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바낭] 결재선 + 그분

2020.03.13 14:18

가라 조회 수:695


1.

기억하시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지만, 하여튼 제가 (원치않던) 팀장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팀원들이 저한테 결재를 받습니다.


기안 작성해보신분들중 안 겪은 분이 있을까 싶은데... 하여튼 본인은 안보인 오탈자가 결재 올리면 상사는 귀신같이 찾아내잖아요.

그래서, 그런가 결재 올라온걸 한번도 반려 없이 그냥 넘어간적이 없습니다.


0차 : 여기 오자 있네요. 다시 확인하세요.

1차 : 여기 또 있네요. 다른데도 다 확인해보세요.

2차 : 여기 표현이 틀렸네. 여긴 줄도 안 맞잖아요.

3차 : 첨부문서 확인해보니 이 내용이 안 맞는데? 이거 잘못 쓴거 아닌가요?

4차 : 아니 그거 얘기 했다고 딴거는 안보나요? 여기도 틀렸잖아요.


이런식으로 기본 3~4차 반려에 최고 기록은 11찹니다. ㅋㅋㅋㅋ

그때도 왠만하면 더 고치려고 했는데, '아니 팀장이 오탈자나 보고 있으면 어떻게 해요. 내용 다 아시잖아요.' 라고 해서 서로 큰소리 내고나서 난 더 못고쳐요. 윗선에서 반려 하면 제가 책임 집니다. (지기는 뭘 어떻게 져..) 라고 태업해서 화 꾹 참고 승인했고, 아직 진행중입니다. (이사, 상무, 본부장, CFO, CEO 까지 다 거쳐 갑니다.)


저도 실무자때 여러번 반려 당해봤지만..

최소한 오탈자로 서너번씩 반려는 안당해야 하잖아요.

팀장이 빨간펜 선생님도 아니고 어떻게 오탈자체크부터 모든 페이지를 다 봐줘야 하는지...

내용 다 아니까 오탈자 있고 수치 안 맞아도 승인하면 윗사람들은 대충 볼거라고 생각하나..

사실, 옛날에는 그랬습니다. 대충 팀장이랑 사업부장 결재 맞고 오면 CFO 는 예산초과여부만 체크하고 결재하고 사장은 대충 결재하고 끝나던 시절이 있었죠.

그런데, 지금은 임원이다 바뀌어서.. 실무와 상관 없는 CFO가 예산도 잡혀 있는 업무를 '이 돈을 써야 할 정도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소명이 부족함' 라고서 반려할 정도로 세상(?)이 변했는데, 이 친구는 아직도 '옛날에도 이렇게 썼는데요? 옛날에는 이정도면 다 승인났는데요? 왜 팀장님만 깐깐하게 따져요?' 라고 합니다. 하아... 나이 차이 얼마 안나는 젋은(?) 팀장이라고 만만하게 보나... 그래봐야 네 평가는 내가 하는데..? 뭘 믿고 이러지..  따로 연줄도 없는 것 같고..


지난달에는 교육비 500만원을 승인해달라기에..

500만원 근거가 뭐에요?

1인당 50만원씩 10명 보낼겁니다.

10명이 누구누구인데요?

저하고, 생산팀 누구누구, 기술팀 누구누구, 연구소 누구, 품질팀 누구... 어 7명이네...? 어차피 더 보낼 수도 있으니까 대충 10명 잡았어요.

아니 돈 쓰는데 대충 10명이 말이 됩니까. 10명 목록 첨부하던지, 7명만 가던지 해요.

제가 지금까지 이런거 올리는데 누구누구 보낼거냐, 왜 10명이냐 이런 소리 한번도 안 들어봤거든요? 왜 이런걸 따져요?

전에 있던 팀에서는 그랬는지 몰라도, 이팀에서는 안되요. 내가 승인해도 이사님이 반려합니다.  

그러니까 씩씩대면서 나 화났음 티내더니 나가서 2시간동안 사무실 안들어오더군요.


하여튼, 결국 결재자가 이상한걸 못 잡고 결재 했는데 윗선에서 반려 하면 '팀장이 이런거 제대로 체크 안하나?' 라는 뜻이 된다는걸 깨달았습니다. (실제로 들은 말)


예전에 쓴 글에 '고쳐 쓰려고 하시는 것 같다' 라는 댓글을 주신 분들이 계셨는데..

예전에는 상사들 때문에 회사 그만둘까 생각을 했는데, 요즘에는 팀원 때문에 차라리 떄려 칠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팀장 되고 직책수당이랑 이런저런거 붙어서 기존보다 월급이 7% 오르긴 했는데, 그냥 안 오르고 스트레스 안 받았으면...


이제는 '내가 얘랑 싸우면서 왜 얘를 데리고 있어야 하나. 그냥 내가 직접 하는게 낫지' 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실무자시절 다 하던 일이라... 결재 올라온거 일일히 빨간펜 들고 고치면서 들어간 데이터가 맞나, 이게 계산이 맞나, 이거 왜 안 넣었지? 라고 하면 일일히 대꾸 하면서 승질내는 팀원을 굳이 데리고 있어야 하나요. 그냥 내가 하지. 

팀장이라고 실무 하지 말라는 법 없잖아요.




2.


역시나 기억하실 분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그분'이 협력사로 가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희 공장에는 사내협력사(아웃소싱)가 4개 있고 거기 사장이랑 팀장급 일부는 저희 회사 OB가 낙하산으로 내려갑니다.

그나마 이런 자리도 윗선에 줄이 연결되어 있던지, 임원경쟁에서 밀려난 만년부장이지만 그래도 공을 세운게 있던지, 아니면 능력이 없지는 않은데 후배들을 위해 물러나야할 상황이던지.. 즉, 회사에서 막 자르긴 미안하니 협력사에 자리 마련해줄테니 나가라.. 라는 통보를 받은 거지요. 그나마 이런 제안 못 받고 그냥 나가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분' 희망도 협력사라도 가서 오래 버티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래서 협력사 간다는 말 나왔는데도 표정이 안 좋지는 않더라고요.


그런데.. 

갑자기 오너가 왜 거기 협력사가 4개나 있어야 되는거냐? 여기랑 여기는 비슷한데 합치면 되는거 아냐? 그럼 관리비가 덜 들잖아. 라면서 태클을 걸었습니다.

그래서 오너가 지적한 회사 2개를 합쳐서 3개로 줄어든대요.

회사가 줄어들면 OB들이 낙하산으로 가는 자리가 줄어드는 것이 자명하고요. (...)

이렇게 되면 기존에 받았던 자리들이 줄어들면서 가기로 했던 분들끼리 눈치싸움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여기서 밀려나면 회사에 남는게 아니라 그냥 나가게 될거라고 하던데... 과연 '그분'의 앞날은... 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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