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남편이 부쩍 늙었다는 걸 새삼 느끼고 있습니다.

(아, 잠깐. 왜 저는 늘 듀게에 남편 이야기를 쓰는 걸까요. 별로 안물안궁인 주제인데 왜 뭔가 아련하고 감성적이게 되면 듀게에 와서 끼적일까요. 혹시 재미 없는 분들껜 죄송해요.)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현재 두 사람인데, 한 사람은 8년을 보아왔고, 제가 창조한 한 인간은 이제 내일 모레면 딱 3년이 됩니다.

 

아이가 자라는 걸 목격하는 일은 비교하자면 자연이 일구어낸 경이로운 광경을 지켜보는 심정과 비슷합니다.

석양이 아름답게 진다던지, 동물들을 지켜 본다던지...그러한 마음이죠. 뭔가 감탄이 나오는 그런거요.

 

하지만 남편이 늙는 걸 지켜 보는 일은 뭔가 다릅니다. 뭐랄까...

굉장히 아끼는 물건을 매일 쓰면서 점점 낡아 가는 걸 지켜 보는 듯한 기분이랄까요.

사랑해 마지 않아 정이 담뿍 들어서 매일 기쁜 마음으로 찾지만, 매일 닳고 있는 사실이 조금은 애잔해서 가슴 한 구석이 짜릿하고 쓰린 느낌입니다.

 

스물아홉, 찬란한 청년의 모습으로 만나 지금 남편은 서른일곱이 다 되어 가네요.

살결이 뽀얗고 여리던 사람은 요 1년동안 볕에 많이 그을러 거칠어 졌어요.

서른이 되니까 귀신같이 세월을 알고 나오기 시작했던 아랫배가 조금은 더 빵빵해 졌고, 몸의 체취도 많이 변하였습니다.

내 남자 몸에서 나던 담배 내음이 전에는 그렇게나 달큰하고 프랑스 영화 같은 시크한 느낌이라서 좋았는데, 그러한 느낌은 이젠 손끝에만 약간 남았을 뿐 다른 아저씨들한테서 나는

불쾌한 담배 냄새가 되어 버렸어요. (그래서 요즘 구박을 조금 합니다. 담배 좀 끊으라고.)

 

어쩌다가 어느 날엔 아 내 남편도 이젠 누군가한텐 까마득한 아저씨구만, 하고 생각하다가도 옛날 사진을 보면 여전히 그 때에서 단 하루도 변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납니다.

영화 '문 스트럭'을 보면 거기서 주인공 숙모 부부가 달빛 아래에서 서로를 쳐다 보다가 숙모가 숙부한테 달빛 아래선 당신을 보니 스물다섯살 청년 같다고 하는 장면이 있잖아요.

꼭 그런 느낌입니다.

 

헌데, 아직 8년 밖에 안지났는데.

 

아마도 제 마음이 아직은 조금 젊기에, 남편이 애잔하고 그립고 좋아서 그런가 봐요.

이제 이런 마음도 좀 덜해지고 무던해 져서 그렇게 지내다가, 문 스트럭의 그 숙모, 숙부 정도의 나이만큼 늙으면 슬그머니 다시 그 마음이 돌아오겠죠.

그 때의 이 사람의 얼굴은 어떨런지...

조금은 그 미래가 아련하고 그리운 밤입니다.

달밤에 옆 사람 자는 얼굴 보다 뭔 글을 쓰는건지...저도 참;;

듀게 분들 모두모두 좋은 밤 되세요. 아니 좋은 새벽인가.

 

 

내일 부끄러우면 이글은 지워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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