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기생충

2020.02.10 16:40

겨자 조회 수:1464

유튜브에 나와 있는 클립을 몇 개 보고 영화를 관람했습니다. 유튜브 클립만 봐도 제가 감당하기 힘든 영화일 거라는 게 짐작이 되더군요. 봉준호 감독은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것에 대해, 관객이 정지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감독의 리듬 대로 흘러가야하는 체험이라고 말하더군요. 영화관에서 봤으면 마음이 괴로워서 중간에 뛰쳐나갔을 겁니다. 이 가족이 추락하는 걸 보기가 괴롭습니다. 특히 폭력 나오는 장면은 건너 뛰고 봤어요. 


왜냐하면 저는 기우, 기정이네 가족이 잘 되기를 바랬거든요. 기우 기정 둘 정도 취직했을 때 여기서 그만하지, 기우 기정 기택 셋 정도 취직 했을 때 그만하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만일 이게 임금 노동자의 삶을 메타포로 잡은 거라면, 아마 셋 정도 취직했을 때 이 가족은 그만했을 거예요. 왜냐하면 보통 임금 노동자들은 (제 경험으로는) 풀타임으로 일하면 초죽음이 되거든요. 나머지 시간은 쉬어야 해요. 집에 가사노동, 돌봄노동 전담해줄 사람이 있어야, 두 세 명의 임금 노동자들이 풀타임으로 일할 수 있어요. 기우, 기정이는 일주일에 세 번 두시간씩, 일주일에 네 번 일한다고 하지만, 사실 기택씨가 하루종일 일하는 노동은 만만하지 않아요. 


영화는 1초도 낭비 없이 마지막 장면까지 달려갑니다. 1/3 정도 지났을 때 이미 많은 이야기가 흘러가 있어요. 이 영화가 왜 앙상블 상을 받았나 이해가 되네요. 배우들이 대사를 치고 받아내는 게 조화를 이룹니다. 그렇다고 캐릭터들이 흐릿하거나 흐트려지는 것도 아니예요. 박사장 역할의 이선균, 최연교 역할의 조여정도 연기가 참 대단하네요. 


볼 때마다 인상적인 부분이 제게는 다른데, 오늘은 이 대사가 기억에 남더군요.


“전 사실 그 아주머니에게는 아-무런 감정이 없구요, 그 공중보건, 또는 보건위생의 관점에서 인제 어쩔 수 없이 말씀을 드린 건데, 그게 자칫 오해를 하며는 제가, 고자질이나 하는 그런...”


(중략) 


“저기, 손은, 씻으셨어요?”


미국에서도 이 작품을 보고는 제게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안정적인 일자리가 있다는 게 얼마나 절실히 중요한지 아니까, 상당히 공감을 샀는가봐요. 


제인 폰다가 작품상 발표 전에 한 템포 쉰 게 인상적이더군요. 이 분, 배우 답게 드라마틱한 리듬을 아네요. 이병철 회장의 손녀, '묻어둔 이야기'란 책을 낸 이맹희씨의 딸, 미키 리가 단상에 올랐네요. 건어물, 능금 팔던 상회의 손녀딸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이그제큐티브 프로듀서로 영어로 소감을 말하는 날이 오는군요.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박태원 외손자가 감독상을 비롯 오스카에서 상을 네 개나 받구요. 한국 사회의 자본과 재능이 지난 백일년 동안 쉴새없이 축적되어왔다는 뜻이겠죠. 작년이 한국영화 100주년이었네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34382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53668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64118
111713 악마를 보았다는 추격자의 허세버전 같아요...(스포無) [4] 윤보현 2010.08.12 3880
111712 개콘 황해 코너 불편하지 않나요? [15] 세멜레 2013.06.12 3879
111711 [듀나IN] 입사지원서에 가족 주민등록번호까지 요구할수가 있나요? [9] 아카싱 2013.11.18 3879
111710 [바낭] 자고 일어났더니 오피스텔, 국정원 얘기로 난리가 났네요 [12] 로이배티 2012.12.12 3879
111709 더럽고 우울한 이야기 [28] 21세기한량 2012.10.11 3879
111708 '아파야 청춘'? X소리 맞는데....왜 [11] soboo 2012.10.04 3879
111707 [듀나인] 맛없는 커피 활용법? [16] 오늘도안녕 2012.09.09 3879
111706 이 아기는 커서 셜록이 됩니다 [9] 화려한해리포터™ 2013.05.09 3879
111705 소개팅 잡담 [13] 씁쓸익명 2013.07.23 3879
111704 슬램덩크 고양이 풀버전 [7] Johndoe 2012.05.31 3879
111703 IQ 170에 도전해봅시다. [23] chobo 2011.10.25 3879
111702 주민투표 불판 깝니다 3 [37] jim 2011.08.24 3879
111701 어딘가에서 들은 어느 며느리의 독백. [11] 고인돌 2011.04.20 3879
111700 앨리 맥빌 시즌4를 다시 봤어요. [11] 제주감귤 2011.02.17 3879
111699 어벤저스 최근 인터뷰에서 문제가 된 일들 [11] 모르나가 2015.04.23 3878
111698 한국의 참치통조림 (지속가능성) 순위 [14] Ruthy 2012.09.05 3878
111697 어떤 고객이십니까? [24] drlinus 2013.01.10 3878
111696 허위를 유포하고 그걸 쿨한양 받아들이는 세태가 더 지겹습니다. [7] 유디트 2012.06.06 3878
111695 '운지'라는 말 [9] 메피스토 2012.06.20 3878
111694 누나전문기자 이름으로 웬 노총각이.. [3] poem II 2011.10.27 3878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