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의 행방, 침착함의 행방

2020.03.14 11:39

겨자 조회 수:1153

분에 안맞게 비싼 의자에 앉아보겠다고 이리 고르고 저리 고르다가, 그만 의자는 세탁 세제며 사탕이며 육포가 되고 말았습니다. 허만 밀러니 휴먼스케일 샀으면 큰 일 날 뻔 했어요. 


미국 Homeland security에서는 판데믹 오기 전에 2주치 물과 식량을 사두고, 처방약 받아두고, 의료보험증 찾아놓고 의료기록 찾아놓고, 증상을 가라앉힐 수 있는 약과 수분 공급할 수 있는 음료, 비타민 사두고, 가족들과 대화를 자주 나누라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꽤 사러 나갑니다. 게다가 이 나라는 종말이 올 거라고 생각하고 준비하는 사람들 (둠스데이 프레퍼)도 꽤 됩니다. 둠스데이 프레퍼들은 돈 쓰는 단위가 달라요. 탈출을 위해 헬기도 사고 식수 확보를 위해 수영장도 파는걸요. 


물건 사러 나갔다가 크게 충격을 받았어요. 사람들이 많거나 전투적이면 그것 가지고 쇼크를 받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쇠약해보이는 어르신이 물건 사러 나온 거 보고 도저히 상점에 진입할 수 없었어요. 아 이 분은 부축이 필요할 것 같은데... 다른 상점에서 뭐 샀는데 잘 사지도 못했어요. 왜 갑자기 초콜렛 한 봉지, 젤리 여섯봉지, 육포, 세탁 건조할 때 정전기 막아주는 종이 두 박스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을까요. 이럴 때는 밀가루나 소금이나 뭐 그런 걸 사야하는 거잖아요. 뭘 사야할 지도 모르겠고 얼마나 사야할 지도 모르겠더군요. 마치 주식시장에서 뭘 사야할지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폭락장이 온 것 처럼요. 이 경우는 반대로 막 가격과 구매 기회가 사라지고 있는 상황이지만요. 지금 체크해보니 뉴욕타임즈에 유용한 기사 (Stocking your pantry, the smart way)가 있네요. 정신을 놓다가 차 사고 낼 뻔 했어요. 잠이 부족해서 어지럽고, 딱이 배고픈 거 같지 않으니 제때 먹지 않다가 몸이 힘드네요. 재택근무가 되었지만 일은 진짜 더 많고, 얼굴 보고 이야기하면 풀릴 걸 잘못 이메일 써서 일이 꼬이고, 실수가, 갈등이 생기네요. 그런데 일을 안하면 불안해서 일을 계속 하게 되요. 


이런 와중에 주변에 있는 몇 분이 아주 멘탈이 강하셔서 제가 그 멘탈을 빌려씁니다. 한 사람은 "나는 부자야. 이럴 때 주변 사람을 도와줘야해"라는데 부자 아니예요. (고소득이지만) 맞벌이를 하고 있고 아이가 둘인, 치안이 나쁜 동네에서 빡빡하게 사는 사람이예요. 그런데 돈 있는 자기가 써야한다면서 지금 식품을 사들여서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있어요. 왜냐하면 학교가 문 닫으면 엄마는 집에서 애를 봐야 하고, 그러면 당장 굶는 사람이 생겨요. 학교가 여는 한 아이는 한 끼는 먹을 수 있거든요. 


또 한 분은 어르신인데 80대십니다. 제가 너무 걱정을 하니까 이 병은 젊은 사람은 많이 죽지 않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세요. 그러면 이 분은요? 본인이 바로 고위험군에 속하는 분인데 이렇게 침착하게 판단을 하시고 뭘 어떻게 해야할 지 어느 뉴스가 나왔는지까지 잘 알고 계시네요. 세번째 분은 이미 한 달 전에 이렇게 될 걸 알고 차분히 준비하셨다고 하네요. 


꼭 같지는 않지만 이런 넋나가는 상황을 두 달 가까이 한국인들이 겪었다는 말이죠. 경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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