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의 글" ^^

2012.01.05 23:14

reading 조회 수:3908

   오늘 논문 완제본을 학교 학사 지원부에 제출하는것으로 5년간의 학위 과정에서의 마무리가 지어졌습니다.

논문 마지막장에 감사의 글을 쓰긴 했지만, 제가 봐도 오글거리고, 맘에 없는 말도 좀 했고 해서 (^^) 조금은

더 솔직하게, 게시판에 학위 과정 동안의 소회를 좀 밝혀볼까 합니다.

 

   산학과정 프로그램을 통해서 공부를 한것이기 때문에, 5년 동안 전부 full time 학생은 아니었고, 2년 full time,

3년 part-time으로 진행을 했습니다. 6년간 회사만 다니다, full time으로 학교에 가 있으니까, 정말 천국이 따로

없더라고요, 오랜만에 원하는 수업 찾아 듣는 것도 새로웠고, 책이나 영화등도 회사에 매여 있을때보다 엄청

많이 봤고요, 원하는 때에 식사하고, 자고, 놀고, 수업외에 관심있는 분야 찾아서 공부하고 등등, 제 인생의

몇 안되는 최고의 기간이었습니다.

 

   그러다가, 3년전에 다시 회사로 돌아와서, 일주일에 하루 학교가서 논문쓰고, 나머지는 회사일을 하는

part-time 체제로 전환이 되니, 너무 너무 힘들더라고요. 학교 가서는 회사 일 걱정, 회사에 있으면 학교 논문 걱정,,

그러다가, 회사일 크게 터지면 그나마 학교도 못가고 일에 치이고요, 그래서 결국, 산학 프로그램이 정해 놓은

4년 이내에 해야 하는 졸업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나름 마음을 굳게 먹고, 작년 한해 동안은 거의 20년 만에

고3 생활을 다시 한듯 합니다. 밤 늦게까지 회사일을 마치면, 다시 새벽까지 논문을 쓰는 생활을 하게 된 것이지요.

생각해 봤더니, 일주일에 하루만 학교 가서 쓰는 논문으로는 5년 내에도 졸업을 못 할 것 같더라고요. 고등학생때나

해 봤던, 새벽 별 보고 집에 들어오기도 해야 했고, 출장 가서도 시차를 이용해서 논문을 쓰기도 했습니다. 

 

    결과는 말씀드린대로, 비록 정해진 기한을 1년 넘기긴 했지만 그래도 원하는 결과를 얻은 것 같습니다.

 

    먼저, 아내가 너무 좋아합니다. 말로는 "당신 학위 늘어나는 거지, 내 학위냐" 면서, 나름 cool하게 반응도 하지만

속으로는 제 졸업을 정말 많이 바랬던 것이 표정으로 읽힙니다. Full time 2년 동안 학교 근처 식당 반찬이 너무

짜고 맵다고 했더니, 손수 반찬 만들어서 도시락 싸 주던 정성과 고마움을 10분의 1 정도는 갚은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또한, 무엇보다 아버님이 속의 응어리가 어느 정도는 풀어지신듯 합니다. 학부를 졸업하고, 원래는 박사까지

계획하고 유학을 갔었지만, 결국 박사 진학은 못하고, 석사만 마치고 취직을 했었거든요, 아버님께서는 당신이

충분히 재정적 지원을 하지 못해서 제가 중도에 돌아온 것으로 생각하시고 그동안 자책을 많이 하셨거든요.

산학 프로그램으로 국내이긴 하지만, 박사 공부를 하게 되었다고 말씀드린 이후부터 내색은 안 하셨지만, 제 졸업을

누구 보다도 학수고대 하셨을 겁니다. 논문 디펜스 통과하고 나서 전화 드렸더니, 나중에 학위증 나오면 갖고 오라고

하시면서 날 풀리는 춘 삼월에 조촐하게나마 동네 잔치를 꼭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는데, 왜 그렇게

눈물이 쏟아지던지,, 참,,, 암튼 그랬습니다.

 

   마지막으로 막내 아들 박사따서, 대학 교수하는 모습을 보시는 것을 평생의 소원으로 품고 계셨던, 저희 어머님

생각이 너무 납니다. 학부 졸업하는 것도 보지 못하고, 일찍 돌아가시긴 했지만, 만약  하늘 나라란 곳이 있다면

그 곳에서 얼마나 기뻐하실까를 생각하면, 또 주책없이 눈물이 흐릅니다. 회사에 매인 몸이라 교수 되는 것이

거의 불가에 가깝지만, 그래도, 지금 일에 최선을 다하면 그게 또 어머님 뜻에 조금이라도 부합되는 길이 아닐까

합니다.

 

    인터넷 여러 게시판중, 유독 우리 듀게가 (해외) 고학력 분들이 많은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분들 앞에서, 겨우

"국내" 학위 받게 되었다고 이렇게 주저리 주저리 길게 글 남기는게 한편으론 민망하고, 한편으론 부끄럽기도

합니다만, 위에서 말씀드린대로, 저에겐 무척이나 소중하고 의미있으며 나름 노력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해서,

염치없지만 길게 글을 남겨봅니다. 모쪼록, "애 모니" 하지만 마지고, 너그러이 축하의 마음 가져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회사 주변분들이, 그동안 논문 쓴다고 회사일 소홀히 했으니, 이제부터는 일에 올인해야지 하면서, 농담반

진담반 말씀을 하십니다. 그런데, 일도 일이지만, 막상 더 이상 논문에 매달릴 필요없다고 생각하니, 왜 이렇게

관심이 가는 분야가 많아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저의 오랜 로망인, 제가 하는 일에서는 당연한 프로이면서, 전공과

전혀 상관없는 특정한 분야에서도 전문가 못지 않은 식견을 갖추도록 하려면 노력을 더 해야겠습니다.

 

   논문의 감사의 글에서도 언급 했지만, 그동안은 정말 무수히 많은 분들에게 일방적으로 은혜를 받고만 살아

온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받은 은혜를 베풀줄 아는 삶도 배워가도록 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늦었지만, 게시판 분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올 한해도 건승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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