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2.13 11:23
회사에서 연차 사용 촉진제도를 시행합니다. 뭐 연차수당 안주겠다는거죠.
회사마다 다르겠지만, 제가 다니는 회사는 굴뚝산업+24시간돌아가는 제조업이라 많이 보수적입니다.
휴가를 일주일이상 안쓰는게 관례입니다. 연차 5일 쓰면 토일월화수목금토일 해서 9일을 쉬는거죠.
이것도 본사 이야기이고, 공장은 4일만 썼었어요. 엔지니어가 일주일 내내 공장 안나오면 불안하지 않냐며... 그래서 토일월화수목 or 화수목금토일 이렇게 6일을 쉬었죠.
제가 사원,대리 시절 일주일에 하루만 공장 나오면 되는거죠? 하고서 수목금토일월화수(7일) 쉬었더니 팀장이 '넌 반항하냐?' 라고 한적도... ㅋㅋㅋ
(그래서 그 팀장이 퇴사하면서 저한테 '난 너 오래 못 버티고 그만둘줄 알았어..' 라고 했었죠.)
이러다가 공장에서 '왜 본사는 일주일 쉬는데 우리는 6일 밖에 못 쉬냐' 라는 불만이 나와서 이제는 공장도 일주일 쉽니다.
회사 관례와 분위기가 이런 상황에서, 문제의 '그 친구'가 3주를 쉬겠다고 연차 사용 계획서를 올렸습니다. 4월 총선일부터 5월 어린이날까지...
사규나 법적으로 이걸 막을 근거는 없습니다.
본인 업무 인수인계 잘 하고, 그때 중요한 일 안 걸리게 사전 조정하고.. 조정이 안되면 저나 다른 팀원이 커버하면 되겠죠.
그런데, 이건 지금까지의 관례를 깨도 너무 깨는 거라... 2주를 쓴다고 해도 말이 나올텐데 3주를 쓴다고 하면요.
그래서 인사팀에 대충 두루뭉실하게 연차 연속 써서 2주, 3주 써도 문제 없죠? 라고 물어봤어요. 인사팀에서도 팀장이 승인하면 인사팀에서 막을 근거는 없다. 팀장이 잘~~ 알아서~~ 판단하세요~~~ 라고 합니다. 팀장이 알아서 해. 우리는 책임 안짐. 그런 늬앙스더라고요.
고민하다, 상사님에게 이런 상황인데 못 쓰게 막을 근거도 없으니 승인해야 하지 않겠냐 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뭐 저도 소시적에 관례 깨고 반항하고 그랬으니까요.
이야기 하자마자 상사님 표정이 확 바뀌면서 매우 부정적인 분위기를 온몸으로 발산하시더군요.
**이는 지금도 평판 안 좋고, 여기저기 사고 친것 때문에 걔 받느니 그냥 인원 부족한채로 가겠다는 말 듣는 판에 그런 구설수까지 나면 앞으로 회사생활 힘들지 않겠냐.
(생각해보니 예전에 입사동기가 신혼여행 유럽 간다고 2주 쉬고 나서 퇴사할때까지 '우리 회사에서 2주 쉰 애는 니가 처음이자 마지막일걸' 이라는 소리를 듣고 지냈습니다.)
진급 계속 밀리고 있는데, 올해 진급도 포기한대니?
그때가 황금연휴라 연차 붙여 쓰겠다는 사람들 있을텐데, **이가 먼저 그렇게 쓰면 딴 사람들은 불만 안생기겠니?
3주를 쉬어도 문제가 안생기면, 걔는 지금 한사람 몫을 하고 있기는 한거니?
가뜩이나 TO 대비 사람 모자란다고 아우성치면서 사람 한명 빠지고 일이 돌아가면 TO 줄여도 되겠구나 생각하지 않겠니?
너는 팀장이면 그렇게 했을때 팀에 어떤 영향이 있을지, 그리고 팀원에게 어떤 영향이 있을지 생각을 해봐야지, 쓰겠다고 하니 승인한다고 하면 되겠니?
대충 이런 이야기를 30분동안 듣고 나왔네요.
외국계 회사나 휴가 길게 쓰는 분위기의 회사라면 애초에 이게 문제꺼리도 안되겠지만.
누군가 선구자가 되어 관례를 깨어보는 것도 좋겠지만요. 평범한 사람이 해도 몇년은 꼬리표가 붙어 다닐 판에, 이미 평판이 안 좋은 사람이 관례를 깬다고 저질렀다가 데미지만 치명적으로 입는게 아닌가.... 아니 그런데 이걸 내가 왜 걱정하나.
P.S)
뭐하려고 이렇게 길게 쉬냐고 물어봤어요. 원래 연차나 휴가 쓴다는데 왜 쓰냐고 물어보지 않은데, 이례적인 경우라...
'수당도 안준다는데 몰아 써서 유럽이나 미국 같은데나 가렵니다.'
음.. 그냥 꼭 길게 써야 하는 사유가 있는게 아니라 수당 안준다니 반항심에 이러는 것 같기도 합니다.
2020.02.13 12:29
2020.02.13 12:53
남일이면 오오 용감하네, 하고 응원할 수 있겠지만...
맨날 같이 일하는 팀원이면 문제가 다르죠. 평가와 진급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인사팀장과 상사님의 반응이 저런데 후배들한테 영웅 되는 대신 진급 또 안되고 급여 깎여라... 라고 모르는척 할수는 없지 않을까요. 최소한 윗선에서 이러한 부정적인 분위기가 있으니 잘 생각해봐라 하고 이야기는 해줘야 하지 않을지..
아마 올해 동직급 진급 대상인 사람들은 박수 치고 응원해주긴 할겁니다. 요즘 진급 경쟁이 무지 치열하거든요. 잘가라, 짜이지엔, 사요나라...
2020.02.13 13:09
맞아요...
본인이 눈치로 알고 있다고해도 누군가가 이야기해주는 것이 필요하죠.
이런저런 경우를 본인이 객관적으로 생각해 볼수 있으니까요.
근데, 휴가를 일주일만 가면 진급이 되나요?
그 사원에게 3주가면 이번에도 진급에 누락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해줄수 있는데(이렇게 되면 사표인가,,,),
그 반대로는 또 보장을 해줄수도 없을거에요..
그 사원의 선택이죠.(어쩌면 다른 회사 알아보는 걸수도 있고, 퇴사전에 휴가를 다 소진하려는 것일 수도 있고,,,뭐...그렇죠...)
2020.02.13 13:28
진급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평가 0.5점 차이로 되느냐 마느냐 갈리거든요.
진급 연속으로 물먹고 나서도 굳이 올해 평가권자와 인사팀장에게 찍히는 짓을 하면... 안했을때 진급 보장은 못하지만 하면 물먹는건 확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깟 휴가 며칠 덜 갔다고 진급이 보장되겠어요?
냉정하게 보면 제가 평가 잘줘도 2차 평가자인 상사님이 깎을 분위기인데, 이 분위기에 쐐기를 박겠죠.
2020.02.13 12:30
2020.02.13 12:56
상사님 워딩이에요... ㅠ.ㅠ
위에선 그렇게 보이나 봅니다.
제가 보기에는 수당 안준다니 뒷 생각 안하고 그냥 흥! 그럼 난 이렇게 할거야! 하는 초딩 마인드..
2020.02.13 12:39
2020.02.13 13:00
마음약한 사람들, 용기없는(그러나 일반적) 사람들에게 좋은 이유가 되죠.
내가 안하면 다른 사람들이 힘들다...
근데, 다르게 생각하면 회사입장에서는 이이제이가 되는 거죠...
2020.02.13 13:03
고참 부장들이 작년에 휴가 안 쓰다가 다 쓰라고 해서 부랴부랴 4분기 3개월간 주4일제를 하더군요.
고참들은 휴가도 5일 안 써요.. 3일이나 4일로 쪼개 쓰더라고요.
저랑 팀원들이 스플래쉬 데미지 입는거 각오하고 3주 쓰게 한뒤에 상사님의 분노로 팀에서 방출되면 저도 이런 고민 더 안해도 될것 같긴해요. ㅋㅋㅋ
다양한 부서에서 사고치고 방출되서 여기서도 방출되면 받아줄데가 없다는게 문제지...
2020.02.13 13:40
제가 제 직장에서 최초의 남성 육아 휴직자로 '선례'를 만든 사람이었는데요. ㅋㅋ
윗사람들에게 거의 괴롭힘에 가까운 갈굼을 두 달간 받고 또 함께 일하던 분들 중 몇몇에게 아쉬운 기분 갖게 만들기도 했고 그랬습니다만.
일단 제가 질러 버리고 나니 이후로는 사람들이 편하게 '나도 해볼까?'라고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분위기가 되더라구요. 실제로 제 뒤로 하신 분도 있구요.
그러니 그냥 그 분을 들이밀어 선례를 만들고 나중에 가라님도 그렇게 쓰시는 걸로. <-
2020.02.13 13:48
저희 회사 육아 단축근무제 있는데요.... 적극 장려한다는 말 나와서 제가 농담으로 '저도 아직 아이가 어려서 신청 가능하네요' 라고 했을때 상사님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잊지 못합니다. ㅋㅋㅋ
회사에 육아휴직 쓴 남자 직원들이 몇명 있는데... 공식적으로는 차별이 없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진급이 밀린다던가, 한직으로 밀린다던가 하더라고요. 그거 못 버티고 퇴사도 하고...
저는 이제 보직자가 되어서 3주 휴가 간다고 하면 책상 빼거나 보직해임할지도... ㅠ.ㅠ
2020.02.13 14:50
어, 근데 전부터 종종 느끼는 거지만 가라님은 다들 꺼려하는 그 문제(?)의 후배님을 은근 걱정하고 마음쓰고 있는 것 같아요. ㅎㅎ
2020.02.13 15:04
그런 느낌이 있어요.^^
아마도, 지금의 자신의 역할을 잘하고 싶은 거 아닐까 싶어요.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성격이라면, 새로 추가된 역할에서도 잘하고 싶은거고,
그동안 겪어온 상사들에게 부족했던 것들을 가라님이 채운다면 다른 사원들에게도 좋은거죠.
위 아래로 좋은 평가를 받아서 업무가 팀장 업무로 바뀌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요.
2020.02.13 23:37
외국 회사라도 2주 이상 휴가는 좀 꺼리는 분위기가 많지 않나요?
제가 다니던 회사들도 2주 휴가는 최소3-4개월 이전에 신청해야 되고,
매니져가 안된다고 할 수는 없지만 바쁜 시기라면 다른 시기를 택하라고 말하곤 했어요.
더군다나 3주면 아예 그건 힘들겠다라고 말하기도 하고요.
회사문제에요.
휴가 사용에 (암묵적)제한이 있다면, 보상이라도 있어야겠죠.
용기를 내지 못한 다른 사원들의 응원을 받아야 할 사항인것 같아요.. 평판과 관계없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