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2.12 14:19
베를린 출장 중 교통사고를 당한 마틴 해리스 박사는 깨어나서 아주 황당한 일을 겪습니다. 인생 전체가 송두리째 날아간 거죠. 아내는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옆에는 자기가 진짜 마틴 해리스라고 주장하는 남자가 있으며 대학 홈페이지에 가도 그 남자의 사진이 나옵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음모라고요? 하지만 그 음모가들이 얼마나 대단하길래 우연히 일어난 교통사고까지 통제하죠?
이 도입부를 보고 "와, 궁금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라고 생각하는 관객은 별로 없을 겁니다. 디디에 반 코벨라르의 소설을 각색한 [언노운]의 도입부는 놀랍고 믿을 수 없긴 하지만 진부합니다. 수많은 작가들과 도시전설 창작자들이 이와 비슷한 소재로 재료를 만들었고 실화도 몇 개 있죠. 숙련된 관객들이나 독자들은 이미 가능한 답들을 암송할 수 있습니다. 단지 영화가 그 중 어느 것을 택할 건지는 직접 봐야 알지요. 이건 '로맨스 소설의 빨간 머리 여자주인공이 대저택의 도련님을 택할 것이냐, 농장의 근육질 터프 가이를 택할 것이냐'의 문제와 같습니다. 설정만 봐서는 알 수 없어요. 단지 마지막에 해답을 들어도 그리 놀랍지는 않을 겁니다. 이거 아니면 저거니까요.
영화의 해답도 그리 놀랍지는 않습니다. 음모의 정체가 밝혀질 때, 전 그 결정적 대사를 거의 자동적으로 암송하고 있었죠. 수많은 선례들이 있습니다. 몇 분 머리를 굴렸을 뿐인데, 유명한 SF 영화 몇 편, 추리물 몇 편, 스파이물 몇 편이 떠오릅니다. 큰 거 하나를 기둥으로 삼아 이것저것을 엮었는데, 그 중 몇 개는 역사가 대부분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오래된 것들입니다. 선례라고 생각하는 작품들도 최초는 아니라는 거죠.
단지 영화는 이 재료들을 비교적 노련하게 묶었습니다. 영화를 보다보면 "이렇게 건성으로 이야기를 짜다니"라는 생각이 들 법한 설정이 몇 개 나오는데, 한탄하며 보다보면 이게 꽤 그럴싸한 설명을 달고 해결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플롯이 비교적 꼼꼼하게 짜여져 있는 겁니다. 미스터리도 조금씩 변주를 주어 호기심을 자아내게 하고요. 이 경우에는 문제를 반대 방향에서 거꾸로 만드는 방식을 취하고 있지만요.
이야기에는 여전히 한계가 있습니다. 특히 진상이 밝혀진 뒤에는 스토리가 편리하게만 진행되는 경향이 있어요. 클라이맥스는 폭발적이지만 기계적이라 교통정리 겸 쓰레기 청소처럼 보이기도 해요. 그리고 전 브루노 간츠가 연기한 전직 슈타지 간부 캐릭터가 낭비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더 나은 사용방법이 있었을 거예요. 그러나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본다면 영화는 익숙한 주제를 프로페셔널하게 마무리지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액션 장면은 많지 않지만 노련하게 통제되어 있습니다. 대부분 독일 스태프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을 텐데, 원래 이 나라의 스턴트 질은 수준이 높죠. 리암 니슨, 브루노 간츠, 디안 크루거, 프랭크 란젤라 역시 시치미 뚝 떼고 이 비현실적인 이야기에 그럴싸한 현실감을 넣어줍니다. (11/02/12)
★★☆
기타등등
1. 반전 홍보라는 게 장기적으로 성공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처음부터 반전을 기대하고 간 관객들은 대부분 실망하기 마련이죠. [언노운]의 홍보팀도 개봉 첫 주에 치고 빠지는 전략을 취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2. 독일 무대의 영화인데 정작 디안 크루거의 캐릭터는 불법이민자더군요.
감독: Jaume Collet-Serra, 출연: Liam Neeson, Diane Kruger, January Jones, Aidan Quinn, Bruno Ganz, Frank Langella, Sebastian Koch
IMDb http://www.imdb.com/title/tt1401152/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2042
2011.02.12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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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걸` 하나를 기둥으로 삼아<---오타라고까진 못 해도 문장이 좀 어색한 듯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