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치치 움치 나는 별일 없이 산다아아-

라고 외치는 장기하의 노래를 즐겨 듣는 철철마왕입니다. 반갑습니다. :-D

 

글을 쓰는 지금은 5시 30분을 조금 넘긴 이른 아침입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니 정겨운 새소리와 상쾌한 아침 공기.... 이런 건 없구요. 그저 책과 나와 허리디스크, 곰팡이뿐인 방구석입니다. 제가 허리디스크가 있어요. 4 5번 사이에 얌전히 있어야 할 디스크님하께서 슬쩍 외출 중이십니다. 발병은 2007년에 했는데 그간 살 만하다가 지지난 주  조금 심해져서 다시 열심히 치료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1주일 병가 내고 직장도 쉬었습니다. (야호) 지금은 통증이 많이 가셔서 출근도 하고 걷기 운동도 할 수 있지만 자다가 약기운이 떨어지면 궁디가 아파요. 꼭 바늘 하나 박혀 있는 것처럼 쑤십니다. 그래서 일주일에 두 밤 정도는 자다가 깹니다. 오늘도 통증이 심해서 깨어났습니다. 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수면 장애라더군요.

 

수면장애. 하필 제 낙이 자는 거에요. 잠도 많고, 자는 게 좋고(!) 자는 시간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정말 작정하지 않고서는 밤 9시가 넘어서 깨어 있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지금 자야 내일 더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으니까요. 본의 아니게 새나라의 어린이입니다. 그런 저에게 수면장애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입니다. 통증 때문에 자다 깬 첫날은 너무나 슬펐어요. 잘 수 없다니! 내가 잘 수 없다니! 나도 토니 스타크처럼 궁디에 아크를 달고 아이언맨이 되어야겠어!

 

오늘도 통증이 덜한 자세를 잡아 보려고 한참을 뒤척이다가 이럴 바엔 그냥 일어나자 싶어서 발딱 일어나 앉아습니다. 슬며시 우울해질 뻔했는데요, 그냥 마음을 고쳐 먹기로 했어요. 밤에 약기운 떨어져서 길게 못 잔다면 낮에 틈틈이 자두면 되는 거고, 자다 깨면 책을 읽거나 체조를 하거나 다른 걸 하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궁디 좀 아프다고 슬퍼하면 마왕이 아닙니다요.

 

제가 올해로 5년차 직장인인데요. 발령 받고 1, 2년은 정말 직장생활이 아무런 재미가 없었어요. 적응도 잘 안 돼서 걷돌기 일쑤였고, 그덕에 직장 사람들 술안주 0순위인 적도 있었지요. 그래도 마음을 열고 대해 주신 좋은 분들이 있어서 참 다행인 나날이었습니다. 어느 날 저와 잘 지내는 한 선배님께 고충을 토로했어요. 직장 생활이 전혀 재미가 없다구요. 그러니 그 분께서 씩 웃으시며 하시는 말씀 .'그래? 그럼 재미있는 일을 스스로 만들어 봐.' 물론 그 분의 좋은 말씀을 들은 후로도 몇 개월 더 헤맸습니다만 마음이 새기고 살았더니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씀이었습니다. 어차피 내 삶이 온실 속 화초 인생이 아니라 폭풍우 치는 파도 속 조각배 인생이라면 가끔은 파도가 잠잠할 때 큐브를 돌리는 여유를 배웠달까. 그런 거죠.

 

그런데 잠 못 드는 밤 홀로 방에서 무엇을 할꼬 하니 제 방에 있는 것이라고는 책과 노트북이 전부인 겁니다. 제가 책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래도 늘상 책만 읽고 싶은 건 아닌데 말이죠. 그래서 방을 다시 휘휘 둘러보니 카메라가 있습니다. 취미로 사진을 찍거든요. 요즘은 뜸하지만 한 때는 카메라 바디에 각종 화각의 렌즈를 짊어지고 매주 출사를 나갈 만큼 사진 찍는 걸 좋아했어요. 하지만 이제 무거운 카메라 감당할 힘도 없고 새벽에 홀로 출사를 나가는 건 더더욱 무리라서 이 역시 FAIL.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게 뭐가 있을까 궁리하다가 61건반 전자키보드를 하나 들였습니다. 초등학생 시절 4년 가량 피아노 학원에 다녔는데 연주를 잘 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피아노 칠 때에는 시간 가는 줄 몰랐거든요. 그렇다고 피아노를 들이기엔 가격도 가격이거니와 공간도 부족해서 전자키보드로 결정했습니다. 61건반이라 제가 좋아하는 엘리제를 위하여의 낮고 낮은 라를 때리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흥겹게 라쿠카라차를 연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제는 브람스의 자장가를 쳤는데 시 플랫 누르는 걸 자꾸 까먹어서 불협화음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그래도 즐거워요. :-D 헤드폰을 끼고 연주하니까 새벽 2시든 5시든 실컷 쿵쾅거릴 수 있다는 게 제일 좋은 점입니다. 연주 중에는 통증도 고민도 잊을 수 있습니다. 무아지경이 이런 것이구나 싶습니다. 행복을 느낄 겨를도 없을 정도에요.

 

허리가 아프지 않았다면 더 좋았겠지만, 이미 아픈 걸 되돌릴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냥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아프지만 나아지고 있고, 오늘도 행복하게 살고 있으니까요.

 

 

+

 

제 척추 MRI 사진을 봤는데요. 디스크가 튀어나와 있긴 하지만 그래도 뼈들이 가지런 한 게 참 얌전하고 예쁜 거 있죠? 전에는 자궁 초음파 검사를 하는데 의사 선생님이 자궁이 예쁘다고 (!) 하셨어요. 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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