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vid 19> 사태로 인해 심란한 나날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윌리엄 맥닐의 <전염병과 인류의 역사 Plagues and Peoples>를 사둔 게 생각나서 휘휘 뒤적여봤더니 인류는 매년 새로운 질병/전염병에 계속 위협당하며 살아왔더군요.
그 장구한 역사 속에서 맹위를 떨친 것들로는 페스트, 한센병(나병), 결핵, 콜레라, 매독, 장티푸스, 천연두, (20세기의 페스트로 불리는) 에이즈, 21세기에 출현한 신종 전염병 사스 등등이 있습니다.
14세기에 유럽을 강타하여 4, 5년 사이에 유럽인 3분의 1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페스트가 가장 강렬한 전염병이었으나, 인류를 특별한 공포에 빠트린 건 '은둔자의 질병'인 한센병이었네요. 유럽인의 15%를 죽인 매독이 '천재들의 질병'으로 불린 게 흥미로웠고,  결핵이 '예술가의 병'으로 자리매김한 것에는 실소가 나왔습니다. 

아무튼 의식주( 식->주->의)의 개선과 의학의 발달로 인류는 질병과의 전쟁에서 살아남았으나 재앙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고 해요. 미생물들은 오랜 세월 잠복해 있으면서 호시탐탐 생명체를 공격할 기회를 노리고 있는데, 항생제의 오남용으로 인한 내성세균의 확산이 그 재앙의 불씨임을 유념해야 한다고......

# 질병 책을 읽노라니  기분이 근질근질해져서 옆에 꽂힌 주제 사라마구의 <Blindness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었습니다. 98년, 그가 노벨문학상을 받았을 땐 이 책을 읽을 만한 나이가 아니었고, 대딩 때 정독을 결심하고서도 작가의 독특한 서술 방식 때문에 괴(외)로워 하며 읽다가 중도포기했던 작품이에요. '봄' - 볼 수 없는 것과 보지 않는 것의 동일성 - 이라는 솔깃한 주제에도 불구하고 그 독특한 서술 방식이 곤혹스러웠습니다. 

작가는 마침표와 쉼표 외에는 어떤 문장부호도 사용하지 않아요.  따옴표가 없는 대화, 물음표가 생략된 질문, 느낌표가 없는 탄식을 따라가려면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죠. 거기에다 단락 구분도 없으며 등장인물에게 부여된 고유명사도 없습니다. 따라서 독자도 작품 속 인물들처럼 눈이 먼 채 오직 잔상과 기억에 의해 불특정 다수의 대화를  쫓아가고 있는 듯한 느낌을 갖게 돼요. 하지만 섬세한 심리묘사와 정교한 이야기 구조, 그리고 인간 본성에 대한 뛰어난 통찰 등이 강한 흡인력을 발휘하고 있어 이번에는 단숨에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 작품은 알레고릭한 설정에선 카프카를, 공동체 내에서의 모랄에 관한 드라마라는 점에선 카뮈나 막스 프리쉬 외 작가들을 연상시킵니다. 
장면마다에서 윤리적인 논평을 분명히 해두는 서술자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면, 아마 절망적인 상황들의 서술이 몇 배는 더 무서웠을 거예요.  
우리 안의 악이나 야수성이 여지없이 노출되며 세상이 아비규환으로 변하는 건 어떤 상황에서일까요. 전쟁? 자연 재해? 전염병? 얼마든지 극단적인 상황들을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주 복잡해 보여도 사실 이 세상은 단순한 원칙들에 의해 유지되고 있는 거죠. 매일 태양이 뜬다, 어디에나 공기가 있다, 누구나 언젠가는 죽는다, 새로운 사람이 태어난다, 비가 내린다, 바람이 분다... 이 수 많은 원칙들 중 하나만 지켜지지 않아도 세상은 순식간에 지옥이 될 겁니다. 

사라마구가 주목한 원칙은 '모든 사람은 본다'는 사실이에요.  그런데 한 도시의 사람들이 모두 눈멀어버린다면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한 사람이 신호등의 지시를 기다리다가 갑자기 눈이 멉니다. 그와 접촉했던 사람들이 차례로 눈이 멀기 시작하고, 정체불명의 '백색 실명' 바이러스가 온 도시를 눈 멀게 해요.  결국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세운 문명은 완전히 통제불능 상태에 빠져버립니다. 
암흑은 사람들에게서 인간다움의 정체인 부끄러움을 제거해버려요. 도시는 이제 '눈먼 짐승들'의 세상이죠. 작가는 눈이 멀지 않은 오직 한 사람, 의사의 아내로 하여금 그 끔찍한 세상을 지켜보게 합니다. 그녀의 시선에 의존하여 그 지옥을 바라보는 독자도 같은 형벌을 받게 해요.

'눈먼 도시'가 보여주는 모습들 - 집단 이기주의, 비굴함, 나약함, 폭력, 살인 ... - 은 눈 뜨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고스란히 일어나고 있는 현실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볼 수 있어도 보지 않으려는 자들의 세상. 그것이 바로 <눈먼 자들의 도시>인 것입니다.
시간이 흐른 후 도시가  다시 눈을 뜨게 되었을 때, 눈이 멀지 않았던 아내와 의사가 나누는 대화는 깊이 새겨볼 만해요. 

" 왜 우리가 눈이 멀게 된 걸까요. (모르겠어.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어요. (응, 알고 싶어.) 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눈은 멀었지만 본다는 건가.)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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