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퇴근하자마자 갑자기 이번 주말은 아무것도 하지말고 영화나 계속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실행했습니다. 일요일밤까지 중간 중간 쉬어주며 달렸더니 5편정도 봤네요. 감상이 다 휘발해버리기전에 한두줄 남겨봅니다.


1. 1917

FPV 편집 기법에 대한 찬사? 멀미? 얘기는 익히 들어 알고있었는데 막상 보기 시작하니까 또 금세 잊혀졌어요. 

사실 블레이크와 스코필드 가족들 사진씬은 그다지 감성적으로 느껴지진 않았는데 체리 나무 메타포가 좋았어요.

스코필드가 오필리어처럼 통나무랑 같이 수면위를 천천히 떠내려갈 때 사사삭 떨어지는 체리 꽃잎씬도 기억에 남고.

그런데 사실 스코필드가 물에 떨어지는 씬부터 퍼뜩 이거 완전 '니모를 찾아서'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더군요...

어쨌든 최고의 장면은 역시 마지막에 종대로 달려나가는 병사들과 부딪치며 횡대로 뛰어가나는 스코필드의 그 장면이겠죠.

촬영 현장 클립을 보니 부딪치는 두 번의 장면은 심지어 연출이 아니더라고요. 

그 때 조지 맥케이라는 배우의 혼이 나간 듯한 집중과 헌신이란 그 장면 그리고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테마와도 정확히 일치해서 더 감동이었던 듯 합니다.


2. 미드소마


유전 때부터 이미 아리 에스터의 팬이었지만 미드소마 역시 주말에 본 5편 중에 가장 좋았던 것 같네요. 1년에 걸쳐 이런 영화들을 연달아 만드는 감독의 머릿속엔 뭐가 들어있을까요?

예쁘고 나른해요. 백야 들판에서 약에 취해 잠깐 단잠에 빠졌다 깬 느낌이에요. 분명히 악몽을 꿨는데 그 악몽이 너무 매혹적이라 다시 기억해보려하지만 연결되지 않는 신비로운 심상만 머릿속에 돌아다니는 그런 느낌입니다.

영화 자체의 결말은 좋았습니다만, 대니의 미래는 여전히 갑갑해보이는게 마음에 안들었습니다. 물론 눈구녕에 해바라기를 꽂고 불타는 것보다는 나은 인생입니다만, 결국 그녀 스스로 결정하고 타개해나간게 하나도 없는 느낌..

근데 스웨덴 사람들은 이러한 타자화에 대해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궁금합니다. 왜 그냥 깊은 산속에 있는 한 무명의 컬트 집단으로 그리지 않고 이렇게까지 Swedish를 강조한건지? 그 이유에 대해 아시는 분 계실까요?

그나저나 회사일을 좀 잊으려고 영화 릴레이를 시작한건데 외부인들을 못잡아먹어 안달인 컬트 공동체를 보니 또 회사 생각이 나더라고요.


3. 마션

5개 영화중에서는 제일 제 취향이 아니였어요. 이렇게까지 엔지니어적인 과정에 올인하는 영화인 줄 알았다면 안봤을 것 같기도합니다. 그러나 취향 밖의 세계를 탐사하는 것은 언제나 의미있는 일이죠.

미국 영웅주의나 젠더 문제를 의식적으로 벗어나려 노력한게 보입니다만, 그게 진짜 의문이에요. 언제까지 이렇게 의식적으로 극복하려 '해본 듯한' 모습만 봐야하는지.


4. 해피엔드

아무르는 보지 않고 봤어요. 사실 두 영화는 기조나 결이 너무 달라서 이어진다고 보기 어렵지 않을까요? 이걸 보고나면 그나마도 몇줌 남아있지 않은 인간애가 바닥을 칠 것 같았는데 의외로 덤덤했습니다.

이자벨 위페르가 초콜렛 한 상자를 주며 값싸고 격조있게(?) 아이를 달래는 모습이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억지로 환대하며 난민들에게 한 테이블 깔아주는 장면은 머릿 속에 오래 남을 것 같아요. 

또 한편으로는 여든에 가까운 하네케 감독도 이렇게 일신우일신하는데..하는 깨우침도 오더군요. 거장이라고해서 세상의 변화를 이렇게까지 수용하고 재창조하고 언제나처럼 첨예한 날카로움을 유지한다는게 쉬운일이 아닐테니까요.


5. 카페 소사이어티

우디앨런 인장 냉소, 조롱, 회한이 재즈랑 같이 줄줄 흐르고 호흡이 짧아 몰입도가 높았어요. 

제시 아이젠버그나 크리스틴 스튜어트 둘다 매력적인 배우지만 두 사람이 아주 잘 어울린다는 느낌은 없었습니다. 그는 안나 캠프(캔디)와 너무 찰떡이던데..

이걸 보니 레이니 데이 인 뉴욕도 보고싶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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