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델 에넬, 타오르는 배우의 초상

2020.03.01 09:21

Sonny 조회 수:787

제가 아델 에넬을 스크린에서 만났던 작품은 총 세 작품입니다. 맨 처음 봤던 작품은 <120 bpm>이었습니다. 남자가 대다수인 에이즈 환자/활동가 무리에서 에넬이 묘사하는 캐릭터의 존재감은 꽤 강렬했습니다. 부릅뜬 눈으로 함께 소리지르고 고민하는 그의 모습은 이 영화가 품고 있는 치열한 불씨 중 하나였습니다. 박수를 치는 대신 핑거스냅을 날리는 에넬의 캐릭터는 제가 다음 영화에서 본 그를 기억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 때 그 여자다.

그 다음 저는 프랑스 대혁명을 그렸던 <원 네이션>에서 그와 재회했습니다. 수많은 역사적 인물들이 나오는 가운데 아델의 얼굴은 프랑스 대혁명에서 지워진 여성의 역사를 증명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여자도 시민이라고 소리쳤습니다. 그 다음 저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서 아델을 또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더 길게 하도록 하구요...

우연히도 제가 본 아델의 필모는 투쟁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었습니다. 그는 별로 웃지 않았습니다. 그가 속한 세계는 그를 향한 압력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필모 속에서 그는 순순히 패배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든 저항하고 존재를 각인시키려 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아델의 시그니처 표정이 있습니다. 눈을 부릅뜨고 상대를 노려보는 얼굴입니다.

세자르 영화제를 박차고 나가는 아델 에넬의 얼굴을 봤습니다. 저는 그의 얼굴을 영화에서 볼 때는 어떤 아름다움이나 진실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화면 바깥의 아델의 분노한 얼굴에서는 전혀 그런 걸 느끼지 못했습니다. 파렴치한의 세계에서 인내가 바닥난 자의 얼굴은 감상할 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델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며 남인 당혹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인간으로서의 불쾌함은 칭송할 것이 아니라 누구의 얼굴에도 떠오르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닌가 하고요. 세계는 제 멋대로 용서하는 자들이 쓸데없이 견고하게 만들어놓았고 거기에 일그러진 여자의 얼굴이 균열을 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현실의 투쟁은 숭고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진절머리와 짜증에 훨씬 더 많은 빚을 지고 있는 것 같아서 아무 일 없는 제 개인적 평화가 정상적인 것인지 자문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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