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벨로주는 그 벨로주였네.

2010.07.09 16:22

스팀밀크 조회 수:2556

1. 가끔 가는 카페 중에 veloso 라는 곳이 있는데, 예전에 가게가 생긴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거리를 지나다가

 혹시 저 벨로주가 그 벨로주일까.. 이러면서 들어갔던 곳이죠.

카페 한 쪽 벽면 가득한 음악cd들과 세팅된 악기들을 보며 그 벨로주가 맞을 것 같은데, 이러다가 마침 흘러나온 음악이 벨로주의 곡.

게다가 무선인터넷 비밀번호가 caetano veloso 인 것을 알고 역시 이 벨로주는 그 벨로주. 이러면서 잠시 신나했죠.

같이 간 애인한테 거봐, 그 벨로주가 맞네! 이러면서 뭔가 퀴즈라도 맞춘 듯이 잠시 들떴었죠.

그 곳에 있으면, 익숙한 음악들은 물론 귀가 솔깃해지는 음악들도 간혹 만날 수 있어요.

카페 주인의 과거가 궁금하고, 어떤 사람인지도 호기심이 생기고, 결정적으로 부러워요.

자리가 딱히 편한 것도, 음료가 매우 맛있는 것도 아니지만(아 최근에 먹은 자몽에이드에 자몽 과육이 한 가득 있어 그건 꽤 만족스러웠죠)

음악 때문에라도 가끔씩 찾게 되는 곳.

그럴 가능성은 그닥 없겠지만, 혹시라도 손님이 저희 테이블밖에 없는 날이면 허락받아 드럼도 쳐보고 싶어요.

조금 부끄럽고, 조금 많이 근사한 기분이 될 것 같거든요.

 

2. 지난 겨울에 듀게에서 두 차례 벼룩판매를 했었는데, 그때 올해는 쇼핑 좀 자제하고, 특히 옷은 왠만하면 사지 말자고 결심했었어요.

 겨울은 그럭저럭 무사히 지나갔는데, 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 어느 순간 보니 옷장은 다시 포화상태.

한 번도 못 신고 박스에 넣어둔 신발이 하나 둘 늘어가요.

 왜 이리 옷 사는 걸 포기 못하고 점점 짐을 불리며 방을 카오스로 만들고 있는 건지. 무슨 세탁소도 아니고.

곰곰히 따져볼 것도 없이, 단 몇 분만 생각해도 이유는 몇 가지로 추려지죠.

물욕, 물건에 싫증을 잘 내는 성격, 허영심+etc.

한 번만 입어도 그 옷에 대한 감흥이 큰 폭으로 반감되서, 예쁘다고 생각하며 산 옷도 예쁜 줄 모르겠어요.

이런 느낌이 예전에는 주로 옷과 악세서리에  한정되었다면 언제부턴가 다른 것으로 번져 신발, 가방 같은 것들에도 싫증을 매우 빨리 느껴요.

이건, 정말 맘에 드는 것을 사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이유는 부분적인 걸테죠.

여름이 가기 전에 듀게에서 다시 벼룩판매 한 번 해야하나 싶어요. 

 

3. 또래 여자들과 비슷하게 먹어도, 아니 조금 더 먹어도 마른 것이 스스로 좀 의아할 때가 있어요.

부모님 두 분다 그 나이대 어른들 평균치답게 조금 통통하신 편이고 다른 형제들 봐도 저처럼 마른 사람은 없거든요.

식구들과 골격 자체가 다른 것 같기도 한게, 저 혼자만 어깨도 좁고 골반도 작고 전체적으로 뼈대가 가는 편이거든요.  

어릴 때부터 식탐이 많아 5,6살 경 사진을 보면 항상 뭔가 먹을 것을 들고 있던데,

예를 들어, 초콜렛 케잌 접시를 한 손에 쥐고 다른 한 손에는 전투적으로 포크를 쥐고 있다던가

사촌과 손을 잡고 나란히 서서 카메라를 응시하면서도 다른 한 손에는 빵을 들고 입안 가득 햄토리처럼 우물우물하고 있다던가 등등.

이 식탐은 지금까지도 계속되서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어떻게든 반드시 먹어야 하고, 또 잔뜩 먹어야 성이 차죠.

먹고 싶은 걸 못 먹었을 경우에는 그날 밤 바로 꿈에 해당 메뉴가 등장해 주시구요.

가끔 사람들은 먹는 것 보면 결코 적게 먹는게 아닌데, 마른게 신기하다고 말하죠.

그때마다 저는 "성격이 나빠서 그래요."라고 응수하는데, 아닌게 아니라 정말 성격이 나빠서 살이 안 찌는 것 같아요.

 

여기에 한 가지 가설을 덧붙이자면 숙면을 못 취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저는 꿈을 너무 많이 기억해요.  밤사이 자주 깨며 전 타임에 꾼 꿈의 이미지를 안고 다시 잠들어, 또 깨서 또 잔상에 괴로워하며 잠들고..

저에게는 어릴 때부터 줄곧 반복되오던 일상이죠.

가끔씩 궁금해져요. 저처럼 악몽을 많이 꾸고, 많이 기억해서 무의식과 의식 양쪽 모두에서 괴로운 사람이 얼마나 될까.

때때로 지나친 강도의 악몽에 떠밀려 소스라치게 눈이 번쩍 뜨여 공포를 느껴 전화기를 들었을 때 언제든 받아줄 사람이 있어 다행이에요.

괜찮아, 괜찮아 나 여기 있어, 나 바로 여기 있어.  라는 목소리에 심장박동이 평균치로 돌아가며 거짓말처럼 어쨌든 다시 잠이 들죠.

얼마전 관람했던 팻 매스니 공연에서의 연주하는 로봇기계 오케스트리온을 홀린 듯이 바라보면서도, 한편으로는 약간 긴장되고 초조했었는데

마침 심적으로 부담이 가는 상황에서 공교롭게 오케스트리온에서 악몽의 한 조각을 발견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오케스트리온의 모습에서 E.A.T 호프만의 '모래남자'나 한스 벨머의 스케치가 어느 한 순간 연상됐거든요. 

그래도 오케스트리온은 한 번 더, 이번에는 가능한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요. 매혹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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