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전화 한통화에 길 가다가 주저앉을만큼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글을 쓴 적이 있었지요.

듀게님들께 늘어놓고 싶은 이 이야기는.. 그 전과 그 후의 이야기입니다.

 

사실...2주전에 이별을 했더랬습니다. 4년간 만난 사람이었고, 습하디 더운 대낮에 한 이별이었지요.

제가 먼저 우리 관계 다시 생각해보자고 운을 뗐고 남자친구는 갑자기 왜 그러냐고 했지만

저는 갑자기, 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학기가 끝나고 쭉 한 생각이지만 이제는 말해야 겠다고 했었지요.

 

그때 남자친구가 저에게 솔직하게 말하라고 제 손을 잡았어요. 너무 간절하게.

그때 저는 해서는 안될.. 아니.. 사실 뭐가 옳았는건지도 아직도 모를, 그런 말을 했었지요.

알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고. 그 사람이랑 무슨 관계가 진척된건 아니지만. 사실 아무 사이가 아닌게 맞지만.

그냥 이런 마음으로 더 이상 오빠를 좋아하기 힘들고 미안하다고.

 

그때 남자친구가 한 말이 아직도 생각나요. 그때 표정이랑 몸짓까지도.

손을 올리려다가 말고 멈칫하면서, 네 뺨을 떄리고 싶어. 너무 배신감 느껴... 라고 했었죠.

할 말이 없었어요. 아무것도. 미안하다는 말 밖에는... 미안해, 미안해. 계속 그 말만 되풀이하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전 집에가는 버스에 올라와있었어요.

 

사람이 참 간사한게.. 제가 먼저 그런 말을 해놓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계속 울고 그 이후에도 3일을 내리 울었습니다.

공부를 하려고 책을 딱 폈는데 그 자세로, 정말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남자친구 생각도, 어떤 추억도, 그 어떤것도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그 자세 그대로 한시간을 내리 앉아있다가 어느 순간 울고 있었어요. 정말 아무것도, 아무것도 할수가 없었어요.

 

이틀째 되던 날 밤에 남자친구에게 다시 돌아와, 라고 하는 전화를 받았고 그때도 줄줄 울었지만

그래도 돌아가겠다는 말은 안하고, 잘 지내, 미안해. 오빠가 나를 잊어도 나는 오빠를 계속 잊지 못할거야, 라는

지금 생각하면 오히려 상처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그런 말들을 하고 끊었지요...

 

삼일째 밤까지는 그렇게 정신이 없더니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주르륵 눈물이 나서 잠에 드는게 두렵고 잠에서 깨는게 두렵더니,

사흘째부터는 기가막히게 멀쩡해지더라구요.. 학원도 잘 다녀오고. 스터디도 참 잘하고.

 

냉정하게도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학원에서 집으로 오는 지하철 안에서.

어쨌든 다 사는구나, 뭐든 하게 되는구나... 오빠도 그랬으면 좋겠다. 꼭 그랬으면 좋겠다.

 

그리고 지금 2주가 흘렀어요.

저는 그 사이에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것같다는, 글을 올렸고

듀게님들의 부러움이 담긴 댓글을 받았더랬지요. 좋아보인다는.

그때 그 댓글들이 너무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 너무 이상한거에요.

내 자신이 싸이코패스가 된 느낌이랄까요. 뭐랄까. 나란 사람은 정말... 어이가 없는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이별....그 사람 때문이 아니라고는 할 수 없겠지요.

봄 학기가 끝난 무렵 헤어져야지, 라고 마음먹고 있었더랬지만

그 사람을 안 만났더라면 좀 더 더뎠을 거에요. 혹은 어쩌면 일어나지도 않았을지도 모르지요.

주저앉을 만큼 좋아한다는걸 깨달은건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 이전에도 분명히 진행되고 있었던,

어떤 마음. 어쩌면 제가 일상생활로 빠르게 원상복귀를 한건, 준비하는 시험도 있었지만

어딘가 마음을 비빌만한 곳이 있었기 때문일거에요 분명히....그 사람을 하니깐.

내일 그 사람을 만난다고 생각하니깐 기분이 좀 나아지더라구요. 정말. 못됐지요.

 

저는 주말알바를 하고 있어서 그 사람을 주말에만 봐요.

사실 왠지.. 그냥 왠지 하면 안될것 같아서, 이별했다는 애기는 죽 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이해가  안되시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사람과 사귀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거든요..

그냥 이대로, 이대로 언젠가 둘 중에 하나가 그만둔다면 그래서 이 감정이 없었던것처럼 잊혀지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했어요 오히려.

 

그런데 엊그제, 그러니깐 토요일에 정말 어쩌다보니깐 남자친구와 헤어졌다는 얘기를 했어요.

그러더니 제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힘들었겠네, 라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제 손을 잡는거에요 너무나 가만히.

저는... 저는 그 손을 피할수가 없었어요... 그렇다고 제가 운건 아니에요. 헤어져서 좋아요, 따위의 말을 주워섬긴것도 아니에요.

오히려 그 사람이 잡아준 손에, 남자친구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했어요. 지나간 이야기들, 좋았던 이야기들을....

 

근데 문득, 정말 생뚱맞게 이 사람이. 나 연말에 이 곳 그만둬. 취직했거든. 이라고 하는거에요.

이 생뚱함이란. 마치 음.. 비유를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정말 갑자기 그런 얘기를 하는거에요.

그때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서.. 아 축하드려요... 라고 말했.. 어요.

지금 생각하면, 음. 갑자기 조금 열받네요... 지금 그런 얘기를 왜 하세요? 라고 쏘아붙이기나 할껄..

 

그리고 그 이후에, 그 이후에 그 사람의 행동을 아 제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이 사람이 계속 제 손을 너무 '잘' 잡고 있어요. 뭐 스치듯이 손을 잡는다거나 어깨를 잡는 경우는 있었지만,

그 토요일 이후부터 제 손을 너무 부드럽게 잡고 있어요. 가끔은 제 손등에 입술을 대기도 해요.

자연스럽게 제 어깨를 잡고. 어쩔땐 제 어깨에 고개를 기대기도 하고.

어느순간 민망했는지 어쨌는지 나 애정결핍인가봐, 손 잡는게 너무 좋아 하더니 계속 손을 잡고 있어요.

 

저는 쿨한척 잡혀주고 있지만 어쩌면 그 사람은 제 마음을 다 궤뚫은건지도요...

어제는 영화를 보러 가자고 하더군요. 솔직히 싫지는 않았으니 그러자고 했지만 마음이 계속 찝찝해요.\

그 사람의 행동들이 전혀 연결이 안되고 속내도 모르겠어요.

 

취직한다, 는 말을 저는 일종의 끝, 으로 받아들였어요. 그런데 그 이후에 갑자기 이렇게 다정하게 구니...제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사실 제 머리보다 몸이 더 먼저 반응하고 있긴해요. 그 사람 손을 도대체 뿌리치질 못하니....

같이 일하는 또 다른 사람이 저희가 서로 갈구는 걸 보고 (그땐 손을 안 잡고 있었고 약간거리를 유지하고 있었지요)

너네 사귀냐? 라고 하는데 저는 그 자리를 ... 도망쳤어요. 못들은척 하고. 그리고 나중에 돌아오니깐

그 다른 사람이 00아, A가 그러게, 오해 받겠다. 라고 했다 낄낄 그러더군요. 그 말을 들으니 왠지 울컥했는데 그냥 웃고 말았어요.

 

마감시간이 다가왔는데, 그 말이 나온 이후에 저희는 좀 떨어져 있었어요. 손도 안 잡고 있고.

그리고 매니저님이 정산을 하러 왔고 저희가 서 있는데, 그 사람이 등 뒤에서 제 손을 잡더군요...

저는 정말 병신돋게도 그 사람을 마주보면서 씨익 웃어버렸네요.

 

글을 쓰면서 든 문득 .... 생각인데, 저도 그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친구들은 이왕 그렇게 된거, 그냥 새로운 만남을 가져보라고 하지만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이 사람이 제 손을 잡는게 싫진 않지만, 사귀자고 한다면 약간 기겁할것 같아요.

 

이 만남의 끝이... 너무 잘 보이니깐요. 꼭 사귀지 않아도요. 지금은 이렇게 잘 지내고 있어도,

연말이면 그 사람은 직장에 들어가고 저는 알바하는 곳에 있고. 서로를 아주 잘 잊어가겠지요. 

아무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아 여기까지 쓰다보니........어쩌면 저는 그 사람의 손셔틀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그런데 뭐 그러면 또 어떤가 하는 생각도.....휴......

 

아... 제가 쓴 글이긴 하지만 정말 쓰면 쓸수록, 다시 읽어보면 읽을수록 참 못되었네요.

듀게님들이 그럼 그렇게 상처줘놓고 그 사람이랑 행복한 연애를 하길 바라니? 라고 혼내셔도 할말이 없어요...

그냥.. 그냥 이야기 하고 싶었어요. 털어놓고 싶었어요. 무슨 말을 듣고 싶어서 이러는지, 저도 모르겠지만. 모르겠어요. 모르겠어요...

네.. 사실.... 제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라고 묻고 싶어요... 그런데...

제가 생각해도, 제 글은 어떤 답이 나오는 글이 아니네요.......

 

 

 

 

그래서 빨리 연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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