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이 쇠락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꾸준히 사람이 빠지고 있어요. 대놓고 말은 안하지만 이건 조직 및 인사 관리 부서에서 우리 팀의 중요성을 아주 낮게 보고 있다는 증거지요. 일시적인 인력 부족 때문에 그러니 곧 채워주마 라는 임원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인원은 그 이후로도 더 빠졌습니다. 그러다 얼마 전 결정적인 전력 누수가 생겼어요. 회사가 좀 이상해서 실무적인 사업 처리도 많지만, 그에 못지 않게 많은 것이 말장난입니다. 만날 중장기 전략, 무슨무슨 대책, 무슨무슨 정책 아이디어 이런 걸 요구해요. 팀 전체의 사업을 아우르거나 심지어 다른 팀의 사업까지 건드려야 하는 일인지라 대개 팀에서 짬밥이 좀 되는 과장급이 이 일을 맡습니다.

 

그런 일을 하시던 분이 얼마 전 빠졌습니다. 후임은 안왔어요. 팀원들은 패닉에 빠졌는데, 팀장은 의외로 여유롭네요. 이럴때 팀장 성격 나오는 것 같아요. 어떤 팀장은 이번 인사에서 자기 팀 직원이 빠진다는 말을 듣자마자 비슷한 성격의 임원에게 고자질하고, 그 임원은 인사팀장에서 전화해 이걸 죽이네 살리네, 가만 안두네, 내가 한 번 가서 큰 소리 쳐야되겠냐, 뭐 이런 협박을 늘어놓아서 절대 저지한다는데 팀의 핵심 인력이 나갔건만 아무런 어필이 없군요. 그냥 성격상 그런 것 같아요. 다른 문제에서도 "팀장님 이건 제가 감당이 안되는데 팀장님이 저쪽에 좀 어필해 주세요" 라고 대놓고 요구해도 "아이 뭘 그런걸... 그냥 직접 전화 해봐. 잘 얘기하면 되겠지." 하며 뒤로 빠지시는 편이거든요.

 

문제는 사람은 빠져도 일은 계속 있다는 거죠. 속 모르는 타 부서에서는 예전같았으면 그 분이 하셨을 요구자료들을 게시판에 띄우며 던져놓습니다. 문제는 팀장님이 "새로운 과장이 올 때까지 그 사람이 하던 일은 모 대리가 하도록 하지?" 라는 업무분장 정리를 안해줬다는 것. 그럼 결과는 뻔하죠. 아무도 안해요. ㅡㅡ; 마감날 지나서 팀장님께 항의 들어오면 그때서야 "이거 아무도 안했어? 이걸.. 김대리가 하지?" 하며 배당. 난데없이 일이 생긴 김대리는 뿔나죠. 사실 미리 업무분장을 해준다고 불만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죠. 큰 일을 떠맡은 사람은 계속 불만이 있으니까요. "아 놔 지가 정치력 없어서 과장 뺐기고 새로 데려오지도 못한 결과를 왜 내가 뒤집어써?"

 

이렇게 미리미리 팀원들의 할 일을 분장해주지 않는 것, 정치력이 없어서 팀원들을 힘들게 하는 것, 뭐 이런게 팀원들의 주요 불만거리였습니다만.. 전에 부장급에 해당하는 친척형들과 이야기해보니 확실히 입장이 바뀌면 생각도 바뀌더군요. "야, 팀장은 뭐 좋아서 뺐겼냐? 그리고 그런건 아랫것들이 알아서 솔선수범 해야지. 서로 자기가 해와서 팀장이 누구걸 골라 낼까 고민하게 해야지 안시켰다고 안하는 그런 소극적인 직원들은 다 짤라야돼. 그 팀원들도 다 능력 없으니까 다른 능력있는 팀장들이 안빼가서 그런 팀장 밑에 있는거여. 누가 누굴 욕해."

 

하여간... 요즘은 능력있는 팀원이 짬밥 먹으면 좋은 팀장이 되는 건 아니라는 걸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실무처리능력과 팔로워십으로 윗선의 인정을 받아 팀장이 되면 그때부터는 리더십을 가지고 팀원들이 과거의 자기처럼 실무를 처리하고 잘 따라오도록 이끌어야 하는데 그 자체도 쉽지 않고, 특히 '실력으로 승부하겠다'며 사내 정치에 거리를 두고 고독한 레이스를 펼쳤던 사람일수록 팀장이 되면 평가가 급락하는 경우가 많은듯 해요. 에효...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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