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07 19:54
이번 N번방 사태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전부터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정리되더군요. 여기에는 몇 가지 가정이 들어갑니다. 첫 번째로, N번방 관련자의 다수가 초중생이라고 할지라도 소수의 나이든 사람들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실제로 그런 비중도 아닐꺼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로, 여기서 제가 이야기하는 것들은 엄밀한 것은 하나도 없으며 하나의 썰일 뿐입니다. 이런 부분을 정제하여 사실인지 아닌지 구별하기 위해서는 많은 비용이 들겠지요.
많은 경우,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선이란 '재미있는 것이냐, 아니냐'로 판별됩니다. 중규모 이상의 커뮤니티에서는 보통 이미지 파일 업로드라는 비용을 지불해서라도 '유머 게시판'을 따로 소유합니다. 디씨인사이드의 모든 겔러리는 평등하게 특출나고 재미난 글을 힛겔로 보낼 권리가 있었습니다. 루리웹이나 인벤, 그 이전의 플포(대부분 게임 관련 커뮤니티)에서도 유머 게시판은 있었고, 디시인사이드에서 구성해낸 정치인들의 합성으로 이루어낸 유머는 루리웹의 북유게(정치 유머 게시판)에 정착하게 됩니다. 심지어 '일베' 즉, 일간베스트는 디시인사이드에서 감당할 수 없는, '베스트로 갔지만 관리자에 의해 삭제된' 글들을 옮겨놓는 곳이었습니다. 오늘의 유머나 웃긴대학은 명칭만 봐도 딱히 더 설명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저는 유머가 어떠한 공동체를 이루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유머를 보고 웃을 수 있느냐 없느냐, 유머를 이해할 수 있느냐 없느냐, 어떤 행동이 (비)웃음거리로 치부되느냐 등은 개인을 사회화시키는데 주요한 통로가 되며, 그런 사회화를 정면 대응하기도 매우 어렵습니다. 매우 불편한 발언들 들었는데도 남들이 다 웃는다면, 자신만 정색하기는 어려운 법입니다. 이러한 재미지상주의는 유머비평을 지칭하는 단어로 '씹선비'라는 말을 유머 커뮤니티가 만들어내게 하기까지에 이릅니다. (심지어 초기에 '선비'라는 말은 긍정적으로 쓰였습니다.)
얼마나 많은 성적 농담들이 유머 게시판을 가득 메우고 있는지를 생각하면 (서브컬쳐와 주류를 막론하고), 우리가 함께 유머를 향유하는 이들에게 가르치는건 다음과 같습니다. '성적 대상화에 어떻게 말하건 재미난 것이며,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은 비웃을만 하다.' 여기서 더 나아가 유투브와 그 이전 스트리밍 공간을 떠올리게 됩니다. 일단 거기까지 가기에 앞서.
어떤 조작의 난이도와, 그 조작의 엄중함은 실제로는 같지 않으나 비유적으로는 같다고 생각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검색창에 검색어를 타이핑한 후 엔터를 치는데까지 들어가는 비용이 매우 적으므로 그 행동은 딱히 중한게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버튼 한 번으로 가능한 핵폭격을 여러 절차를 거쳐 엄밀하게 접근하게 하는 방식이 그 중함을 의미하는듯 보입니다. 이번 박사방에 관련된 공익의 경우, 어떤 사적인 개인 정보를 검색한다는 것을 검색창 검색과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었는게 아닌가 의심스럽더군요. 그와 마찬가지로, 어떤 실시간 영상의 대상과 그 대상에 대한 채팅창으로 구성된 서비스에 익숙한 이들이 이 사태에 일조하지 않았나 의심하는 바입니다.
인터넷 방송이 다루는 것은 매우 다양하겠지만, 실력이 좋은 이들이 자신의 게임을 송출하고, 그에 대해 사람들이 모여 '채팅'을 치며 노는게 제겐 익숙합니다. 벌써 대략 십여년 전에도 방송인들과 그 방송이 진행되는 도중에서 다함께 채팅을 치는 문화는 매우 익숙했고, 그런 개념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시류가 강해질 당시,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 그 문화를 그대로 가져가 공중파에 정리하여 보여주기도 했었죠) 방송 화면은 보통 2분할되어, 생방송 컨텐츠와 실시간 채팅창으로 이루어집니다. 보통 채팅에는 십 여명부터 만 여명까지 그 수가 다양하고, 어찌 되었든 개인의 발언이 제대로 읽히기도 전에 넘어가기 일쑤이죠. 앞에서 콘서트하는 사람과,시끄러운 시장판 같은 관람객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나중에는 도네이션이 생겼지만) 재치있는 발언을 한 사람의 글은 방송인에게도 읽히며, 거기 함께 있는 모든 이들에게 '유머 코드'를 전달하게 됩니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도 그대로 가져다가, 재치있는 채팅을 뿌려주었습니다.)
이러한 창발적 멋진 말 셀럽은 실시간에 가깝게 많은 이들을 감탄시키며, 어디서 나왔는지 추척하기 힘든 단어와 문장들을 유행시킵니다. 보통은 댓글이라는 그보다 느린 방식으로 언어를 점유해왔으나, 방송인이 직접 밀거나 아니면 익명의 관람자에 의한 말이 빠르게 인터넷 공간을 점유하는걸 가끔 목격합니다. 그는 빠른 채팅 '리젠'을 뚫고 만들어진 다윈주의적 결과이기도 하구요. 초등학생들의 유행어 일부가 어디서 왔는지 생각해볼만 합니다.
지금이나 예전이나, 여러 방송인들이 있었으며, '채팅창을 심하게 관리하거나 관리하지 않는' 방송인으로 분류가 되었습니다. 관리하지 않는 채팅의 경우, 쌍욕과 성적인 농담, 정치적 발언과 방송인을 향한 가학적 메세지 등으로 가득했고, 어떤 경우 그런 '심하게 관리되지 않는 채팅 커뮤니티' 자체를 컨텐츠로 두는 이들도 있었죠.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도 일 대 다수인 상황에서 조금만 잘못을 하면 방송인에게 가학적으로 구는 관람자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방송인과 101명의 오지라퍼라고나 할까요. 페이커(세계에서 제일 리그 오브 레전드라는 게임을 잘한다고 알려진)에게도 훈수를 두는 관람자가 있을 지경이니까요. 정신적으로 허약한 방송인들은 갈수록 고통스러워했고, 일부 관람자들은 더욱더 가학적으로 굴고, 방송을 결국 접는 경우도 꽤 있었습니다. 이는 즐거움과 함께 오는 것이었습니다. ( 당장 지금의 아프리카, 유투브, 트위치 등의 방송에서도 채팅창이 끔찍해서 보기를 그만둔 방송이 많습니다. )
가끔 유투브에서 공중파 뉴스 등이 스트리밍 될 때, 채팅창을 보신 적이 있나요? 언제나 난장판 임을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게임 채팅과 랜덤 채팅의 아우라 속에 우리가 만들어낸 채팅 문화는 새로운 개념을 아이들에게 주입시켰다고 생각합니다. 자극적이고 험한 말을 할수록 군림할 수 있고, 함께 하는 이들에게 대스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요. 그에 미루어봐도 저는 그런 생각이 머리에 그려지지 않을 수가 없어요, 어떤 가학행위가 다뤄지고 있는 실시간 영상을 보며 마치 '철구'의 피학적 행위를 보는 것과 동일한 수준으로 즐기는 관람자들을요. 충분히 다른 것 앞에서 그래왔으니까요. (게임을 못하면 못할수록 즐거워하는 관람자들과 마찬가지로.)
저는 범죄자가 되는 방식을 에스컬레이션 쪽으로 생각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이미 범죄자 성향이 있었다거나, 가정이 불우하다거나 이런 것과 관계 없이,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 쪽을 믿는 편입니다. 어렸을 때 욕망의 원심력에 의해 누구나 일탈을 꿈꾸며 어느 정도 일탈에 몸 담기도 합니다. 하는 말의 대부분이 욕설이기도 하고, 뭐든 시키는 것의 반대로 한다던가, 물건을 훔치거나 남의 것을 파손시키기도 합니다. 어쩌면 영영 그 바깥으로 튕겨저 나가 되돌아오지 못하는 경우가 있지만, 대부분은 사회적 압박이나, 자기 객관화라는 구심력에 의해 되돌아 옵니다. 최근에는 원심력이 더 강해진 것인지 아닌지 혼란스럽습니다.
이전의 어떤 이유로,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교감 선생님들을 모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일은 조율되고, 점심 식사를 하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걸 듣는데, 아이들의 일탈 시점이 계속 아래로 내려간다는 이야기를 서로 공감하며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확실히 전에 그런 일들은 중2 - 중3에서 자주 일어났었죠, 그런데 요새는 중1에서 하다가 맙니다'하면, 초등학교 교감들이 '맞아요, 요즘 5 - 6학년들 사이에서 일탈 행위들이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어요, 그런 것들이 골치입니다' 등의 이야기였죠. 개인적으로는 또래집단의 정보 수집력과 온라인 커뮤니티가 가속화되어 아이들의 일탈력이 증대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의심에 마침표를 찍어주는 이야기였습니다.
소규모 커뮤니티가 구성하는 가상적 또래집단에서 구현되는 공동체 윤리를 다들 받아들이고 있는게 아닌가 의심스럽습니다. 다양한 크기의 온/오프 채팅방과 그 문화가 (게임에 귀속된 채팅도 포함하여) 아이들을 악한 방향으로 이끌었다고 생각이 들어요. 가속은 아이들이 했을지언정, 방향은 어른들이 잡아주었겠지요. 이걸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 당장 다분화된 어른들의 커뮤니티별 정체성과 윤리를 다 잡을 길도 없을 뿐더러... )
2020.04.07 21:52
2020.04.09 10:07
맞아요. 컨텐츠 자체보다, 컨텐츠를 둘러싼 문화가 어떤 것인가가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모여봐요 동물의 숲]과 [심즈] 게임은 죄가 없고, 그걸 같이 게임하는 사람의 행태가 뉴비를 교육시키는 거겠죠.
2020.04.07 21:52
2020.04.09 10:06
먼저 접하느냐, 나중 접하느냐 정도로 많이 달라질까 궁금합니다. 하지 말라니까 더 재미있어 하는 것 같고.
2020.04.07 23:02
2020.04.07 23:18
2020.04.08 21:16
2020.04.09 10:17
저는 아이들이 무지하다고는 생각하진 않아요. 일탈을 즐기려면 일탈을 이해햐아 하니까요.
웃으려면 왜 웃긴지는 알아야 하구요. 상대를 웃기려면 더 똑똑해야 하죠.
딱히 이해해주고 싶지도 않지만, 제게 가장 기억에 남는 발언은 그거에요. 다 돈을 벌기 위해서다, 돈이 되면 뭐든 한다, 당신도 돈이 된다면 반사회적인 일도 충분히 할 수 있지 않느냐, 비슷한 말이었죠. 이런 일렬의 일들이 '돈'이 되지 않았다면 이런 일들을 저지르기나 했을까요?
2020.04.07 23:07
거의 모든 면에서 아주 평범하게 생활 잘 하는 녀석들도 어쩌다 친구랑 관계 꼬여서 카톡이나 페이스북 메신져로 작정하고 싸울 때 사용하는 언어들을 보면 (직업상 학폭으로 도움 요청이 들어오면 읽게 되죠)참 대단합니다. 그날 입맛이 싹 다 사라져버릴 정도...;
사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대부분의 청소년들 비행은 근본적으로 현실세계에 가장 큰 원인이 있긴 합니다만. 그걸 온라인 세상이 엄청나게 증폭시켜 버리는 것 또한 사실인 것 같아요.
2020.04.09 10:04
실세계(?) 아이들과 접하시는 분들은 환경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강한 영향을 바로 확인할 수 있다고 그러더군요. (가정 환경이나, 물리적 또래집단이나.. ) 하루에 들이는 시간을 보면 온라인 세계도 일정부분 환경의 일부가 되었다 봅니다.
2020.04.08 05:47
20대에 격투게임계에 잠깐 있었는데, 그 안에서 늘상 쓰이는 말이 '양학' '강간' 등이어서
아 제발 그런 말 좀 쓰지말자 했다가 분위기만 늘상 싸하게 만들었었습니다. 그게 싫어서 제가 떠났죠.
양민학살, 강간, 역강간 같은 표현을 아이들이 초딩 저학년 ....어쩌면 유치원때부터? 듣고 써왔다면....
굳이 실천하지 않아도 몸에 지방 쌓이듯 뇌와 마음에도 더럽고 폭력적인 사고가 쌓일텝니다. 끔찍히 소름돋네요...
2020.04.09 09:57
학생들이 욕설을 쓰는 것을 예전에는 별로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제가 학생일 때도 대부분 욕설을 굉장히 많이 섞어 썼고, 많은 친구들이 어느 순간부터 안 써가기 시작했었거든요.
그런데 평생 온라인 정체성을 따로 가질 수 있고, 거기서의 말투를 바꿀 필요가 없다면?.. 아무도 안 돌아온다면? 하는 생각을 요즘은 가끔 합니다.
2020.04.08 06:03
특정 성향의 대형 커뮤니티들도 마찬가지더라구요. 어떤 사건(정보)이 80이더라도 그건 공유하지 않고 본인들 입맛에 맞는 20의 정보만 퍼나르면서 그 20의 사건 혹은 정보가 세상의 8-9할은 차지한다는 듯 가정하죠. 각자 자기들만의 정상(?) 세계가 있고, 그게 기준이기 때문에 합의나 토론의 여지가 점점 적어지는 것 같아요. 오로지 공감과 지지만이 중요해지는 공동체가 되는 거죠. 여하간 말씀처럼 그 공익은 개인정보 검색을 검색창 검색과 비슷한 것으로 아무 생각(감각)없이 받아들였을 수도 있었겠네요. 촉법소년법 논란도 그렇고, 뭔가 암울하네요.
2020.04.09 09:55
발언자들이 과대대표 되는 경향도 있다고 봐요. 커뮤니티들 각각이 실사회의 어떤 정체성 집단을 대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그 곳의 글과 댓글이 집단의 사고를 비율적으로 샘플링해서 보여준다고 생각되지만, 실제 글과 댓글을 쓰는 사람보다 눈팅하는 사람의 비율이 훨씬 많다고 보거든요. (그 눈팅만 하는 사람도 정체성에 부합되는 모집단의 일부일 뿐이겠고.) 그런데 이런 인식이 반복될수록 집단 내와 집단 외 인원 모두 발언된 집단 묘사로 수렴되는 상황이 일어난다고 봅니다. 그래서 다들 눈팅만 하지 못하고 글과 댓글을 달게 되는지도..
2020.04.08 14:32
2020.04.09 09:48
기성세대들이 신세대들을 언제나 같은 관점으로 탐탁치 않아 한다, 는 넷 세계에 널리 퍼져있는 상식이지요. 하지만 그 증명은 과거의 기성세대와 현재의 기성세대가 같은 발언을 한다는 정도 뿐이고, 엄밀한 기준을 세운 통계의 비교를 통해 알아본 경우는 못 봤군요. 첫 문단에 밝혔듯 저도 확인한 바는 없지만요. ( 예를 들어 이런 추측은 어떨까요? 꾸준히 저학년을 맡아온 선생님들이 이 전보다, 갈수록 감당하기 어려워진다는 체감을 표현하는 것이요. )
맞아요, 제가 쓴 글을 통해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아이들이 얼마나 더 악해졌는지' 같은건 아니고, 어떤 문화을 통해 악이 전달되거나 실제 비율은 같지만 그 문제를 일으키는 연령층이 변경되었다는 정도의 주장이지요. 다만, '악한 척'과 '악한' 것이 쉽게 분리되지 않는다는 편인 거죠.
그리고 예전에 폭력적인 게임보다 게임을 둘러싼 커뮤니티(공략 사이트, 채팅 창)가 더 아이들에게 해롭다는 연구를 본 것 같은데 어느정도 맞는 말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