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정도 직장생활 하다 남편이랑 같이 미국 와 있어요 오면서 사직했구요

예정보다 미국에 오래 있게 되면서 전 그냥 학교 갈 준비 하면서 본의 아니게 집에서 놀게 되었는데요

(하루 종일 바쁜 다른 주부님들과 달리 전 애도 없고 둘만 사는 관계로 진짜로 놉.니.다.)

물론 노는 건 좋지요 좋습니다만

 

내 수입이 없다는 건 정신건강에 안 좋아요

남편이 돈 쓰는 거 가지고 구박은 안/못하지만 별로 안 쓰게 되구요

쓰고 싶지도 않아요 가끔은 뭘 사려다가도 혼자서 니가 그걸 살 주제냐 싶어 말기도 한다니까요

그리고 평소엔 돈에 대해 절대노코멘트하던 남편도  싸우거나 사이가 안 좋을 때 돈 얘길 간접적으로라도 꺼내면 자존심이 무너지는 것 같아서요 T-T

 

직장생활 하다가 미국에 온 같은 처지의 언니님과 말씀을 나눠 보니

처음부터 전업주부로 결혼생활을 시작한 사람들보다 일을 하던 여자들이 일을 안 하게 되면

그렇게 위축된다고. 그렇더라구요.

 

여하간 현재 직업이 없는 기혼녀인 저는 주부라고 불리우는 게 너무 싫어서 백수라고 자칭하는데

그나마 백수가 더 독립적인 unemployed 상태인 것 같긴 한데 더 깊이 생각해 보니 남의 돈으로 먹고 사는 백수는

진정한 백수도 아닌 거 같구요

 

얼마 전에 러브귤님이 다시 취직하신 글을 읽고 부럽다 못해 좀 괴로웠습니다.

일 안 하는 동안 그냥 혼자 어디 숨어 지내고 싶은 기분 저는 겪고 있어서요.

현재 미국에선 일할 수 없는 비자 상태고 미국에서의 재교육이 없는 상태로는 취업도 어려운 상태거든요.

오죽하면 예전 직장에서 다시 일하고 있는 꿈을 자주 꿉니다요 -ㅁ-;;

 

여자들이 일하는 것이 덜 일반적이던 어머니 세대엔 그런 고민들도 없었겠지만 

나도 분명 밥도 하고 (가끔) 청소도 하고 집안이 시궁창이 되지 않도록 방지하고 삐걱일지언정

고장 나지 않고 돌아가게 하는 데 일조하는데도 때때로 비굴한 생각이 드는 건 막을 수가 없군요.

예전 직장도 수입이 많지 않았지만 꼬박꼬박 돈을 벌어온다는 형식도 참 중요했으니까요

무엇보다 일을 안 하면 어떻게든 일하는 사람의 서포터로 간주되어도 할 말이 없다는 게 ...

 

좋아하지 않는 일이라도, 일한다는 사실이 참 중요한가봐요.

 나랑 잘 맞는다고 생각 안 했고 종종은 자괴감을 느끼게까지 했던 일들인데도

사회의 톱니바퀴로 착실히 굴러가고 있다는-돈을 벌고 돈을 쓰는 식으로 경제활동을 한다는 것이

저에겐 중요했었나봐요. 돈 버는 기능은 사라지고 돈 쓰는 기능과 기껏해야 좀 아끼는 기능 정도 밖에

안 남은 유닛이 되었어요...

 

여하간 요점은...

결혼하고도 수입이 없으면 배우자에게 얹혀 사는 느낌이 가끔 드는 건

엄밀히 그럴 필요가 없는 건데도 안 그러기 어렵네요 가끔 이건 신뢰의 문제인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그러니까 남들에게 남편 돈 쓰는 거 부담스럽다고 하면 그건 니 돈이기도 하다고 하는데

전 이제 우리 돈이 될 수는 있을지언정 내가 번 돈이 아니란 건 알거든요;;;  

 

물론 저도 이 상태가 지속되게 하지는 않을 거고 방법을 찾아서 다시 필드에 뛰어들 생각입니다만

지금 이 상태에선 이런 생각들을 계속 하고 있다는 거지요.

 

다른 분들은 남편과 아이들에게 큰 도움이 되는, 꼭 필요한 자신의 존재감에 자긍심을 가지고 계시고

마땅히 그럴 만한 일이라는 거 잘 알거든요 저도 헌신적인 전업주부셨던 어머니 덕에 늘 넘치는 보살핌을 받았으니까요.

문제는 그게 그렇게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도, 꼭 하고 싶은 일도 아니라는 거죠.

그러니까 전 자기 일에 긍지를 갖는 프로페셔널한 주부는 못 될 것 같아요

그리고 결혼한 여자들은 출산 육아 등으로 비자발적으로 이 상태가 될 수도 있다는 게 좀 억울하다면 억울한 일이죠.

 

여하간 답을 알고 있는 문제에 대한 잡담이었습니다;

 

아 아니 잠깐 그런데 일 안 하는 상태를 꽤 즐기시는 분들도 계시더라구요

꼭 기혼여성 뿐 아니라 그냥 템포러리 백수인 제 친구들을 봐도요. 심지어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어도 그걸 감수하며 즐기는 사람들도 간혹,

이건 제가 백수 쪽에도 적성이 안 맞아서 그런 걸지도요. 아니면 돈의 노예거나 그도 아니면 본투비 봉급쟁이거나...

그러니까 결론은 만에 하나 자기 이름으로 된 빌딩이 있어서 일 안하고 놀고 먹어도 된다면 정말 놀고 먹으시겠어요?

의외로 아닐지도요.

 

직장 생활도 일종의 중독인가 봐요. 점심시간 끝나고 듀게 띄워 놓고 테이크아웃 커피 빨아먹으면서

각자 뭘 먹었는지 공유하던 직장인 시절이 그리워요. 그땐 집에서 칼국수 해드셨다는 분들이 부러웠지만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32391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51432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61770
112617 [넷플릭스바낭] 핀란드제 누아르 '데드 윈드'를 보았습니다 [2] 로이배티 2020.06.26 2778
112616 깊은 빡침이 느껴지는 대통령의 연설문 구절 [7] Bigcat 2020.06.25 1522
112615 신림동 성추행 미수 사건의 결말 [4] 메피스토 2020.06.25 1123
112614 바낭 - EBS 마스터 공간의 역사 보다가 유현준 교수에게 실망한 부분 [1] 예상수 2020.06.25 808
112613 당신과 나와, 이미 지나 버린,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해 [8] 타락씨 2020.06.25 930
112612 광고)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에너지다 [2] 가끔영화 2020.06.25 487
112611 이런저런 일기...(대비) [1] 안유미 2020.06.25 446
112610 <포스트코로나>와 관련 재미 있는 수다 타래 하나 팔아봅니다 [4] ssoboo 2020.06.24 1000
112609 우주의 원리같은 수학공부(스트레스 덜받는 법) [1] 예상수 2020.06.24 533
112608 존 볼튼과 일본 그리고 한국 기레기와 문재인 [5] ssoboo 2020.06.24 1127
112607 유아인 박신혜 주연, 살아있다(스포일러) 메피스토 2020.06.24 825
112606 가수들은 왜 저렇게 노래를 잘할까 가끔영화 2020.06.24 380
112605 나혼자 산다 - 유아인의 책들 [10] Bigcat 2020.06.24 1782
112604 Lewis John Carlino 1932-2020 R.I.P. 조성용 2020.06.24 253
112603 김어준의 생각(존 볼턴, 한국 언론) [37] 왜냐하면 2020.06.24 1489
112602 (스포)라스트 오브 어스2 플레이중입니다 [7] 정해 2020.06.23 692
112601 다크나이트 용산 아이맥스 레이저 상영 [4] 예상수 2020.06.23 649
112600 애플 WWDC 2020(에어팟 프로 수리 후기) [1] 예상수 2020.06.23 436
112599 [부고] 듀게 회원이셨던 autecure님이 영면 하셨습니다. [65] 몰락하는우유 2020.06.23 4200
112598 Joel Schumacher: 1939-2020 R.I.P. [5] 조성용 2020.06.23 431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