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14 20:22
* 재택근무 5주차에 접어들었습니다. 해 보니 저랑 너무 잘 맞는 것 같아서 갑자기 출근하라 하면 우울증 걸릴 것 같습니다. 사람을 상대하는 스트레스가 확 줄어들어서 정말 편합니다. 제가 하는 일이 하드웨어쪽이라 사실 재택근무가 좀 힘든데 일부 장비는 집으로 택배로 받고 개인적인 물품도 사용하면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사무실에서는 제가 실험실이랑 장비 관리를 했는데 인간들이 당췌 물건을 쓰고 제 자리에 둘 줄을 모릅니다. 제가 일일이 잔소리해가며 따라다녀야 되고 하루가 멀다하고 잔소리하는 이메일이랑 잃어버린 장비 찾는 이메일 보내고...(인간들이 또 지들이 쓰고 어디다 처박아뒀는지 모르면서 나중에 저한테 물건 찾아달라고 옵니다)....그랬는데 그 스트레스가 모조리 사라졌습니다. 너무 너무 좋습니다. 아마 저희 팀원들도 제 잔소리 안 들어서 스트레스 풀릴 듯.. 아니 이 인간들은 제가 잔소리해도 귓등으로도 안 들으니 애시당초 사람으로 인한 스트레스 따위를 모르는 부류겠죠.
바깥 출입도 거의 안 하는데 이것도 좋습니다. 저는 전혀 불편하거나 갑갑함을 못 느껴요. 아침마다 동네 한국인 카페에 가서 커피를 사고 이틀에 한 번 정도 마트에 가서 장을 보는 게 다입니다. 술집, 레스토랑등을 제외한 물건을 파는 소매점들은 대부분 영업을 하기 때문에 쇼핑은 갈 수 있습니다. 헬쓰클럽도 영업 중지라 운동도 집에서 유튜브로 하는데 정말 편합니다. 채널이 너무 다양해서 유산소 운동, 근력운동, 요가, 필라테스 원하는 건 뭐든지 골라서 할 수 있네요. 저는 여러 개 시도해보다가 땅끄와 오드리 부부의 채널이 저한테 제일 잘 맞는 것 같아서 그걸로 하고 있어요. 점심먹고 30분정도 빡세게 운동하고 업무로 복귀하는 데 시간에 쫓기지도 않고 좋습니다. 일하는 중간 중간 고양이님과 놀아줄 수도 있고요.
* 다들 코로나 이후의 달라진 세상에 대해서 경고하는데 그게 지금부터 쭈욱 영원히라는 얘기는 아니겠죠? 앞으로 평생동안 모여서 놀지도 못하고 학교도 무조건 온라인이고 악수도 포옹도 안된다면 얼마나 끔찍하겠어요? 백신이나 치료제가 개발되고 인류 다수가 면역을 획득하는 짧으면 1년에서 길면 3년정도의 시간동안이라면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이걸 마치 모든 인류 문명의 양상이 영원히 바뀔 것 처럼 얘기하니까 너무 디스토피아적이예요. 그 보다는 코로나 이후 급격하게 변하여 지속될 것들은 산업구조가 아닐까 합니다. 이 사태는 지난 30년간 거침없이 폭주하던 세계화에 처음으로 제동을 건 것이기도 하죠. 특히 가장 최근의 10년은 그 폭주의 정도가 굉장히 심했습니다. 가랑비에 옷젖듯 전혀 의식하지 못하다가 이번 사태로 그 규모와 정도를 알고 새삼 놀랐습니다. 우선 세계의 모든 곳에서 모든 곳으로 엄청난 사람들을 실어나르던 저가항공...대체 그 규모가 얼마나 되었던 것일까요? 전 세계의 호텔을 꽉꽉 채우고도 모자라 일반 주거지까지 침투해 여행객들에게 잠자리로 제공된 유사 호텔 산업, 도심의 주거지가 상업적 호텔로 변하고 정작 주민들은 살 집을 못 구해서 쫓겨나던 대도시의 상황.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여행을 다녔던 것일까요? 지금은 바다의 애물단지가 된 거대한 크루즈선들을 보고 있으니 초현실적으로까지 느껴집니다. 직원만 1000명이 넘고 승객들까지 수천명의 사람들을 태우고 지구 구석 구석을, 남극에서 북극까지 부지런히도 다녔더군요. 그런 배들이 한 두 척이 아니예요. 저 배들은 하수와 쓰레기 처리는 어떻게 하는 것일까?
모두들 중국의 돈에 취해서 영혼까지 갖다 바치며 저렴한 물자를 마구마구 소비했어요. 지구는 플라스틱 쓰레기로 가득 찼고요. 그래서 그렇게 저비용의 세계화로 구축된 경제 시스템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한 방에 무너진 후 각 나라들은 다시 이런 일이 생길 때 대처할 방법을 찾겠죠. 특정 국가에 너무 의존하면 안 되겠구나 하는 걸 깨달았을 수도 있고 자국에 필요 최소한의 필수품과 의료물자 생산을 위한 제조시설을 구축할 수도 있겠죠. 사실 이게 더 좋은 대안이라고 생각하긴 합니다. 소규모로 필요한 만큼을 지역적으로 생산해서 사용하는 것 말예요. 경제 주권을 획득하고 눈치 안 보고 할 말은 하고 살 수도 있겠죠. 프리 홍콩, 프리 티벳, 자유세계 만세!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라 그 댓가가 참 뼈아플겁니다. 하지만 이미 사드 때 수업료를 지불했으니 한국도 과도한 중국 의존도를 서서히 낮춰가야 하지 않나 싶어요. 더불어 생산과 소비가 좀 더 고비용으로 치솟는다고 해도, 그래서 경제가 코로나 이전처럼 불붙기는 어렵다고 해도 그건 인류가 떠안아야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지속가능한 세계를 원한다면요.
그리고 기후변화 얘긴데, 태평양 가난한 섬나라의 소녀가 눈물로 호소해도 안되던 기후변화 협약, 코로나 한 방으로 그냥 반전이 가능했어요. 어떤 보이지 않는 거대한 자연의 힘이 인간의 폭주를 보다 못해 강제로 멈추었다고 해도 믿을 지경이예요. 수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댓가로 치른 후에 말입니다.
* 재외국민 투표를 일찌감치 했습니다. 원래 교민 편의를 위해서 투표소를 여러 곳에 설치하려고 했는데 주정부의 코로나 락다운 방침과 맞물려 그렇게 못했습니다. 투표 시작될 때 이미 긴급한 이유없이 외출금지령이 떨어진 상태였거든요. 그런데 영사관에서는 투표 준비를 굉장히 잘 해놨더라고요. 자원봉사 하시는 분들이 건물 1층에서부터 사회적 거리 지키기 안내와 더불어 손 소독제를 뿌려주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주고 엘리베이터도 한 꺼번에 두 명 이하만 탈 수 있게 통제하고요. 투표소 들어서는 순간 체온 측정, 그리고 나올 때 엘리베이터 버튼 눌러주고 등등...안내하시는 분께 큰 절을 할 뻔 했습니다.
* 이 동네는 아직도 마스크에 대해서 결론을 못내리고 갈팡질팡 하다가 미국에서 천으로 입과 코를 가리고 다니라는 권고가 나온 후 심각하게 고려하더니 여전히 쓰지 말라고 권고하는 걸로 결론. 현실성이 없어요. 왜냐하면 밖에 나가면 인종을 가리지 않고 다들 마스크를 쓰고 다녀요. 전문가 (의사)의 인터뷰를 TV로 보는데 뭔가 앙글로 인종 특유의 오만같은 게 느껴졌어요. 내가 전문인데 내가 제일 잘 알아. 아시아 너네들이 방역을 잘하든 못하든 나보다 아는 것 없음...좀 이런 태도? 물론 우려하는 바는 이해합니다. 물량수급이죠. 모든 사람들이 의료물자를 구하려고 난리를 치면 진짜로 의사, 간호사들이 사용할 물량이 없어지니까요. 그렇다면 최소한 천 마스크라도 권장해야한다고 봅니다만 '효과 없다. 쓰지 마라'로 결론을 내리는 게 어이 없어요. 마스크는 내가 아플때 쓰는 거지 건강한 사람이 쓰면 효과가 없다는 거예요. 아니 잠깐만, 그런데 건강한 의료진은 감염을 방지하기 위해서 써야 한다면서요? 아, 그건 의료진은 감염자들을 직접 접촉하니까 그들로 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써야 하는 거고요. 그거라고요! 코로나 바이러스는 내가 감염이 되었는지, 옆에 앉은 기침도 재채기도 안하는 사람이 감염이 되었는지 모른다는 게 문제라고요. 누가 아픈 사람인지 모르니까 일단 마스크를 써서 불확실성으로부터 보호하자는 게 그렇게 어려운 논리인가요? 생각해보니 서구 사회의 이 지난한 마스크 논쟁은 모두 감기와 인플루엔자 현상에 기반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걸 절대적 진리처럼 믿고 있어요. 코로나 바이러스는 무증상일 때 전파력이 높다고 한국 질본이 계속해서 강조하는데도 말예요. 처음보는 바이러스고 아무것도 모르는데 '건강한 사람이 마스크를 쓰는 건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주장의 지나친 자신감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또 기침이나 재채기는 의도적으로 피할 수 있다고 해도 대화를 하면서 미세한 침방울이 튀어 이뤄지는 무증상 전파를 생각한다면 두꺼운 천 마스크만 써도 상당부분 보호가 될거라는 게 그렇게 이해하기 어려운 게 아니잖아요?
2020.04.14 20:50
2020.04.15 09:42
2. 사람들이 국가에 따라 우월감 열등감을 느낄 수는 있으나 과학자들이 그런식의 판단을 하면 안되죠.
3. 이민 온 사람들이 여기서도 아이들을 사교육으로 내몰고 사립학교, 실렉티브 스쿨의 경쟁이 치열합니다. 한국과 별반 다를 게 없어보이는 치열한 교육 전쟁을 보고 있으면 왜 이민을...?하는 의문이 들죠. 그런데 이런 것들이 사교육 산업에 의해 부양되는 것 같아요. 한국인 학원등이 우후죽순 생기면서 부모들의 불안한 심리를 이용하는 마케팅은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교육에 단점이 있듯이 장점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균형을 맞추는 게 어려워서 그렇죠.
2020.04.14 20:52
코로나19 이전의 세계는 이제 다시 오지 않는다...라는 뜻에는 코로나19같은 전염병이 한번 오는게 어렵지 두번 세번 반복되면서 더 잦아지고 강력해질수 있다는 가설에 근거하고 있는거 같아요. 아시다시피 사실 오래전부터 전문가들은 슈퍼바이러스를 경고해왔죠. 그래서 빌케이츠같은 이들은 사재를 털어 이 분야에 돈을 쏟아 붓고 있었구요. 그런데 코로나19는 전문가들이 경고하던 그 슈퍼바이러스에 한참을 미치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이 난리를 겪고 있어요. 과연 진짜가 오면 어찌 될까요?
그런 의미에서 코로나19는 일종의 예방접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진짜 쎈 놈이 오기 전에 인류가 정신차리고 준비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라고나 할까요?
살고 게신 그 동네는 수치상으로 다른 나라들에 비해 굉장히 ‘선전’을 하고 있는 편이더군요. 말씀하신 그런 답답함은 그런 제한적인 ‘선전’에 기인하는 것인지도
2020.04.15 09:50
호주 정부는 이탈리아, 한국 때만 해도 불구경은 아니고 어느 정도 여유가 있어 보였는데 유럽 전역에 번지기 시작하면서 굉장히 선제적 대응을 했습니다. 한국식의 광범위한 검사와 (TV 브리핑에서 매일 우리가 인구당 검사수로른 세계 탑 수준이라고 과시함) 유럽식의 엄격한 락다운을 동시에 시행했어요. 그렇다고 통행증 가지고 외출하는 건 아니고요 쇼핑하러 가고 운동하러 가고 애들 픽업 가는 것, 병원 가는 것 그 외에 정의가 모호한 필수불가결한 이유로 돌아다닐 수 있습니다. 지금은 검사에 여유가 있는지 일부 핫스폿 지역에는 해외여행이나 감염자 접촉 이력이 없더라도 감기 증상이 있으면 검사해 준다고 오라고 하네요.
2020.04.15 09:22
저도 재택근무가 잘 맞아서 속으로 오잉? 하고 있어요.
아침 산책도 매일 하고 낙엽지는 것도 보고
아이들과 맛있는 거 해먹고,
딸내미는 베이킹에 맛을 들렸구 아들은 가드닝하고
퍼즐도 하고 뜨개질도 하고 출근시간은 5초고...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 중의 하나라니
의료진들과 행정가들이 선전하고 있는 것은 맞죠.
그러나 다시 출근하게 되면 저는 반드시 마스크는 쓸거예요.
2020.04.15 09:55
진짜 코로나 이후 변화된 세상에서 재택근무만은 지속되었으면 좋겠어요.
1. 저는 백신이나 치료제가 나오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것 같아요. 참았던 욕망을 다시 폭발시킨다고나 할까요 그러다 또 신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출현하겠죠.
2. 서유럽이라든가 미국, 캐나다에 대한 고정관념(선진국이며 그들의 복지제도가 궁극적이며, 아 미국은 빼고요.. )혹은 열등감이 흔들릴 것 같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요
아마 우리의 열등감은 흔들리겠지만 그들이 그동안 가졌던 근거없는 우월감을 단박에 열등감이나 겸손으로 바꾸기는 힘들겁니다.
한국 엄마들은 자국의 의료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할때 항상 서유럽의 치료법과 비교하곤했죠.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 정말일까 싶었는데 이번 사태로 바닥까지 뒤집어본 느낌입니다.
3. 저는 교육제도때문에 우리나라를 버리고 이민간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게될지 궁금합니다. 아이들을 죽이는 현 교육제도라면 다른 측면에서 다른 나라의 문제점이 드러난 후라도 우리나라를 떠나겠죠.
어차피 백신이나 치료제는 시간문제니까요 설마 이번 사태가 우리나라 교육의 장점이 발현된 것은 아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