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냉장 코너에 보면 한두개쯤 꼭 진열돼있는 그거예요.
전 전자레인지에 데워먹는 즉석식품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요, 이게 맛있는 척을 하는 맛없음이라 그래요. 특히 겨울 찬 바람에 시달린 상태에서 한 입 털어 넣는 그것들은 그 뜨끈함에 일단 감탄은 하고 보거든요. 이후로 음식이 점점 식어갈수록 여러 가지 첨가물의 어지러운 냄새와 즉석식품 용기의 역한 냄새 같은 것들이 풍기기 시작하면, 아 내가 대체 뭘 처먹었나 현타가 오죠. 맛없을 거면 첨부터 맛없든가..... 전자레인지에다 데운 즉석식품을 한 입 먹었을 땐 언제나 오 의외로 괜찮은데? 속고 만단 말예요.
하지만 그런 즉석식품들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마지막까지 맛있는 게 있는데요 바로 3분 어묵이에요. 어차피 어묵이란 거 자체가 길거리에서 먹든 수제어묵 전문점에서 먹든 고급 일식집에서 먹든, 생선을 갈아서 이런저런 첨가물을 넣고 만든 것이니까 기본적으로 재료 본연의 맛 어쩌고 하는 기대가 없는 음식이기도 하고. 추운 겨울에 호호 불면서 먹는 그 맛은 대체로 마지막까지 실망을 주지 않죠. 어묵을 한 대접 먹진 않으니까. 보통 한두 개나 좀 많다 싶음 세 개 네 개에서 멈추죠.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당한 용기 안에 어묵이 대여섯개 들어 있고 곤약묵도 한 개 들어 있는 구성인데, 제가 3분 어묵을 좋아하는 건 또다른 이유가 있어요.
이 삼분 어묵을 전자레인지에 데워 한입 들이키면, 언제나 생생하게 살아나는 장면이 있죠. 초등학교 5학년 때인가 저보다 10살이 많은 큰언니가 박물관에 데리고 간 적이 있어요. 당시 저는 엄마가 해주는 밥이나 튀김과 도넛, 동네 제과점에서 파는 빵이나 핫도그 같은 게 인생 주식과 간식의 전부였던 시절이었죠. 제가 어려서이기도 했지만, 그 당시에는 편의점도 없었고 전자레인지도 집집마다 있질 않았어요. 겨울방학의 시작쯤에 박물관을 갔으니 아마 12월이었을 거예요. 흐린 날이었는데 축축하고 차가운 날씨였어요. 언니가 친구도 한 명 데리고 오라 해서 나의 양지바른 언덕도 데리고 갔었죠. 싱글벙글 두리번대던 친구랑 박물관을 둘러보고 로비 라운지에 잠시 앉아 있으라고 하더니. 안 그래도 좀 춥고 출출하던 참에 큰언니가 들고 온 삼분 어묵은 진짜 신세계였어요. 일단 전자레인지란 거에 데워서 나온 그 동그란 용기도 너무 신기했고, 뜨겁다면서 얼른 내려놓는 언니의 손동작도 신기했고, 뚜껑 비닐 포장을 북 뜯는 것도 신기했고. 언니가 먹자!! 하는 순간 한 입 들이키고 친구랑 나랑 “우와 언니 이거 뭐야” 했던 그날의 신기하고 따뜻한 기분이. 삼분 어묵을 먹을 때마다 그대로 살아나곤 해요. 정말 맜있게 먹었거든요. 마치 현대 최첨단 문명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어요.
난생처음 구경하는 드넓은 박물관의 풍경과 짙게 흐린 하늘. 금방이라도 눈이 올 것 같았지만 눈은 내리지 않았고 입고 있는 옷이 꼭 차가운 비닐을 뒤집어쓴 것 같단 기분이 들던 그날. 나의 양지바른 언덕이 연신 신나서 어머 저것 봐라 어머 얘 이것 봐라 하던 목소리가 갑자기 멀게만 느껴지고 신기하고 종종 웃었지만 이상하게 울적했던 그날. 언니가 데워온 삼분 어묵의 따뜻함이 참 좋았어요. 처음 보는 즉석식품이었지만 그걸 데울 수 있는 전자레인지 같은 기계가 있단 게 낯설었지만, 어쩐지 편안했거든요.
길거리 포장마차에 서서 어묵을 먹는 걸 좋아하질 않는지라 요즘도 가끔 목이 따갑거나 뭔가 겨울바람에 몸이 잔뜩 움츠러들고 배가 고픈 건 아닌데 그렇다고 차 한잔 같은 걸로 채워지지 않는 한기가 돌 때, 편의점에 들러 삼분 어묵을 사서 집에 가곤 하는데요. 세월이 그렇게 흘렀어도 삼분 어묵을 한입 마시는 순간 꼭 그 박물관의 짙게 흐린 하늘과 축축하게 차가운 공기와 웅성대는 사람들의 소리, 그리고 두 어린 동생들을 데리고 박물관 구경을 시켜줬던 큰언니가 당시에 지금의 나보다도 훨씬 어렸단 것. 이미 사회생활을 하던 나이 터울이 많은 언니가 먼 거리를 아침저녁으로 회사를 다니며 번 돈으로 종종 어린 내게 책과 CD, 간식, 용돈을 줬던 것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이 일제히 일어나 훅 치고 가는 기분이 들어요.
참 따뜻하고.
이상하게 조금은 서글픈 그런 기분요.
어묵은 항상 맛있었던 기억이 있어요.
3분 어묵도, 길가의 포장마차에서도, 떡볶기집에서도,,,
어묵에서도 무언가 향수 할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좋아 보여요.
저의 경우는 늙어서인데, 아마도 그래서 서글픈 감정이 드나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