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 주절...

2010.07.11 02:15

셜록 조회 수:1879

1.

종교를 옹호하는 말 중에 들어줄만한 것은,

"종교를 갖는 것과 안 갖는 것 중 네가 살아 있는 동안에 어느 쪽이 네 삶을 더 즐겁게(살만하게 등 여러 가지 대체가 가능합니다) 해주는지가 중요하다"입니다. 

 

이 말은 반박하지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이 말은 순전히 개인적인 영역에서나 받아들일 수 있는 말이지,

종교가 사회에 끼치는 긍정성 등을 가져온다거나 하는 종교 자체를 옹호하는 꼴로 확장되어서는 안되겠죠.

 

 

2.

저는 술을 거의 마시지 않습니다.

약해서요,

수면제용으로 혼자 집에서 맥주 한 잔 정도는 가끔 하고,

덥고 목마르면 맥주 500 정도 시켜놓고 커피 마시듯이 홀짝입니다.

그래서,

"맥주가 뜨겁니?"

라는 소리를 종종 듣습니다.

 

어릴 때는 술을 멋으로 먹기도 하고,

어른이 권하는 것은 받아먹어야 하는 거구나, 라는 생각에 억지로 먹곤 했어요.

 

그러다 조금은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고 다니던 모임에 같이 속해있는 형에게 말했습니다.

"형, 나 술 약한 것 같은데 안 마신다 그러면 안 되염?"

"그러다 또 계속 권할 때 한 잔 받아먹고 그러면 넌 병신되는 거야. 아예 먹지 말던가 먹던가..."

어린 제게는 겁나게 멋진 말이었습니다.

그 말 듣고는 권하는 술(권하는 술은 대체로 소주죠) 딱 끊습니다.

 

"안 먹어요."

"에이 그래도 한 잔."

"안 먹어요."

"에이... 그래도"

"안 먹어요."

"에이..."

"여기 사이다 한 병요."

"..."

"ㅋㅋㅋ"

 

병신 되기 싫으면

병신 만들어야 하는 사회죠.

 

(근데 그 형은 오바이트 하면서도 꾸역꾸역 먹더군요.)

 

 

3.

이상하고 과도하게 편집증을 불러일으키는 상황들이 있죠.

 

전 패스트푸드점에서 튀긴감자가, 인쇄된 종이에 닿는 걸 아주 못 견딥니다.

그것 때문에 친구에게 터무니 없는 신경질도 낸 적이 있어요.

"아이씨! 감자가 종이에 닿았잖아!"

"갑자기 뭥미? 왜?"

"인쇄물에 발암 물질이 블라블라..."

"미친 거 아냐? 햄버거는 어떻게 먹냐..."

 

오버라는 거 알아요.

알지만, 인쇄물에 음식이 닿는 게 정말 끔찍히 싫어요.

'케챱란' 하나 없는 패스트푸드점 인쇄물은 정말 싫어요.

 

 

4.

저도 어린 시절에는 곤충이고 양서류고 이것저것 잘 잡았습니다.

근데 스무살이 넘은 어느날 이모와 사촌 동생이 놀러왔는데

창문에 잠자리 한마리가 있더라고요.

 

어린 사촌 동생이 와 잠자리다, 라길래

잡아줄게, 라고 말하고 창문으로 다가갔죠.

 

그거슨,

그냥 잠자리가 아니라

 

왕잠자리였습니다.

 

잠자리를 잡을 때 날개를 먼저 잡는지

꼬리 혹은 몸통을 먼저 공략하는 것인지

잘 기억나지도 않더군요.

 

근데 하물며 그 어마어마한 크기라니...

고개를 갸웃하며 나를 돌아보는데

무슨

 

그래도 뒤에서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잠자리를 향해 재빨리 손을 내밀었습니다.

 

하지만,

그 재빨리라는 것이

영 재빠르지 않았던 게죠.

 

잠자리야, 내가 손을 내밀어서 널 잡는 척만 할 거니까, 제발 날아가주렴... 나 떨고 있잖니, 라는

뉘앙스가 가득 담긴 제스쳐랄까...

 

그래서 잠자리는 집안을 돌아 다니다 다른 열린 창문을 통해 날아갔고

내 모습을 주시하시던 이모는 황당해 하며

 

잠자리도 못잡니

무슨 동작이 그리 굼뜨니, 라고 핀잔을 하고

사촌 동생은, 롯데월드 데려간다면서

석촌호수만 구경시켜주었다는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제가 느낀 것이 아마

루저라는 느낌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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