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녀의 기분

2013.05.23 19:24

닥터슬럼프 조회 수:3924

 
 

 

박상수 시인의 새 시집이 나왔네요.

제목은 <숙녀의 기분>

(하지만 시인은 상남자;;)

 

 

전작 <후르츠 캔디 버스>가 2006년에 나왔으니 7년 만의 시집인데

저는 그의 시집을 처음 접한 것이 겨우 2년 전이니, 2년 만에 새로운 선물을 받은 듯한, 뭔가 득을 본 느낌?? ㅋ

 

평론가로도 활동하는 분이신데,  (당연한 얘기지만) 평론에서의 목소리와 시집에서의 목소리가 완전히 달라요.  아수라백작 같아요.

 

 

 

시집을 좀 볼작시면,

 

우선 머릿말격인 시인의 말

 

 

 

 

 

  가시엉겅퀴즙
  머리카락
  바비 립 에센스
  죽은 토끼
  코코넛 파우더

  샤라랑
  샤라랑

  2013년 5월

 

 

 

 

이게 대체 뭔소리야???

범상치 않은 시작 ;;;

 

 

 

 

 

 

기숙사 커플

 

 

 

아파, 당분간 너 못 만나

 

그런데도 방으로 들이닥치면 어떻게 해. 쩝쩝거리면서 왜 내가 먹던 어제 식빵을 먹고 있어. 룸메는 집에 올라갔지 방학이니까. 나는 이제부터 스터디에 갈 거야 그러니까

 

좀 가, 냄새나니까 좀 가

 

내 침대에 들어가서는 자는 척하고 있구나 그렇게도 입지 말라는 늘어난 면 티를 입고서, 굴욕 플레이가 더는 싫어서 너는 만났지 스쿨버스에 캐리어 올려줄 사람이 없어서 너는 만났어 일주일 전부터 너에게 들려주고 싶었더 이야기. 기어이 마구 해버렸다 넌 이불 밑에서 번민광처럼 중얼거렸지

 

내가 시험에 떨어졌다고 이러는 거니?

 

한 번 더 떨어지면 다섯 번 채워. 그 다음엔 어디 국토대장정 같은 데라도 갔다 와 거기 가면 울면서 오른이 된대

 

그러지 말랬지 그런 마이너스 사고방식

 

갑자기 뛰쳐나와 네가 나를 안아버렸다 내 머리카락에 코를 파묻고 훌쩍였어 나도 몰래 스르르 가랑이가 벌어졌지만 딱 1분간만 키스해주었지 그리고 떨쳐냈다

 

책상 위의 교정기를 이빨에 끼우고 너를 내려다봤어. 때릴 거야 때려버릴 거야. 고개를 흔들다가 이번 방학이 끝날 때까지만 참기로 했어.

 

 

 

 

 

 

 

24시간 열람실

 

 


할 수 있는데 나도

 

<On Style> 채널이라면, 안약이랑 감자칩만 있으면 되니까, 말도 못 하게 머리가 아플 정도로 들여다볼 수 있는데

 

여기 들어와 있으면 눈꺼풀에 데미지만 쌓여

 

들어오는 것보다 나가는 게 더 많아......점점 나는 비어가, 그래서 물도 먹고 비스킷도 먹는데, 최대한 침에 녹여가면서

 

너희들은 잠을 언제 자는 걸까

 

일부러 한 여자애만 노려봤지 걔가 언제 화장실에 가는지 알고 싶어서 내가 세 번이나 갔다 올 동안 걔는......비범했다 나보다 세 살은 어려 보였고, 말도 안 돼. 스타크래프트 밴에서 갓 내려선 스타일이라면

 

나한테는 답이 없는 거지

 

휴게실 커피를 마시면서 생각했어. 체한 것 같아, 아니다 전화를 걸어야겠어 그런데 누구도 떠오르지 않는다면

 

중얼중얼 중얼중얼 중얼중얼

 

이러다 가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간신히
내 자리에 돌아와 앉았을 때
옆자리의 여자애가 쪽지를 건네주었다

 

그만 왔다갔다거려. 그거 정말 소음이거든요?

 

마스카라가 엉킬 정도로 찔끔, 했고
이런
나 진심 사과하고 말았다.

 

 

 

 

 

 

 

조별 과제

 

 

 

몇 번 나가지는 못했지 어제 모임도 배가 아파서 그만두었다 남자 1에게 분명히 내 마음을 전했어

 

여자들만 아픈, 그런 배……

 

또 써먹기는 그랬지만 한 달에 두 번씩 오는 애들도 있으니까, 끊은 뒤엔 영어를 외우다가 오랜만에 좀 잤고, 벌써 오늘이 마지막 토론인 줄은 몰랐다

 

좀 생각이 있는 애일까

 

하는 얼굴로 나를 보는 너희들, 전부 A형인가봐, 혼자서 욕실 청소를 다하고 속이 뒤집어진 친구를 보는 것 같았지 나도 곧 청소를 하려고 했는데…… 없는 동안 나를 돌려 씹으며 너희들은 확실히 하나가 되어 있었다

 

밤에 내 손가락 하나면 충분히 내가 나를 위로해줄 수도 있는데 왜 꼭 너희들과 손을 잡아야 할까, 하지만 인간경영론 교수님이, 모르는 너희들과 붙여준 것은 내 사업을 하려면 온갖 고객들을 다 만나봐야 한다는 뜻

 

우측통행하라고 하면 우측으로 가면 된다.

 

'조ㄴ나 한 것도 없으면서'(여자 1)
'저런 애는 죽게 내버려 둬'(여자 2)

 

죽치고 앉아 있는다고 뭐가 나오지는 않을 텐데

너희들 머리에는 아무리 샴푸를 쏟아도 거품이 안 날 것 같아, 라고 말해주려다가

정말 아파오기 시작했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려서는 배를 만지자 남자 1, 2는 제법 흔들려버렸다 슬슬 내가 사온 조각 케이크를 먹기 시작했다

 

어디서 놀아대고 있어? 여자1, 2만이 나를 위아래로 훑었지만 그럴수록 나는 아픔을 누르고 조원들에게 서비스를 다해주었다 꼭 이런 애들과는 내가 밑바닥일 때 다시 만나게 되니까

 

달아올라 미칠 것 같아, 빨리, 빨리 와요.

 

 

 

 

 

 

 

쉽게 질리는 스타일

 

 

 

(기습 키스 시도 이후)
 
계속 그렇게 날 쏘아보다가는
눈이 뒤집혀버리지 않을까요?
 
엉덩이가 짓무르도록
난 생각에 잠겨보지만
 
선생님은 답이 없는 사람
 
"그럼 왜 연락한 거니?"
 
집에 가는 길에 버스는 오질 않고 아저씨들 담배 냄새에 속이 좀 뒤집혔어요, 나한테 지겨운 냄새가 나는 것 같아 갑자기 집에 가기 싫어졌달까, 그래도 저는 공중변기 레버는 꼭 발로 내렸지만 일주일에 한 번은 선생님을 위해 두 손을 모았어요, 라는 말 대신
 
"책도 내시고, TV에도 나왔으니까?"
"넌 내가 영영 실패할 줄 알았지?"
 
답이 없을거라고 생각했으면서도, 어째서 한번더 믿어보는 걸까요?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치어 죽을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을 거라고 믿으니까 모두들 건너가겠죠 선생님은 숨이 막혀서 자주 창밖을 내다보았죠 그건 내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으로 살아가고 있었을 때

 

-책을 한 권 읽으면 자랑할 수 있지만 두 권 세 권 늘어가면 머릿속이 흐리멍텅 복잡해져서는 언제나 뒷짐만 지고 세상을 보게 돼 그런 사람들만 책을 쓰는 거지 쓰다가 스스로가 무서워져서는, 또 다른 책을 쓰고 또 쓰고
 
"이 술 마셔. 그래야 날 이해할 수 있다"
 
생각해보면 이렇게 가까이서 선생님의 코, 타버린 토스트 가루같은 블랙 헤드를 다 세어보는 건 처음, 너무 넘쳐서 자꾸만 숫자를 까먹어버려서

 

"마셔라, ……마셔줘"

 

이 사람, 조금만 더 있다가는 나를 엄마라고 부를 거예요 선생님의 보캐블러리 수준이 이 정도라면, 선생님도, 선생님들은……어쩜 이렇게.

 

 

 

 

 

 

사춘기

 

 

 

창밖의 세계는 궁금하지 않아
늘 혼자서 공깃돌을 손등에 올리는 아이

 

너희들에게 조금씩 웃음을 나누어주면
소켓에 손가락 집어넣은 아이들처럼
너희들은 빛나겠지만

 

어째서 나는
파괴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일까

 

길게
커터 날이 지나간 블라우스
압정 박힌
맨발로 걸어갈 때

 

머리칼을 귀 뒤로 넘기고
부드럽게 나를 꾸민다
너희들의 공놀이는 그칠 줄 모르고

 

호루라기 소리에 맞추어
열심히
제자리로 돌아가는 너희들
헛발질에 웃어대는 모양들이라니
너희들이 벗어놓고 나간 옷가지의 악취도 마찬가지

 

나는
좀더 부드럽게
나의 엉덩이를 쥐어본다

 

직립보행할 때마다
너희들을 유혹하듯 단단해지는
엉덩이

 

우스워

 

쉽게 달아오르고 쉽게 식어버리는 주제에.

 

 

 

 

 

 

 

숙녀의 기분

 

 

 

마지막으로
계단을 올라가는 사람에겐
날개를
조금 먹고 조금 사는 금붕어에겐
알약을

 

종일 유리공을 불고 종일 금 간 유리공을 쓰고 돌아다니는 지구인들의 거리를 지나왔죠 난 자랄 만큼 자랐고 놀란 노루처럼 귀를 세울 줄도 아는데

 

비가 오는 날은 도무지 약이 없어요

 

기분은, 비단벌레들이 털실을 다 풀면 돌아올 테고 영원히 살지는 못하겠지만 스카프를 두르고 오래된 그림책 위를 날아가네요, 꿀을 넣은 작은 홍차를 마실 거예요, 시간과 공간의 모눈종이를 펼치면 난 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요

 

가슴으로 자주 비가 스며들어온답니다 뢴트겐 씨를 부르고 심장을 얼린다면 살 수 있을까요?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의 거리를 유리온실로 덮어주고 내 기분은 다음달에 바다로 갔다가 화산을 구경하고 2층 버스를 타고 없어질 거예요 누가 뭐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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