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종로 3가 서울극장 3층에 있는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세계적인 거장이자 미국 독립영화의 아버지인 존 카사베츠 회고전이 열리고 있어요. 오늘 포함해서 3일이 남았는데 상영작 중에 <오프닝 나이트>를 강력히 추천드리고자 글을 올려요. 밑에 쓴 글은 예전에 썼던 것인데 이 영화를 추천드리기 위해 그대로 올려드려요.

<클라우즈 오브 실스 마리아>와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을 재미있게 보신 분들에게 <오프닝 나이트>를 강력히 추천드리고 싶네요. 두 작품이 모두 <오프닝 나이트>와 유사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에요. <클라우즈..>를 연출한 올리비에 아사야스는 실제로 카사베츠를 좋아하고 줄리엣 비노쉬가 연극 속 배역과 자아 사이에서 갈등을 하는 설정은 <오프닝 나이트>에서 가져왔다도 해도 무방해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의 경우 우연히 <오프닝 나이트>와 비슷해진 부분이 있는 것 같구요. 예전에 서울아트시네마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배우 문소리씨가 이 영화를 추천한 적도 있어요.

오늘 마지막으로 상영되는 <영향 아래의 여자>(오스카 여우주연상 노미네이트,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 수상작)를 비롯해서 <얼굴들>(베니스영화제 수상작), <사랑의 행로>(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 수상작) 등 존 카사베츠의 대표작들을 보실 기회가 아직 남아 있으니까 관심 있으신 분들은 챙겨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회고전 링크와 <오프닝 나이트>에 관한 클립 링크를 남겨드리니까 보다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시기를 바래요. ^^


존 카사베츠 회고전 링크: http://www.cinematheque.seoul.kr/rgboard/addon.php?file=programdb.php&md=read&no=920&PHPSESSID=65b90cc98abd229c5f41a1a3402e541d


<오프닝 나이트> 관련 클립 링크: http://youtu.be/EwS0CPNTggw?list=PLB6Y37loY7w7J_A_Z_MF2Tj9eoeA4Vovl


(아래 글에는 엔딩에 대한 언급이 있어요. 특별한 반전 같은 건 없기 때문에 엔딩을 알고 봐도 크게 문제가 있는 작품은 아니에요.)


존 카사베츠의 <오프닝 나이트>는 정신적 위기를 겪고 있는 한 여배우를 통해 무대와 현실과의 관계를 탐구하는 작품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카사베츠의 영화로 그의 최고작이라고 생각한다. 무대와 현실과의 관계를 다룬 영화들 중에서도 단연 최고 수준의 완성도를 보여준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머틀 고든(지나 롤랜즈 분)의 연기를 지켜본 매니(벤 가자라 분)의 아내인 도로시가 머틀과 포옹하면서 그녀에게 '당신만이 할 수 있는 연극이었어요'라고 말하는 순간은 정말 심금을 울린다. 그리고 그 순간은 영화와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기까지 한다. 
이 영화는 간단히 얘기하면 정신적 위기 상황에 직면한 유명 여배우인 머틀 고든이 '더 세컨드 우먼'이라는 연극을 공연하면서 겪게 되는 심리적인 변화를 따라간다. 존 카사베츠는 유동적인 삶의 흐름을 포착하는 데 있어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대가인데 이 영화에서는 무대 속으로 어떻게 현실이 틈입해 들어가는가에 관한 탐구를 시도하고 있다. 잘 짜여진 연극이 현실의 예측불가능성과 우연성을 만났을 때 새롭게 재창조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카사베츠가 그의 장편 데뷔작인 <그림자들>부터 일관되게 추구해온 영화 세계와도 연결된다. 그는 기승전결식의 서사 구조를 가진 기존의 할리우드 영화를 거부하며 영화 속에 즉흥적인 요소를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약동하는 삶의 흐름 그 자체를 담아내는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영화에는 신경쇠약에 걸렸거나 만취 상태 혹은 흥분 상태에 있는 인물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런 인물들이야말로 각본대로 움직이지 않고 미리 행동을 예측할 수 없어 삶의 유동성을 포착하기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의 예술 세계가 집약된 작품이 바로 <오프닝 나이트>라고 할 수 있다. 카사베츠는 이 영화에 직접 모리스 역으로 출연하고 있고 이 영화에서 그의 뮤즈이자 부인인 지나 롤랜즈가 주연을 맡고 있으며 카사베츠의 어머니와 벤 가자라, 피터 포크, 세이무어 카셀 등 카사베츠의 영화들에 출연했던 배우들이 다수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 영화는 한 편의 연극을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여기에서 연극을 영화로 치환하게 되면 이 작품은 한 편의 영화를 만드는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다. 또한 이 영화에는 영화를 보는 관객의 위치를 대변하는 도로시가 나오기까지 한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카사베츠 스스로 그의 예술 세계를 긍정하는 작품이며 그의 영화 자체에 대한 하나의 논평으로 보이는 측면이 있다. 그의 예술 세계에 대한 긍정은 관객 입장에서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실로 감동적이다. 
<오프닝 나이트>는 지나 롤랜즈의 경이적인 연기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상할 가치가 있다. 지나 롤랜즈는 아마도 영화 사상 가장 위대한 여배우 중의 한 명일 것이다. 나는 그녀를 연기의 신 중의 한 명이라고까지 부르고 싶다. 이 영화에서의 그녀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그저 감탄사만 내뱉게 된다. 특히 영화의 후반부에서의 연기가 압권이다. 이 영화에서의 지나 롤랜즈는 정말 굉장하다. 이 영화의 한 장면은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내 어머니의 모든 것>에서 그대로 오마쥬되기도 했다. 이 영화에는 오손 웰즈의 <시민 케인>에서 집사역으로 나왔던 폴 스튜어트도 출연한다. 그의 노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오프닝 나이트>는 주인공 머틀 고든과 함께 시간을 견디며 경험해야 하는 영화이다. 대단한 영화 체험을 할 수 있다. 이 영화를 보게 된다면 누구나 마지막 장면의 감흥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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