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15 20:15
- 정확히는 3시간 29분이고 마지막 스탭롤이 거의 10분이라 3시간 19분, 그러니까 199분 밖에(??) 안 되긴 합니다만. 드디어 다 봤네요.
사실 어제부로 이제 게임 좀 하고 살아야지... 라고 생각했는데 그러면서 붙잡아 본 '울펜슈타인: 뉴 콜로서스'가 기대보다 재미가 없기도 했고, 또 올 겨울 방학에 셀프 과제로 생각했던 일들 중 첫번째가 이 영화를 보는 거여서 그냥 눈 질끈 감고 틀어 놓고서 열심히 봤어요.
애들 어린이집 보내고 대충 집 정리한 후에 영화 틀고, 보면서 밥 먹고, 너무나 편안한 자세로 보다가 그만 중간에 한 번 졸고(...) 그래서 다시 돌려서 보다가 결국 스탭롤을 마주하고 나니 어린이집 보낸 딸 데리러 갈 시간이 한 시간 남았네요. 이런 긴 영화는 정말 제 방학에 해롭습니다. ㅋㅋㅋㅋ
아. 스포일러는 없어요. 어차피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에서 이런 게 의미가 있겠습니까만.
- 스토리 요약은 무의미하겠지만 그냥 간단하게 캐릭터 소개라도.
로버트 드 니로는 원래 트럭 운전사입니다. 아내와 함께 딸 셋을 키우는 가장이죠. 소고기를 운송하다가 적당히 떼어먹기도 하고, 그러다 격하게 떼어 먹어서 재판도 받아 보고 그랬지만 다행히도 운송 노동 조합계의 히어로 지미 호파님께서 세워두신 안전망 + 잘 만난 변호사 덕에 무사히 살아 남았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주유소에서 만났던 자동차 잘 고쳐주는 아재와 운명적인 인연(자기 도와줬던 변호사의 형이래요)으로 엮이면서 노조원 겸 마피아 히트맨의 길을 가게 됩니다. 그러다가 자동차 아재의 추천으로 지미 호파를 바로 곁에서 돕게 되는데...
그리고 조 페시는 바로 자동차 잘 고쳐주는 아재이구요. 그 정체는 그 동네의 돈 콜레오네. 단순한 동네 조폭이 아니라 나름 꽤 스케일 크게 사업하는 사람이죠. 당연히 악당이긴 하지만 본인 직업 윤리에는 철저한 사람으로 나름 긍정적으로(!?) 그려집니다.
마지막으로 알 파치노는 바로 지미 호파 역이구요. 노동 운동계의 전설의 레전드이지만 그러면서 해먹을 건 다 해먹고 뭣보다 마피아와 결탁해서 그들을 굉장히 적극적으로 이용해먹습니다. 같은 노조여도 자기가 리드하는 노조가 아니고 그들이 자신의 이득과 충돌하면 그냥 인정사정 없어요. 하지만 자기편에겐 또 아주 둘도 없이 좋은 사람이고 뭣보다 자기 아빠도 꺼려하는 드 니로 딸의 마음을 간단히 사버릴 정도로 따뜻한 면도 있고 그래요.
...솔직히 '현실의 진짜 그 분들보다는 엄청 미화했겠구먼' 이라는 생각을 계속 하면서 봤습니다. ㅋㅋㅋㅋ
- 소감부터 말하자면 참 늙은 영화(...)입니다.
근데 아주 곱게, 간지나고 품위 있게 늙은 영화이기도 해요.
배우들 얘기부터 하자면, 아무리 특수 효과로 세월의 흔적을 지워 봐도, 그리고 육체적 액션을 최대한 줄여 봐도 이미 70~80된 할배들의 몸짓이나 목소리까지 어떻게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주인공들의 젊은 시절을 보여줄 때조차 '늘금'이 확연하게 드러나서 좀 웃길 때도 있고, 뭔가 희한한 구경을 하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그래요. 전에 게시판 어느 분께서 실버 타운 할배들의 연극 무대를 보는 것 같다는 말씀을 하신 적 있는게 그게 되게 적절한 표현이었다는 걸 보면서 느꼈죠.
하지만 어쨌거나 연기 내공이, 특히 마피아 연기 내공은 몇 갑자가 되는 할배들인지라 그 어색함에 킥킥거리면서도 결국 캐릭터들이 납득이 되더라구요. 그리고 나중에 그 할배들 실제 나이와 대충 걸맞는 시기로 넘어가면 되게 감동적이기도 합니다. 특히 막판에 한 명씩 한 명씩 사라져가고 마지막 남은 한 명이 죽음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현실의 이 할배들 모습과 겹쳐 보이면서 슬픈 감정이 와르르...
그리고 스콜세지 영감님에 대해서 말하자면 뭐,
이 양반의 갱스터 영화를 우리가 한 두 번 보는 게 아니잖아요. 뭐 대충 다 아는 연출이고 대충 다 아는 전개고 그렇죠. 특별히 튀는 구석은 없는 전형적인 스콜세지 영화라는 느낌.
그런데 그게 전체적으로 되게 유려하고 장중하고 멋지고 그래요. 특별히 자극적인 장면이 별로 없으면서도 지루하지 않구요. 단점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뭐랄까. 예전 영화들에 비해 좀 주인공들에 대해 온정적으로 그린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무래도 갱스터 영화이다 보니 나중엔 결국 싸우고 갈라서도 비정한 선택을 내리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세 캐릭터 모두를 그렇게 부정적으로는 그리지 않아요. 스콜세지 옹도 나이 먹고 많이 온화해지신 것 같기도 하고. 뭐 덕택에 결말 부분의 스산한 느낌이 더 잘 살아난 것 같아서 맘에 들었습니다.
한국식 나이 기준으로 이제 마틴 스콜세지가 79세, 알 파치노가 81세, 로버트 드 니로와 조 페시가 78세입니다.
앞으로 언제 부고 소식을 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의 4인조가 모여서 만들어낸 결과물이니 앞으로 이 멤버들로 다시 이런 작품은 볼 수 없을 거라는 게 현실적인 예측이겠고,
그런 의미를 갖는 이 작품이 네 명의 능력을 모두 맥시멈급으로 뿜어낸 수작이라는 게 참 다행이고 기쁘고 그렇습니다.
이 양반들의 리즈 시절을 함께하며 나이 먹은 사람들이라면 비판을 할 수는 있어도 무시하거나 미워할 수 없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네요.
- 위에서 적은 것과 같은 이유로, 비록 기생충이 올라가 경쟁하고 있긴 하지만 올해 아카데미는 이 영화에게 좀 많이 안겨줘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넷플릭스라고 해서 왕따 시키기는 좀 그렇잖아요. 일생 동안 그냥 극영화판에서 활약했던 레전드들이기도 하고. 또 애초에 넷플릭스로 갈 생각으로 만든 영화가 아니었더라구요. 제작 중에 문제가 생겨서 제작비가 너무 커져버렸고, 추가적인 투자를 투자사들에게 바람 맞으며 프로젝트가 흔들리던 와중에 손 내밀어준 게 넷플릭스 뿐이었다는데 그걸 배신자라고 따돌려 버리는 건 명분이 안 되죠.
- 암튼 참 길고도 훈훈한(?) 시간이었습니다. 얼마 전 스콜세지의 마블 영화 관련 때문에 기분 상하신 분들 많은 건 알지만 이 정도 물건을 만들어서 떡하니 내놓으면 뭐 그냥 양해해드려야 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ㅋㅋㅋ 잘 봤습니다.
+ 영화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In The Still Of The Night은 제 또래에겐 이 양반들 버전으로 더 익숙하죠.
2020.01.15 20:39
2020.01.15 22:41
결론은 쌍제이를 공격하자... 군요. ㅋㅋㅋㅋ
나중에 무료 vod로 풀리기라도 하면 꼭 봐야겠습니다 스타워즈. 이미 스포일러들 다 찾아 읽어 버리긴 했지만 실제로 보면 어떨지 궁금하네요. =ㅅ=
2020.01.16 00:09
2020.01.16 10:32
2020.01.15 21:02
오히려 현실적인 면에서는 스타일 잘빠진 "카지노"보다 더 진실에 접근해있을지도 몰라요. 보고 싶지 않은 현실이요.
전 초라한 노년의 비참함을 다시 보는게 너무 고통스러워서 이 영화를 다시 보지는 않을테지만요.
골든글로브에서는 단 한 부문도 수상하지 못했는데 오스카에서 상을 줄른지 모르겠어요.
스콜세지 감독의 마블 발언때문에 설왕설래가 있기도 했고 넷플릭스 견제아닌가 싶을정도로
골든글로브에서 넷플릭스가 후보작에 올라간 데 비해서는 상복이 거의 없었죠.
2020.01.15 22:44
초라하긴 하지만... 뭐 그 와중에 다 같이 하하호호 불행 중 다행(?)을 즐기는 모습도 나오고 했으니까요. ㅋㅋ
좀 궁금했던 건, 마피아 영화들 보면 대부분 감옥 가거나 죽지 않아도 마지막에 그렇게 경제적으로 빈궁한 모습들이 나오는데 실제로 그런 건지 영화라서 그런 건지...
아마 오스카도 못 받겠죠. 지금 헐리웃과 넷플릭스가 완전히 불구대천의 원수지간인지라... 그래도 사람들 생각해서 큰 상 하나라도 줬으면 좋겠어요.
2020.01.16 09:44
초라한 마피아의 말년은 "도니 브레스코"에서도 적나라하지만 다루고 있죠. 마피아도 잘은 모르지만 빈익빈 부익부일거 같아요.
오스카에서 연기상 하나 정도는 주는게 맞지 않나 싶은데 연기상도 경쟁이 너무 치열해서요.
2020.01.16 10:34
2020.01.16 14:35
아이리시맨의 원작자 찰스 브랜트 책 중에 도니 브래스코에 관한 책도 있더군요.
파치노는 늘 똑같은 스타일로 연기한다 싶으면서도 그게 영화와 배역에 또 잘 먹힌다는. 이 사람 연기하는 것 보면 강렬한 물감으로 그림 그리는 화가가 생각납니다. 스콜세지와 모딜리아니 전기 영화하려고 했다가 예산 확보 못 했고 피카소도 연기하고 싶어하죠. 마이클 콜리오네는 지금 생각해도 복잡한 인물이라고 그러더군요.
2020.01.16 18:20
마피아 관련 영화보다보면 머릿 속에서 떠나지 않는게 "대부"에요. 봐도 봐도 늘 새로운게 보이고 다시 봐도
질리지 않아요. 알 파치노가 연기하는 피카소는 어떤 모습일런지.
지미 호파는 익숙한 옷을 입은 것 같은 캐릭터였구요.
2020.01.16 18:31
<대부>와 <스카페이스> 사이에 어떤 내면의 변화가 있었는지는 몰라도 스타일 변화가 크죠. 알콜중독으로 고생했다고 하고 목소리도 담배를 많이 피워서인지 바뀌고요. 토니 상 받고 찍은 <백색공포panic in the needle park>에서는 굉장히 섬세하고 불안정한 모습이 있었어요. 이 영화보고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가 <대부>에 캐스팅하죠.
2020.01.16 10:26
대놓고 부정적으로 그린다거나 조롱하는 느낌은 전혀 없지만 저는 긍정적으로 조금이라도 미화하거나 좋게 봐주는 시선은 거의 못느꼈습니다.
마지막 혼자 남은 주인공의 에필로그에서도 니가 평생 그렇게 더러운 짓 해가면서 지켜온 모든게 다 무슨 소용이냐 지미 호파가 얼마나 대단했니 어쩌니해도 간호사는 "그게 누구?" 이런 수준이고 뭔가 허무하고 한심하게 바라보는듯한?
2020.01.16 10:30
2020.01.16 10:56
2020.01.16 15:09
ㅋㅋㅋ 알 파치노가 등장하는데 45분이 걸리더군요. 그리고 퇴장 후부터 영화 끝날 때까지 또 45분. 총 90분을 안 나오는데 남은 분량이 또 100분이 넘으니 이건 뭐. ㅋㅋㅋㅋㅋ
2020.01.16 18:21
영화관에서 안봤으면 초반 1시간에 지루하다고 생각해서 집어치웠을 수도 있는데 영화관에 갇혀서 강제로 봤던게
이 영화 관람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2020.01.16 17:24
저는 올해 오스카는 이 영화가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원어할이나 1917은 아직 못봤지만... 넷플영화라... 그래도 아이리시맨이 탈 가능성이 아예 없진 않으니 또 모르죠.
2020.01.16 18:23
아카데미 그놈들(?)이 생각이 있다면 정말 뭐라도 하나는 줘야한다고 생각해요. 얄미운 넷플릭스 돈 받아 만들었다고 해서 수십년을 그 바닥에서 활약한 레전드들을 차별해선 안 되죠. 솔직히 이 분들 중 누구 한 명에게 상 주는데 특별 대우까지도 필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만큼 잘 만든 영화이고 다들 잘 해냈으니까요.
2020.01.16 18:44
2020.01.16 18:56
저는 그 장면보면서 자꾸 브라이언 싱어의 <발키리> 떠올린다니까요. 탐 크루즈 일행이 히틀러 암살하고 탈출하는 장면요. 비슷하게 차근차근 긴장을 쌓아올렸다고 정점에 끌어올려 조용히 산화하는 느낌이라서 그럴까요. 거장의 손길이 이런 건가 싶었습니다. 자기가 곧 죽을 운명인 줄 모르고 실없는 소리하는 태평한 호파...알 파치노 연기 잘 하더군요.
2020.01.16 19:09
2020.01.16 19:49
전 좀 단순한 사람이라 그 시퀀스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게 다름 아닌 알 파치노가 총에 맞는 장면이었습니다.
클로즈업도, 슬로우모션도 없고 특별한 펀치라인 같은 것도 없고 아무런 강조 연출 없이 그저 몇 초만에 슥슥 지나가버려서 (그런 장면이 나올 거라고 알고 있었음에도) 보다가 화들짝 놀랐어요. 말로는 쉽지만 아무나 선택할 수 있는 연출은 아니었죠.
오스카의 마틴 스콜세지 대접이 좀 그렇긴 하죠. 그 즐비한 명작들을 집요할 정도로 외면하다가 '디파티드'로 감독상 주는 걸 보고 참 기쁘긴 기쁜데 동시에 기분이 별로였어요. ㅋㅋ
최근 기사를 보니 스콜세지가 작품상 경쟁작들 중에 '기생충'을 가장 좋아한다고 인터뷰했던데, 왠지 둘 다 물 먹을 것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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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다 보니 여러 번 감상하면서 평이 더 좋아지도 것도 같더라고요. 스타워즈 라오스 본 충격이 며칠째 가는데 스콜세지는 jj 애브람스와 달리 관객이 생각을 하게 하고 뇌를 쓰게 하더군요. 심하게 말하면 이것도 관객의 지능 모독이 아닌가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