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12 03:25
뒤로 갈수록 연결성이 투박한 느낌을 받기도 했지만, 수십년의 격변의 시대를 담아낸 점을 생각하면 캐릭터와 서사가 비교적 균형을 잘 이룬 것 같았어요.
장면 장면의 연출이 참 훌륭하다고 느꼈습니다.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첸 카이거 감독이 이제는 당 선전 영화나 찍고 있는 게 안타깝기도 하고..
모든 캐릭터가 살아 있지만, 장국영에 의한 장국영을 위한, 좀 더 정확히는 청데이라는 캐릭터를 위한 영화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데이의 아역배우들 또한 연기도 잘하고 외모도 어찌나 맞춤인지.. 캐릭터 완성에 장국영만을 언급하기에는 존재감이 너무 강렬하더라구요.
사실 모든 아역배우들이 훌륭했던 것 같네요.
두지(장국영 아역)가 특정 대사를 계속 잘못 말하는 건, 남성으로 태어나 여성을 흉내내며 살아야 하는 그 현실적인 상황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내면적으로는 결국 정체성의 갈등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흔들리는 정체성을 향해 '나는 사내다'를 스스로 되뇌어 왔던 것 아닐지..
시투(장풍의 아역)가 담뱃대로 두지의 입을 쑤셔서 피가 날 때 그건 꼭 처녀성을 잃은 순간의 모습 같은, 혹은 시투에 의해 비로소 두지가 '계집'으로 다시 태어난 것 같은 장면이었어요.
그 뒤에 이어진 '나는 계집으로 태어나...'라는 대사를 제대로 해내는 모습은, 전혀 슬픈 얼굴도 아니었고 오히려 환희에 찬 얼굴처럼 보였으니까요.
샤루(장풍의)와 주샨(공리) 사이에서는 아이가 태어나지 못하고, 두지는 장대인에게 강간 당하던 날 아기를 줍게 되고..
꼭 샤루와 데이의 자녀 같은 모습으로 후계자가 될 것 같았지만, 아기는 자라서 홍위병이 되어 세대 갈등의 상징이 되고 말았습니다.
참 슬픈 대목이었어요.
샤루는 매력있고 배려심 있는 사람이었지만, 자신에게 모든 것을 던지는 데이나 주샨을 위해 한 번도 완전한 희생을 한 적은 없는 것 같아요.
한국영화에도 좋은 작품이 많아졌는데, 이런 영화를 보면 또 갈 길이 멀구나 싶기도 합니다.
시대와 예술 그리고 개인의 이야기를 이렇게 장대하고 또 울림 있게 담아낼 수 있는 작품을, 우리 역사를 배경으로는 언제쯤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2020.05.12 15:18
2020.05.13 05:47
이벽화의 원작에서는 샤루와 데이의 말년이 좀 더 구체적으로 나오는 걸로 아는데, 개인적으로는 함축적으로 표현된 영화적인 결말이 더 마음에 드네요. 하지만 책도 꼭 읽어보고 싶어요. 장국영 배우는 이 결말에 대해, 원작에서 데이는 자살하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자살했을 거라 생각한다고, 예술 안에서 살던 사람이기에 자신의 늙어감을 받아들이지 못했을 거라고 했다더군요. 그런데 장국영은 죽기 얼마 전에 장만옥을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 너와 다시 영화를 찍고 싶지만 네 연인 역을 하기에는 더 이상 핸섬하지 않구나, 라고 말했다고 해요. 그때가 40대 중반.. 해피투게더 찍을 때가 이미 40대
이 영화에서 장국영이 가위손의 조니뎁과 어딘가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2020.05.13 15:35
창녀였음을 장국영이 폭로했을 때 공리 표정 잊지 못 합니다. 전세계 어딜가나 통할 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