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무원

2023.11.20 14:26

Sonny 조회 수:401

대만으로 짧게 여행을 다녀오면서 간만에 비행기를 탔습니다. 기내식도 오랜만에 먹어보고 비행기에서 처음으로 영화도 보면서 좀 들뜨더군요. 그런데 시야에 자꾸 들어오는 게 승무원분들의 노동이었습니다. 이 분들 하는 일이 정말 보통 일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에 만감이 교차하더군요.


제 눈에 먼저 밟히는 승무원 노동의 힘든 점은 사람을 직접 대면해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사람을 직접 대면하지 않는 여러 일이 있죠. 그런 일들도 나름의 고충이 있겠지만 사람을 마주하는 일에는 또 굉장한 피로가 붙습니다. 사람의 얼굴을 대하면서 이 사람을 이해시키고 불만을 받아주는 일 자체가 보통 기빨리는 일이 아니니까요. 그런데 여기에 한국 특유의 소비자 계급론이 따라붙습니다. 소비자는 왕이라는 마인드를 기본적으로 탑재하는 인간들이 많으니 남의 말도 안듣고 뭘 요구하면 일단 기분나빠하는 사람들이 태반입니다. 그런데 이걸 승무원분들은 있는 힘껏 얼굴에 친절가면을 쓴 채로 설명해야하죠. 더군다나 "친절"을 기본적으로 요구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이걸 절대 벗을 수 없는 승무원분들은 얼마나 피곤할지요.


그렇다고 승무원 분들의 일이 이게 끝이냐면 아닙니다. 음식을 서빙해야하는데 그 좁은 비행기 복도에서 천천히 움직이면서 식사들을 하나하나 챙겨줘야합니다. (이 때도 저 친절가면은 무조건 쓰고 있어야 합니다) 그 전후로 음료수도 하나하나 손님들에게 챙겨줘야합니다. 이 음식서빙이라는 게 간단한 일 같지만 음식이 상하지 않게 보관을 잘 해야하고 또 뒤처리도 해야합니다. 한국사회에서 음식점 서빙을 어떻게 취급하는지를 생각한다면 승무원들의 이런 노동이 절대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걸 상기하게 되죠.


이건 제 개인적인 일화인데, 제가 탄 비행기가 서버가 불안정했는지 영화 연결이 잘 안됐습니다. 제가 앉은 자리는 하필이면 영화가 아예 플레이가 안되더군요. 승무원분을 호출해서 물어보니 오류가 맞다면서 재부팅하고 다시 한번 확인해보겠다고 안내하셨습니다. 그런데 제 자리는 끝내 영상 플레이가 안되더군요. 최신 영화 보던 걸 다시 보고 싶어서 좀 아쉽긴 했지만 안되면 하는 수 없지~ 하고 그냥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승무원분들이 계속 제 자리에 와서 체크를 하시고, 나중에 영상 플레이가 안되는 걸 확인하신 다음에는 너무 죄송하다면서 요청하지도 않은 안대와 펜을 주시더군요. 좀 멋쩍었습니다. 심지어 제가 내릴 때에도 영상 안되서 죄송하다면서 엄청 사과를 하시는데 아니 이렇게까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친절하면 사람 기분이 좋긴 하지만 이렇게까지 친절이 제공되는데에는 분명히 그 정도의 과한 친절을 요구했던 다른 승객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비행기에서 내리면서 괜히 심란해졌습니다. 승무원이라는 직업에 대한 선망은 사실 이 직업군의 노동에 대한 존경이라기보다는, 이 직업군에 종사하는 "젊은 여성"들의 상품성을 고평가하는 인식에 더 가까운 것이 아닐지...한편으로 대기업이 이렇게 개개인의 과한 친절을 상품으로 내놓는 것이 정신건강에 어떤 악영향을 끼칠지 하는 것들이요. 저는 이제 정돈된 억양으로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고객님?"이라고 하는 말을 듣는 것이 마냥 기분좋지만은 않습니다. 비행기라는 공간이 굉장히 밀폐된 공간이라는 것까지 더한다면 이 분들은 승객의 입장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고충을 매일 겪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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