 고등학생으로 나오긴 좀 어렵습니다. 둘째로 이들이 고등학생으로
나오는 시대는 1985년. 대만에서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때입니다. 고로 이들의 이야기는
[영원한 여름]이나 [남색대문]보다 훨씬 넓은 캔버스에 그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8,90년대에 젊은 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대만현대사와 한국현대사의 유사점 때문에 공감하는
점이 많을 겁니다. 민주화 운동의 결과 대만에서 계엄령이 끝난 것이 1987년. 우리와 비슷한
때죠. 정치적 억압과 그 반발의 성격도 비슷하고요. 운동권 학생이었다가 유력인사의 사위로
들어가 서서히 사회 안에서 시들어가는 왕신렌 캐릭터는 우리에게도 지나치게 익숙해서
지겨울 지경입니다.
1985년, 1990년, 1997년으로 이어지는 세 주인공의 연애 이야기는 세월이 흐르면서
서서히 초반의 상큼함을 잃어버립니다. 이런 종류의 연애 이야기에서 가능한 길들
중 가장 구질구질한 것만 택해요. 세속적 야심과 욕망의 엇갈림 때문에 결국 모조리
불륜으로 빠져버리는 거죠. 그리고 (현대에서 시작되는 오프닝만 보면 짐작할 수
있겠지만) 과격한 관계 정리를 가능하게 해주는 비극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들의 개인적인 비극과 대만현대사의 연결이 어떤 시너지를 만들어내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습니다. 현대 파트의 낙천성에도 불구하고, 전 [여친남친]을
젊은 시절의 로맨스와 열정을 조금씩 잡아먹는 시간과 엔트로피와 구더기에 대한
컴컴한 영화로 봤습니다. 물론 21세기 초의 젊은 사람들은 이들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젊은이들에 대한 기대라는 것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허무한 것인지 여러분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13/01/22)
★★★
기타등등
계륜미의 남성팬 비중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는데, 상영회 소식을 들어보니 제가 짐작했던
것보다 많은 모양입니다. 작정하고 만든 퀴어 영화인데도 이성애자 남성관객들 비중이 높다면
그 때문일 듯.
감독: Ya-che Yang, 배우: Gwei Lun-Mei, Rhydian Vaughan, Hsiao-chuan Chang, Bryan Shu-Hao Chang,
다른 제목: Girlfriend, Boyfriend, Gf*Bf
IMDb http://www.imdb.com/title/tt2319760/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97650
2013.01.23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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