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전에 썼듯이 지망생 모임에도 종종 나가곤 해요. 드라마나 시나리오 쪽 지망생이나 웹툰 쪽 지망생 모임 말이죠. 


 한데 '지망생'의 모임이란 건 둘중 하나예요. 해맑고 희망에 차 있는 사람들이거나, 꽤나 초조해하는 사람들이거나...둘중 하나죠. 전자의 경우는 대개 어리고 후자의 경우는 나이가 좀 있는 편이예요. 반드시 그런 건 아니지만 평균적으로는요.



 2.사실 내게는 전자의 경우도 후자의 경우도 머리로는 납득하지만 잘 와닿지 않아요. 피상적으로만 그들을 납득하니까요. 전자의 경우는 그렇게 희망에 차 있을 수 있다는 게 이해가 안 가고, 후자의 경우는 그렇게 초조해한다는 게 이해가 안 가는 거죠. 



 3.여기서 잠깐 딴얘기를 하자면 작가란 직업은 괜찮아요. 돈을 떠나서 자신의 자의식을 투영할 수 있고 일에 대한 보람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편집자를 잘 만나면 대접받는 기분도 들고요. 말이란 게 아 다르고 어 다르잖아요?


 직장에서라면 결과물을 제대로 못 해가면 '너 이자식! 이걸 지금 보고서라고 써 왔어? 자정까지 다시 해서 가져와!'라고 하겠지만 작가의 경우는 '아이고 작가님. 이 부분은 수정 좀 가능할까요?'정도의 말을 들으니까요. 어쨌든 '작가님'소리를 들으면서 일하면 기분도 괜히 좋은 거잖아요?


 물론 직업인 이상, 어떤 직업이든 완전히 만족스러울 수는 없는 법이예요. 하지만 직업이라는 틀에 맞지 않는 나조차도 할 만한 직업이니까...작가라는 건 꽤나 할 만한 직업인 거죠.



 4.휴.



 5.한데 요즘에 만화 일을 좀 해보려고 무언가를 넣었는데, 그만 떨어지고 말았어요. 그러고 나니 기분이 별로 안 좋았죠. 사실 내게 그 일은 꼭 필요한 건 아니예요. 그리고 떨어졌다는 소식을 들은 순간에는 '다행이다. 일할 필요 없네.'라는 생각도 들어서 나름 다행이라고 여기기도 했고요.


 하지만 역시 시간이 지나며 생각해 보니 기분이 좋지 않아요. 예를 들어서 이런 거죠. 그렇게 관심있지는 않은...만나서 놀 수 있으면 좋고 아니면 마는 정도의 여자에게 만나자고 했다가 까였다고 쳐요. 그러면 그야 '반드시 잘 되고 싶은 여자'에게 까인 것보다는 대미지가 적겠죠.


 그러나 그것도 상처가 안 될 수는 없어요. 상대를 어떻게 여기든간에, 누군가에게 소외됐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슬픔이 드니까요. 그리고 그건 일도 마찬가지예요. 그 일을 함으로서 버는 돈이 별것 아니어도, 그 일을 꼭 하고 싶지는 않았더라도...거절을 당했다는 사실 자체가 마음쓰이는 일이니까요. 



 6.그런 일을 겪고 나니 모임에서 지망생 생활이 길어져 초조해하는 사람들의 심정이 이해가 많이 갔어요. 왜냐면 그들에게 만화가나 다른 작가 일은 현실이니까요. 나처럼 '연재가 안 되면 놀 시간이 많아지니까 그것도 괜찮다'가 아니라 정말로 연재나 일감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에서 투고가 거절당한다면? 그럼 정말 자신감이 떨어질 거니까요.


 한데 한 번도 아니고 공모전이나 투고처럼 경쟁률이 큰...될지 말지 알 수 없는 도전을 몇 번이나 낙방을 거듭하는 신세라면? 나는 일이 잘 되다가 딱 한번만 떨어져도 벌써 자신감이 떨어지는 중이거든요. 한데 한 번도 연재가 성사된 적 없이 계속해서 떨어지는 상태에 놓여 있으면 정말 그럴 것 같아요. 자신감이 떨어져서, 본실력의 100%를 낼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릴 것 같아요. 불확실한 도전을 거듭하는 상황은 정말 무서운 일인 거죠.


 이건 격투기나 스포츠도 비슷해요. 공격이 잘 안통하는 상대를 만나면 자신의 모습을 잃어버리게 되거든요. 자신이 잘 하는 것을 시도하지 못하고 괜히 다른 공격을 시도한다던가 다른 기술을 시도한다던가, 트렌드에 맞춰버린다던가 함으로서 본실력조차 안 나오게 되어버리는 거죠.



 7.어쨌든 그래요. 연재를 한번 거절당하고 나니 어쩐지 무심한 마음으로 지망생 모임에 갈 수 없는 기분이 되어버렸어요. 전에는 그들이 이해가 안 가서 편하게 갈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들의 마음이 이해가 가니까요. 코로나가 끝나면 한번 모이기로 했는데...어째야 할까요.



 8.하지만 정말 창작 쪽 일은 어려워요. 이걸 하겠다는 사람은 원래 많았지만 이제는 많은 정도가 아니라 넘쳐나니까요. 이제 이 바닥에서 살아남으려면 진정한 실력자이거나, 이런 아수라장이 되기 전에 이미 라인을 잘 타 놨거나 둘중 하나예요. 


 잘 모르겠네요. 라인을 잘 탄다...이런 쿨하지 않은 말은 예전의 나라면 입 밖에 내는 걸 상상조차 못했을 말이거든요. 이런 말을 한다는 건 중2병이 나아버린 걸까요? 아니면 현실에 절여져버린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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