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2.26 23:38
갑작스럽지만 적확하게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이 떠올랐습니다. 소설에서는 모임이 금지된 나치 치하에 모여있다 발각된 사람들이 우연히 둘러댄 변명으로부터 독서 모임이 시작될 껍니다. 그리고 전시에 이루어진 독서모임은 일상의 조각으로 보전되어 사람들의 감정을 잡아줍니다. 일상의 행동들이 전시의 언어로 번역되어 이야기 될 때, 가끔은 실제로 보고 들은 것을 이야기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책들_
독립서점에서 사온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도서관 사서 실무]를 다 읽었을 때, 더욱이 글을 쓰고 싶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굳이 또 [한국, 여성, 그래픽 디자이너 11]을 사고 만 것입니다. 남이 일하는 것이 무엇이 재미있는지 몰라도, 꾸준히 읽게 됩니다. 직장에 다니기 전까지만 해도, 제 자신이 그렇게 충실하지 않은 인간이라 봤기에 자기 자신을 못 미더워했습니다. 그러나 웬걸, 공부하는 것과 일하는 것은 상당히 다른 것이었습니다. 최근에도 지인과 논쟁거리였던 것이, '공부머리'와 '일머리'는 과연 따로 있고 서로가 그렇게까지 영향을 주지 않는가 였는데 저는 따로 있다는 걸 밀었습니다. 지인은 일머리는 광의의 공부머리에 속해 있고, 제대로 풀이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는 위주의 이야기를 했고, 저는 실예로 많은 교수들이 일을 잘한다고는 볼 수 없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다른 쪽으로 빠졌는데, 주제로 잡은 '어떤 책들'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최근 [구부전]을 다 읽었는데 신기하게도 이 게시판에는 듀나의 SF 서평이 올라오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제 기억에 남을 정도의 후기를 읽은 기억이 없는걸 보면, 아예 한 번도 안 올라왔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럭저럭 듀나의 SF들을 나오는 족족 읽는 편인데, 사실 저도 게시판에 그 후기를 써본 적은 없습니다. 이미 포기해버린 일이지만 서평 비슷한 것을 그럴싸하게 써서 올려보겠다 하다가 마음에 들 정도로 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어찌 되었든, 어떤 책들은 정신이 어느 정도 말짱할 때 읽고 싶은 생각이 든다는 겁니다. 이야기를 처음 읽는 일이란 어떤 이야기이든 단 한 번 밖에 없는데 정신차리지 않으면 그 맛을 영영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읽어가다가도 뭔가 읽는 맛을 망치겠다 싶으면 냅다 덮고 멀리 치워봅니다. (자제력이 부족할 때는 그 상태로 읽어버리게 됩니다, 아까워라.)
[나이트 우드]가 그러한 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가, 장중한 옛표현들이 쏟아져나오자 잠시 치워놓는 상태입니다. [구부전]도 읽기는 다 읽었는데 두 세 편 남은걸 엇그제 읽었다는 이야기였죠. 개중에 '겨자씨'가 정말 좋았는데 그 감각을 나눌 사람이 없군요. 듀나의 글 중에서 여러 개념들이 또릿한 형태를 띌 때 매우 재미있는데, 아무래도 그런 감각은 명사를 최대한 고르고 둘레를 파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겨자씨'의 주요 소재인 특정 TV극과 사람들의 그 TV극에 대한 감상같은 것 말이죠. 마이너 감성을 실존하는 듯이 구성하는 것 말이에요.
어찌 되었든 [오늘의 SF #1]까지 읽고나자, '그래, 제인 에어를 꼭 읽고 말아야겠다'란 말을 할 수 밖에 없군요. (이미 [헤러웨이 선언문]까지 사버렸지만 말이죠)
몸과 미학_
최근 있었던 실망스러운 일 중에 듀나님의 특정 연예인에 대한 성형 비판이 있었죠. ( 사실 그 글 타래들을 깨끗이 정리해서 써볼까 했는데 무슨 의미가 있나 해서 접었습니다. ) 효과적이고 실패하지 않는 성형을 위한 비평이 존재해야 한다는 쪽인지, 아니면 여러 장르의 신체적 미학이 보존되어야 한다는 쪽인지 모호했지만 썩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대학생 때 희곡 전공이던 분에게 물어봤던 적이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즉흥적으로 모여 서로 역할을 정하여 글로 연기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도 연극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는데, 한참 생각하던 그 분은 이렇게 답하였습니다. '아니, 몸이 없다면 연극이라고 하기 어렵다.' 아마 그 대화가 몸을 앗 하고 생각해보는 첫 대화였을 겁니다. 그 이후로도 한참 동안 잊고 있다가 얼마 전부터 그런 것들을 지속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몸을 평가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또는 다른 사람의 몸에서 아름답다고 느끼는 건 무엇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에서야 많이 뜸하지만, 듀게에 아이돌 관련 글들과 함께 대상화에 대한 비판 글이 동시에 올라오는 상황이 혼란스러웠습니다. 또한 거기까지 가지 않고도, 배우들의 미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기도 하니까요. 이렇게 몇 가지를 골라내긴 했지만, 아무래도 저에겐 너무 어렵습니다. 보통 그런 미학에 둔감한 쪽이 글을 쓰면 민감한 쪽에게 힐난이 되도록 써져버리게 되니 조심스럽기도 하구요.
'다리가 아름다운 연예인들'이라는 옛 글이 광고 사이에 끼어있던 걸 보니 불현듯 생각나더랍니다.
후천적이든 선천적이든 개개인에게는 신체의 미라고 하는 것이 머리 속에 박혀 있을 것이고 자세히 설명을 하라면 신나서 할 수 있겠지만 (자신이 매혹되는 것이기에) 앞으로의 도덕은 그런 것들을 입 밖에 내지 않는 것 밖에 없는 것일까요? 대상화를 피하는 몸의 미학을 마련할 수 있을까요?
여러 순간들_
장염을 앓기 전까지 한 참 동안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했습니다. 그 시간 동안 길거리에서 여러 광경들을 마주치는데 가끔 그런 것들을 기억하고 싶어집니다. ( 그러고는 완전히 잊어버립니다. ) 누군가의 토막 대화 같은 것 말이죠.
집 주변에 오랜 창업적 겨울을 보내고 살아남은 닭강정 집이 있습니다. 가끔 거기서 닭강정을 사먹는데, 혹시 치킨과 닭강정이 무엇이 다른지 알고 있나요? 이건 또 다른 이야기고. 여튼 어느 날 거기서 '혼자서' 닭강정 하나를 주문하고 앉아 있는데 옆에서 끊임없이 웃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린 두 아이가 서로를 바라보며 킬킬 대며 웃고 있었죠. 자세히 보니, 중간에 휴지 하나를 두고 서로에게 불어내는 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얀게 이렇게 뒹굴고 저렇게 뒹구는 사이 사이 무엇이 재미있는지 그렇게 좋아하더군요. 잃어버린 여러 순간 중 살려낸 하나네요.
이 시기가 지나가기를 바랍니다.
+ 늙었다는 말_
벌써 두 번이나 '나이 드셨네요' 비슷한 말을 듀게에서 들었는데요. (한 번은 '죄송하지만'이란 전렴구가 붙어서.) 진짜 나이가 들면 일정한 방향으로 사람의 성격이 수렴되는 것인가, 아니면 그냥 시간이 흘러 사람이 변했단 이야기인가, 그리고 왜 미안한 것인가 잡다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분 나쁘지 않고, 핏 하고 웃음이 나거나 누군가에게 '내가 늙었나봐'하고 말할 수 있는 소재가 되긴 하지만요. 보니까 정 반대로 변한 사람들에게도 그런 말을 하는 경우를 봐서 후자인가 싶기도 합니다.
보통 모나지 않고 동글동글해졌다, 이런 말인가 싶고 자의와 달리 변해버렸다고 생각하는게 미안하다인가 싶기도 하고, 미스테리입니다.
2020.02.27 04:54
2020.02.27 13:48
2020.02.27 17:15
자신을 개선하려는 많은 노력들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데 왜 신체의 일부 교정에는 부정적인지 생각해보게 되네요.
( 아아, 결함으로의 발견이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군요. 정신적 결함을 인지하고 개선하는 것과는 다른 궤로요. )
처음 글에서는 거대 담론들에 관심이 없어져간다고 이야기했기에 생각이 침침해진다는 상황에 맞네요.
2020.02.27 15:02
글로 하는 연극....어렵네요.
옛날 라뒤오에서 성우들이 드라마를 연기한 것은 알고 있고, 듣기도 했는데(요즘도 하는지는 모르겠네요.)
연극은 좀....3요소인지 4요소인지를 생각해봐도,,,애매한데, 전공하신 분은 없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아요.. 무대에서 관객과 호흡하기가...
닭강정의 모습이 양념치킨과 유사한데,
땅콩강정, 깨강정, 쌀강정...이런 단어들이 있는 것보면,,,,양념치킨과는 뭔가 프로세스가 다른게 있긴 할것 같아요.
나이들었다, 늙었다,,,라고 말하는 것은 미안한 일이죠, 친분이 강한 관계에서도 기분이 나빠질 말일 것 같아요.
두번 중에 한번이 저죠? 제가 그랬었죠?...그랬을거야....입방정...
2020.02.27 17:24
그 이후 '순수하게 인터넷으로만도 친구를 사귈 수 있어요!'라는 말을 자제하게 되었습니다.
닭강정과 치킨의 차이점은 전에 찾아보았는데 치킨의 경우 튀긴 후 양념을 바르는데, 닭강정은 소스와 함께 볶는다고 하더군요.
아, 오늘 저녁은 닭강정을 먹어야겠어요.
저는 딱히 나이 '들었다'는 말이 기분 나쁘지 않네요. 나이가 빠질 것도 아니고.. 어차피 다 같이 가는건데요, 뭐.
특히 서로가 이전과 지금을 비교할 수 있는 사이라고 하면 둘 다 동질한 기간을 지나쳐 왔을테니까요.
2020.02.27 15:48
트위터 쪽 소식엔 어두워서.. 최근에 읽고 실망하셨다는 듀나님의 성형 관련 발언이 어떤 내용인지는 모르겠어요(대강 검색해 봤는데 못 찾았어요). 근데 읽다보니 아주 오래전에.... 모 연예인 치열 교정으로 듀나님이 쓰신 글의 내용이 기억나네요. 연예인의 이미지는 일종의 공공재이며, 연예인 개인은 초상권과 자신의 육체에 대한 권리가 있지만 이미 세상에 자신이 펼쳐놓은 이미지까지는 어쩌지 못한다, 그것은 대중에게 소유되고 있다.. 고 딱 정리해서 이야기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참 오래전 일이네요 그것도... (급 아련)
2020.02.27 17:27
궁금하게 한 부분은 죄송하군요. 아마 비슷한 이야기였을 법 하네요.
하지만 그 이야기에서도 세상에 펼쳐놓은 이미지와 개인의 권리는 구별되어 있군요. 역시 고민스러운 부분입니다.
2020.02.27 19:02
2020.02.27 15:54
듀나님의 해당 글을 본 기억이 납니다.
듀나님의 멘션은 별 문제가 없었는데 시비를 건 사람들이 억지로 문제를 만들려고 날 뛰는 인상으로 남아 있어요.
그 멘션의 대상은 일반인이 아니고 연예인이며 그것도 얼굴이 매우 중요한 배우 양XX씨였어요.
그런데 그걸 일반인 (여성)의 외모 지적질, 품평의 영역으로 끌고 가서 난리치는 애들이 가장 없어 보였고
연예인이라 해도 외모에 관한 악플로 얼마나 많은 연예인이 마음 고생을 하는줄 아느냐라고 따지는 경우는 그나마 들어줄만은 했어요.
배우가 갖고 있는 이미지(특히 얼굴)이 얼마나 중요한가요? 그 얼굴이 단지 이쁘다, 멋지다, 못났다, 후졌다 하는 품평을 하는게 아니에요.
그 배우가 갖고 있던 어떤 아우라가 성형으로 인하여 망가졌다는건 그 배우가 출연했던 어떤 작품에서 그 누구와도 바꿀 수 없었던 그 느낌이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게 된다는 이야기와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드라마 ‘동백’ 에서 공효진 배우가 연기했던 동백이를 ‘송혜교’가 한다는게 상상이 되나요? 만일 그랬다면 똑같은 각본이었다 해도 공효진의 동백과
전혀 다른 드라마가 되었을 겁니다. 배우는 그냥 시나리오에 따라 연기하고 멋지게 찍기만 하면 되는 피사체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영화 평론가 듀나로서는 충분히 할만한 소리였다고 생각해요.
감독들중에는 “난 그 배우를 염두해 두고 시나리오를 썼어. 그가 아니면 안찍을거야”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다 듀나의 이야기와 닿아 있어요.
가끔 넷에서 이런류의 전문가의 전문영역에서의 멘트와 대중들의 무지에 기인한 엇박자 논란이 일어납니다.
이번에는 그 대중이 여성 혹은 레페였을 뿐이라는 차이만 있죠.
그냥 쉽게 말해 “야야~ 니가 생각하는 그게 아냐 이 바보들아”
2020.02.27 17:50
저는 분별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사적 세계와 공적 세계는 구별되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보통 자신의 신체는 자신의 사적 영역으로부터 뻗어나와 다른 이들과 중첩되는 공적 영역을 거쳐 타자의 사적 영역으로 넘어간다고 생각합니다.
공적 영역이 무언가 있어보일 수는 있지만, 다르게 보면 그저 많은 이들이 겹친 사적 영역의 총체에 불과하며 어떤 중요한 일들에 있어서는 부차적인 것이라 봅니다.
배우에게 요구되는 어떠한 공적 허들들은 배우가 허용한 이후에야 기능해야 하며, 심지어 그 영역을 넘어서서 도달하는 타인의 사적 영역에서의 아우라는 제겐 고려할 바가 되지 않습니다.
영화 계통에서 몇몇 전문가의 이름으로 공적이라고 덧칠된 허들들을 넘다 힘들어 했던 사람들을 떠올려 보면, 이 문제는 다른 식으로 바라보는게 맞지 않나 싶습니다.
어떤 이들의 일반적이지 않은 고통 끝에 상당한 작품이 탄생하는 것과, 상당한 작품을 탄생시키기 위해 일반적이지 않은 고통을 요구하는 것은 서로 다르고 전자로 인해 후자가 정당화되지 않습니다.
세상에 없던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있겠지요.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위해 타인으로서 무언가를 하거나 하지 않게 할 권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2020.02.27 19:58
그러니까 그게 아니라니까요. ‘허들’이나 ‘기준’ 그런게 아니라 그 배우가 갖고 있던 ‘이미지’로 그 작품에 투영되던 어떤 아우라가 망가진 것에 대하여 말한거라구요. (배우에게도) 존중되어야할 사적영역은 그게 ‘신체’건 ‘외모’건 ‘사생활’이건 그냥 일반인과 다르지 않아요. 그리고 그건 공적영역으로 드러나서도 안됩니다. (공인으로서...어쩌고 저쩌고가 유치한 소리인 것처럼) 그런데 그 배우가 작품들에 투영되던 이미지가 망가졌다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자연인으로서 사적영역이 아니라 그 작품들의 도구이자 중요한 주체였던 배우의 이미지가 훼손된 것은 사실이고 그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아요.
게다가 논의를 이상하게 확대 시키는데 듀나님이 그로 인해 배우 양XX 씨에게 무언가를 하거나 하지 않게 한 것도 없고 하려고 하지도 않았어요. 할 수도 없고.
그 배우의 ‘그 이미지’를 생각하고 작품을 고려했던 감독이나 작가들이 더 이상 그 배우를 찾지 않게 될 뿐입니다. 이건 권리도 뭐도 아니에요.
영화나 연극처럼 사람, 즉 배우가 창작의 결정적 요소가 되는 장르에서는 배우는 자연인이고 한 개인이자 작품의 일부분입니다.
괜히 허리우드가 크랭크인 이전에 각 배우들이 도달해야할 구체적인 신체조건들에 대해 세밀하고 강력한 계약서를 만드는게 아니에요.
2020.02.27 20:08
2020.02.27 15:57
본인은 안 그러는데 주변에서 자꾸 하라고 하니 하는 경우도 있겠죠.
Nightwood는 제 영어실력의 한계를 실감하게 만들었죠. Nightwood is demanding이라고 서문에 쓴 지넷 윈터슨의 말이 맞아요.
저는 대리전까지는 사 읽고 짧은감상도 쓰긴 했는데 듀나 책이 재미가 없어 안 읽어요. 그 어색한 대화체는 나아졌는지 관심없어 모르겠어요.세상에는 재미있는 게 넘 많아요.
2020.02.27 17:55
하하하, 아마 안 달라졌을 겁니다. 제가 그런 부분을 꾸준히 좋아하는데, 그런 부분은 꾸준히 유지되고 있거든요.
나이트 우드는 한국어로도 어려운데 영어로 읽는건 상상도 안 가네요.
2020.02.27 18:58
2020.02.27 19:23
2020.02.27 23:35
2020.02.28 12:26
배우에게 얼굴(이미지)이라고 하는건 가수에게 목소리와 비슷합니다.
전인권이 방탕한 생활과 약물남용으로 목소리가 맛탱이가 갔었죠. 결국 가수로서 전성기를 보내야할 꽤 긴 시간 동안 커리어를 중단되고
밴드까지 해체되게 만들었어요. 전인권이 ‘걱정말아요 그대’는 전인권이 목소리가 망가지기 전에 불러야 ‘전인권의 노래’지 망가졌던 그 시기에는
본인도 스스로 부르지 못했었습니다.
듀나님의 양XX 배우에 대한 얼굴이 망가졌다는 코멘트 역시 딱 그거에요.
어떠한 작품 속에서도 특유의 빛을 발하던 배우의 그 이미지에 대한 아쉬움이라구요. 양씨 개인에 대한 것이 아니라.
(물론 자연인 양씨는 본인의 성형결과에 만족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과거에 자신이 갖고 있던 이미지에 불만이 있었을 수도 있죠,
듀나님은 그런 개인의 동기와 선택에 대해서 뭐라 개입하거나 토를 단 것도 아니더군요)
그냥 괜히 일반인들이 감정이입해서 열받을 이야기가 아니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