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2.16 17:00
재개봉하니 개봉 당시 열풍이 오히려 부담스러워 안 봤던 저같은 사람도 보게 됩니다. 그러기도 웹 상의 너무 다양한 해석과 감상글때문에 겁나서 안 본 것도 있습니다. 닥치고 놀란 찬양파도 아니고요. 그런데,케이블로는 제대로 감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아 일부러 시간과 돈을 들여 봤습니다.
이 영화는 아날로그적이고 편집과 음악이 살렸다고 생각합니다. 영화관에 가서 보게 되는 게 음향때문이었고요.
놀란이 기용하는 배우들은 이름값이 다 쟁쟁한데 그 사람 영화 안에서 이상하게 배우들이 자신들의 재능을 다 100프로 활용한다는 생각은 안 듭니다. 뭔가 눌려 있는 느낌이 들어요. 이 눌려 있는 느낌때문에 마이클 키튼의 배트맨/브루스 웨인을 베일 버전보다 좋게 보고 벤 에플렉의 배트맨이 베일보다는 나았다고 생각합니다. 베일이 놀란의 외모와 연출 스타일만큼 우직하고 심각하다면 에플렉은 웨인/배트맨이 편집증적이고 맛이 간 놈이라는 걸 알고 연기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각본과 연기지도 면에서 감독의 한계가 아닌가 싶기도 해요. 그나마 가장 인간적인 감정이 나왔던 게 이 영화에서의 킬리안 머피 아니었나 싶어요. <메멘토>의 가이 피어스는 배우가 알아서 잘 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베일이 배트맨으로 캐스팅되기 전 놀란이 원한 배우이기도 했죠. 톰 하디는 자의식 과잉이나 극적으로 양식화된 느낌없이 정말 자연스런 연기를 해서 그 이후의 승승장구가 이해가 됩니다. 팔딱팔딱 뛰는 느낌이었어요.
리오 - 마리옹- 엘렌 페이지 셋을 교차시킨 장면이 후반에 나오잖아요. 이것은 놀란 영화에서 대착점에 있는 두 남자 그 사이에 낀 여자 구도가 생각나더군요. 페이지는 꼬띠아르에 대적하면서 밀리지 않는 에너지와 디카프리오에게 연민을 갖고 차분하게 상황을 정리해 주고 대안을 제시해 주는 역할을 잘 해 냅니다. 추락하는 장면이 인상깊었는데 <제5원소>의 추락장면도 생각나더군요.
결말은 현실에서 끝이 나고 주인공도 현실로 돌아가고자 발버둥쳤지만, 꿈이든 현실이든 아이들과 함께 하기를 택한 주인공의 의지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놀란에 대한 제 생각은 재간꾼이라는 겁니다, 좋은 의미에서요. '거장', '작가' 까지는 모르겠고요. 아직은 젊고 현재진행형인 사람이잖아요.
나이든 리오에 익숙해져 어쩌다 어린 시절 리오 보면 원래 성깔있게 생겼구나, 살 찔 얼굴이었구나 하는 생각만 듭니다.
아리아드네가 콥에게 보이는 관심은, 일단 아리아드네는 다른 문화와 언어권으로 유학 올 정도로 호기심이 강한 사람이고 불법적인 일이라고 해서 처음에는 약간 주저하다가 전혀 새로운 세계를 지을 수 있다는 스릴을 거부하지 못 하고 사기나 다름없는 일에 합류할 정도의 과감성이 있는 인물이잖아요. 그리고 맬때문에 프로젝트 자체가 위험해질 수 있을 뿐 아니라 잘 하면 영원히 깨어나지 않을 수 있어서 맬에 대한 코브의 사연을 듣고 그 오류 혹은 위험성을 제거하는 게 당연하다고 봤습니다. 프로젝트 매니저가 팀원을 파악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봤어요. 이성적 관심은 아닌 듯 하다는 게 제 생각이었고요. 페이지는 그 전작인 <주노>에서 부부와 얽히는 역을 연기하는데 여기서는 코브 부부의 문제에 끼여들게 됩니다.
코브의 무의식에 늘어 붙어 허구한날 튀어 나오는 맬을 보고 저는 에드워드 고리의 그것을 생각했죠.
눈이 내리면 생각나는 프렌치 팝송인데 이탈리아 어 버전입니다.
2020.02.16 17:07
2020.02.16 17:12
Elsa Lunghini가 본명인데 이탈리아 계라네요. 에바 그린하고는 어머니 쪽으로 해서 사촌요. T'en va pas는 영어 버전을 엄청 많이 들었죠.
2020.02.16 17:12
2020.02.16 17:15
제가 <다크 나이트>는 온갖 상영관 섭렵하면서 30번은 봤는데 지금은 완전히 짜게 식었어요, 그게 <다크 나이트 라이즈>보고 나서였습니다. 그 영화도 극장에서 세 번은 봤죠. 17년 여름에 <다크 나이트>재개봉할 때 다시 보고 이제는 완전히 애정이 식었음을 확인했습니다. 덧붙여, 매기 질렌홀이 매력없다는 것도 새삼 확인했고요. 이름은 기억 안 나는 어린 여배우가 <다크 나이트>의 배 장면을 가장 감동적인 영화 장면으로 뽑았던 잡지 기사 읽고 다른 옛날 영화도 좀 보라고 말하고 싶었죠. <인셉션>을 위에서 쓴 이유로 극장에서 두 번 봤지만 제가 열광할 영화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크 나이트>이전의 <프레스티지>와 <인썸니아>가 더 낫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2020.02.17 15:52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솔직히 놀란은 좀 과대평가된 감독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영화 안에서 어떤 규칙을 정해놓고, 그것에 맞춰 캐릭터들이 제한된 연기를 하다보니 좀 장기말 같아지고 말씀하신 눌려있는 느낌이 듭니다.
제가 놀란이 좀 음흉하단 생각을 하는 건,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주요 테마를 따오면서
(인터스텔라는 가이낙스의 건버스터와 비슷한 설정이 있고, 인셉션은 사실상 콘 사토시의 파프리카 아류작 정도입니다)
늘 그것에 대해 언급도 안하는 점이에요.
이건 무엇의 오마쥬다, 그런 작품을 좋아해서 소재를 빌려왔다 정도의 언급은 해야죠. 그렇다고 영화가 후져지는 것도 아닌데..
2020.02.17 16:16
히스 레저,가이 피어스,킬리안 머피는 본인의 능력이었다고 봅니다. 감독이 지도한 것 이상의 것을 본인의 능력치에서 가져 왔다고 생각해요. 가이 피어스는 튀지 않으면서 완벽주의적으로 준비해서 역에 몰입하는 배우기도 하고요. <다크 나이트>에서 히스 레저 사라지고 힘이 쫙 빠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월 스트리트>에서 마이클 더글라스가 연기하는 고든 게코가 나오지 않을 때 심심해지는 것과 비슷했습니다.
서구에서도 놀란이 과대평가되었느냐는 논쟁이 있는 편인데 <메멘토>는 누군가가 해롤드 핀터의 <Betrayal>을 들어서 아주 새로운 시도가 아니었다고 하더군요. 저 그렇지 않아도 <창조하는 뇌>라는 책에서 시간의 역구성과 관련해 <배신>을 언급한 것 보긴 했습니다. 놀란의 영리함이란 게 한편으로는 이 음흉함의 다른 말인지도 모르겠어요. 테크니션이라고만 하기에도 아직은 뭔가 부족해요. 놀란은 시네키드라는 생각이 들어요. 뭐랄까, 인생을 영화를 통해서 배웠다고 하나요. 현실의 살이 부딪히고 이런 생생함과 피튀겨짐이 안 느껴지는 감독들 중의 한 명입니다. 관념을 시네마를 통해 구축한다는 장기는 확실하고요. 쓰다 보니 폴 버호벤이 대단하는 생각이 갑자기 드네요.
이탈리아어로 직접 불렀나봐요.
내한해서 우리 티비에 나올 땐 너무 좋아서 음반도 샀었는데.
땅 바 빠 좋아합니다.저 앨범커버 맨 위에 있는 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