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이어라

2020.02.06 20:28

Sonny 조회 수:684



DJ Refernce가 등장한 이후로 모든 음악판도가 바뀌었다. 젊은이들은 더 이상 옛날 노래를 듣지 않았다. 지금은 나이들어버린 이들의 청춘곡들도 예외가 될 순 없었다. 슈퍼스타로 세계를 지배하던 BTS가 은퇴한지도 어언 20년, 이제는 누가 틀기만 해도 임플란트가 귀 때린다고 모욕을 하는 노래들이 되었다. 차라리 놀림받는 게 나았다. 다 쭈그러진 얼굴들이 모여 저땐 방탄이 멋졌지, 우리도 국뽕 좀 먹었지, 제임스 코든 쇼에 나왔을 때 쩔었지, 유엔 어쩌구에서 연설을 했지... 다 집어쳐라 이 늙다리들아! 이기불씨는 냅다 레이저 키보드를 끄고 침대에 누웠다. 세상은 벌써 2050년이고 이제 가사 붙은 노래보다 없는 노래가 더 많은데 무슨 추억팔이들인지.


그랬던 57세의 이기불씨가 오늘저녁만큼은 맹렬하게 조깅한다. 이 끓어오르는 피를 어찌 할 수가 없다. 그의 유전자가 노래 하나에 다시 꿈틀거린다. 누가 그랬던가. 명곡은 시간 속에 묻혀도 스스로 소리를 질러 뚫고 나온다고. 이날 정오, (고) 송해의 손자 송송해가 진행하는 전국 슈퍼 노래 자랑에 어떤 청년이 등장했다. 35세 이후는 누구라도 포터블 믹스사이져를 가지고 나와서 무가사 음악을 연주하던 그 판에, 그는 마이크를 들고 나왔다. 이렇게 젊은 사람이 마이크를 들고 직접 노래하는 건 또 오랜만이네요, 반갑습니다. 서영몬이 부릅니다. 디엔에이! 모니터에 붙은 심박체크계가 급격히 올라갔다. 하트 표시가 점점 빠르고 커졌다. 이기불씨는 플라잉 해머에서 떨어질 뻔 했다. 아직 새파란 20대처럼 보이는데 이런 옛날 노래를 왜 부르지? 얼굴에 디지털 칩 피어싱 하나 없는 매끈한 그가 휘파람 소리에 맞춰 발을 놀렸다. 반주에 작은 드럼 소리가 얹어졌고 이기불씨는 플라잉 해먹을 좌식 모드로 고정한 뒤 자세를 고쳐앉았다. 티비 속의 그가 영롱한 소리로 노래를 시작했다. 첫눈에 널 알아보게 됐어. 서롤 불러왔던 것처럼.


이기불씨는 눈을 부릅뜨고 롤러블 월스크린을 쳐다보았다. 이럴 수가 있나. 불법이지만 비싸게 산 사운드스틸러를 켜놓고 외부음을 완전히 차단했다. 이기불씨의 방은 서영몬의 노래만이 울려퍼지고 있었다. 이 모든 건 우연이 아니니까. 끝내 이기불씨의 입술이 움직였다. 옛스럽게 노래를 부르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가사없는 노래를 듣기만 하지도 못하고. 무엇도 선택할 수 없어서 음악감상을 거의 포기했던 이기불씨가 마침내 소리를 내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래, 나는 한 때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춤도 추던 사람이었는데. 노래를 안부른지 15년이 넘었는데도 이 노래만큼은 생생하게 흘러나왔다. 영원히 함께니까! 이기불씨는 왼쪽 팔뚝에 손가락으로 주사를 놓았다. 그리고 비장하게 중얼거렸다. 디엔에이... 이기불씨는 직감했다. 저 청년이 다시 한번 음악의 판도를 뒤집어놓겠구나. 나 어렸을 때는 서태지가 그랬다던데 이제 어줍짢은 일렉 어쩌고를 서영몬이란 저 친구가 다 쓸어버리겠구나...


다시 찾아온 이 두근거림을 어찌할 수 없어 이기불씨는 수납장들을 열심히 클릭했다. 그리고 찾았다. 뛰어야지 뛰어야지 하면서도 그렇게 안뛰어서 처박아놨던 전신맞춤 3d 타이즈. 주인의 머리 위를 떠다니는 체이싱 플레이어도 챙겼다. 현관에 서서 말했다. "조깅 모드" 밑바닥에서 고무가 올라왔고 이내 이기불씨의 발을 감싸더니 신발이 되었다. 이기불씨는 제자리에서 팡팡 뛰어보았다. 그리고 씨익 웃었다. 문 밖을 나서자 체이싱 플레이어에게 메시지가 왔다. 어떤 노래를 틀까요? 이기불씨는 옛날 사람처럼 일일히 알파벳을 클릭했다. D.N.A. 귀에 이식된 인공세포고막이 전자신호를 받기 시작했다. 이기불씨는 심호흡을 하며 뛰기 시작했다. 땅땅땅땅, 휘파람 소리가 다시 들려오고 이기불씨의 왼발과 오른발이 차례차례 대지를 밟거나 허공을 날았다. 역시 인생은 아날로그인 것이지! 혹시 디엔에이도 다시 젊어질 수 있을까? 이기불씨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온 몸으로 질문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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