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2.14 00:37
- 2019년작 영화이구요. 상영 시간은 1시간 55분. 장르는... 뭐라 해야할지 모르겠네요. 그냥 '드라마'라고 해두죠. 스포일러는 없을 거에요.
(이보다 훨씬 정상적인 포스터 이미지들이 많은데 별로 맘에 안 들어서...;)
- 텅텅 비고 온통 흰색과 검은색 뿐인 사무실에서 역시 흰색 검은색 옷을 입은 여성이 인터뷰를 하고 있네요. 주제는 장소 분위기처럼 '미니멀리즘'입니다. 미니멀리즘은 불교와 같다... 뭐 이런 철학적인 이야기를 하는가 싶더니 장면 전환.
아까 그 여성이 주인공인데 이름은 '진'입니다. 젊은 나이에 유학 다녀왔고 나름 능력이 괜찮은 뉴비 디자이너인 것 같아요. 근데 이제 자기 사무실을 차려야 하는데 돈도 없고 해서 엄마랑 오빠랑 셋이 사는 자기네 집을 리모델링해서 사무실로 쓸 생각이고, 컨셉으로 잡은 게 바로 미니멀리즘입니다. 다만 문제는... 이 집 상태가 거의 고물상 수준이라는 거죠. 왜 집구석에 자동차 범퍼가 굴러다니는지. ㅋㅋㅋㅋ 당연히 가족들은 이 계획을 탐탁치 않아 하구요.
그래서 이제 이 주인공이 가족들을 설득하고, 또 계속해서 닥치는 난관을 극복(?)하면서 오프닝에서 보여진 결과물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 솔직히 그냥 옥밥 때문에 봤습니다.
(본명, 풀네임은 추티몬 추엥차로엔수키잉. 전 못 외웁니다. 그냥 a.k.a. 옥밥으로 영원히 기억하는 걸로. ㅋㅋㅋ)
본격 컨닝 스릴러, 하이틴 하이스트 무비였던 '배드 지니어스'의 그 똘망똘망 당찬 주인공을 연기했던 배우죠.
그 영화로 반해서 작년에도 넷플릭스에 있는 스릴러 시리즈 하나를 그다지 재미 없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봤었는데. 뭐 한 시간 오십분 남짓 되는 영화 쯤이야 문제가 되겠습니까. ㅋㅋㅋ
게다가 원탑 여주인공이라구요. 시종일관 주인공의 입장에서 흘러가는 이야기이고 그래서 런닝타임 내내 혼자서 이야기를 다 끌고 가니 애초에 선택의 이유가 이 배우였던 입장에서 이 영화의 만족도는 낮을 수가 없겠죠. 덧붙여서 연기도 괜찮았어요. 하지만...
- 영화의 완성도에 대해선 좀 애매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왜냐면, 뭐 그냥 아래 짤들을 보시죠.
이것이 난장판 중의 난장판, 쓰레기장 같은 집의 모습... 입니다. 물론 설정에 걸맞게 초현실적으로 쓸 데 없는 물건들이 영문을 알 수 없게 쌓여 있긴 한데,
그 모습이 왠지 어지러운 척하는데 깔끔한. 지저분한 것 같지만 팬시한 그런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그게 이 영화의 성격을 딱 제대로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팬시한 감성'이요.
도입부에 보여지는 다 치우고 깨끗하며 '미니멀'해진 집의 모습도 폼이 나지만 어질러져 있는 혼돈의 카오스 상태의 집도 예뻐요.
화면 톤도 예쁘고 나오는 배우들도 예쁘면서 편집도 적당히 센스 있게 아기자기하고... 그에 걸맞게 이야기는 되게 안전합니다. 건전하게 교훈적이죠.
재미가 없는 것도 아니고 못 만든 것도 아니고 이야기에 무슨 결함이 있는 것도 아닌데.
잘 보고 나서도 뭔가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는 좀 껄쩍지근한 느낌이 드는 '달콤함'이 은근 강하게 깔려 있어서 칭찬해주기가 영 그래요. ㅋㅋㅋ
뭐 사실 이건 보는 사람 성향의 문제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일단 제 취향엔 좀... 그 팬시함이 영 거슬리더라구요.
- 아. 그런데 정작 이 영화가 어떤 내용인지를 말을 안 했군요.
그러니까 '요즘 누가 CD로 음악 듣냐, 스포티파이와 애플 뮤직의 시대다!' 라고 외치는 21세기 감성의 신봉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워서 집안의 숱한 물건들을 다 내다버리려는 상황으로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결국 주인공이 그 물건들의 사연, 추억 그리고 거기에 얽힌 감정... 들을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겪는 내면적 변화와 인간적 성장... 이런 걸 이야기하는 영화입니다. 이렇게 말해 버리면 굳이 스포일링을 하지 않아도 대략 어떻게 흘러갈지 짐작이 가겠죠.
사실 좀 아재스러운 테마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특히 저처럼 오래된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마음의 병이 심한 사람에게 딱 맞는 테마이고 그런 측면에서 이 이야기를 어느 정도 즐겼다는 건 부정할 수가 없네요. 20년 넘게 펼쳐보지도 않은 '다이나믹 콩콩 코믹스' 같은 걸 아직도 책장에 꽂아두고서 이사할 때마다 이삿짐 센터 사람들에게 '이 집은 넓이에 비해 짐이 정말 많네요!!!' 라는 소리를 듣는 사람들의 마음에 위안을 주는 영화랄까요. ㅋㅋㅋㅋ 나는 틀리지 않았어!!!
(사실 좀 이래야할 필요가 있긴 합니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그게 말입니다...)
- 근데 또 다 보고 나니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대략 20년쯤 전에 이 영화를 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거요.
아마도 그랬음 '잘 알려지지 않은 수작!' 이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칭찬도 하고 다니고, 또 오랫동안 되게 좋은 인상으로 기억하고 그랬을 것 같아요.
위에서 말했듯이 전반적인 이야기 자체는 준수하거든요. 단점이라는 게 팬시한 감성 정도인데 만약 그 감성이 취향에 맞는다면 그냥 좋은 영화인 거고. 지금은 사실 잘 기억도 안 나는 20년 전의 저는 솔직히 별의 별 갬성 터지는 만화, 영화, 드라마들 보면서 좋아하는 사람이었... (쿨럭;)
찾아보니 감독의 나이가 32세인가 그렇던데. 그냥 애초에 저 같은 사람 보라고 만든 영화가 아니었던 게 아닌가. 너무 늙어서 이 영화를 보게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그랬습니다. ㅋㅋㅋ
사실 이 영화의 스토리에서 딱 한 가지 맘에 안 드는 게 이 주인공의 전남친 이야기였는데요. 제가 바라는 것에 비해 비중이 좀 컸어요.
그것 때문에 이야기 전체가 휘둘리고 어그러지고 그런 건 다행히도 아니었습니다만. 그래도 되게 중요한 사건으로 취급이 되거든요.
그런데 지금 이 나이에 볼 땐 아쉬운 부분이 될 수 있지만, 또 20대의 입장에서 본다면 아무래도 연애지사란 게 대체로 되게 중요한 일이긴 하지 않겠습니까.
나이 먹을만큼 먹고 벌써 학교 다니는 애 키우는 중인 아저씨 잣대로 '연애 이야기는 좀 빼지?' 라고 평가하는 것도 무조건 옳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고. ㅋㅋㅋ
(구남친과 구남친의 현여친. 그만 좀 나왔으면 하는데 자꾸 나오더라구요. ㅋㅋㅋ 다행히 이야기를 망치진 않았네요.)
- 뭐 대충 정리하겠습니다.
전체적인 완성도는 썩 준수한 편입니다. 못 만든 영화라는 생각은 전혀 안 들었어요.
하지만 대체로 젊은 애늙은이 취향에다가 팬시한 갬성을 깔고 흘러가는 이야기였고 그런 부분에서 이야기의 깊이가 많이 얕아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자신의 영화 취향이 좀 건전하고 착한 이야기 쪽이다... 라는 분이라면 한 번 시도해보실만 해요. '예쁜' 분위기 좋아하는 분들에게도 괜찮을 수 있구요.
하지만 저에겐 뭐랄까... 위에도 적었듯이 한 20년쯤 일찍 봤어야 했던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론은 제 늘금이 가장 아쉽네요. ㅋㅋㅋㅋㅋ
+ 원래 감독은 가족 간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출 생각이었다는데. 그 계획대로 됐다면 제 취향엔 좀 더 나았을 것 같아요.
주인공 엄마 캐릭터도 나름 파볼만한 구석이 있는 캐릭터였는데 대충 넘어가고, 또 극중에서 주인공과 가장 케미가 잘 맞는 게 오빠였는데 오빠 역시 초반 넘어가면 비중이 별로 없거든요.
(이렇게 남매입니다. 엄마 캐릭터는 짤을 찾을 수가 없군요;)
++ '곤도 마리에'의 책과 영상이 초반에 몇 번 언급되고 등장합니다. '당신을 설레게 하지 않는 물건은 모두 버려라'라는 정리법(?)으로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분이라죠. 전 이 영화로 처음 접했는데... 사실 이름은 확실히 기억나는 걸 보면 전부터 스쳐가며 여러번 보긴 했던 거겠죠. 그 내용에 관심이 안 갔을 뿐. 좀 재밌는 점이라면 이 영화의 주제는 곤도 마리에가 설파하는 사상과 사실 별로 잘 맞지 않는다는 거...
+++ 어쨌든 우리 옥밥님은 여전히 훌륭하셨습니다만. 좀 '배드 지니어스'처럼 폼 나는 역할을 다시 맡아주면 좋을 것 같아요. 근데 왠지 '그럼 그냥 배드 지니어스를 다시 보는 수밖에'가 유일한 방법이 되지 않을까... 하는 불길한 예감이 드네요.
++++ 태국말을 몰라서 원제는 뭔지 모르겠지만 영어 제목은 'Happy Old Year' 입니다. 역시 갬성 터지긴 하지만 영화 내용과는 아주 잘 맞네요. 한국에서 붙인 제목인 '너를 정리하는 법' 이거는... 뭐 나쁘지는 않네요. 일단 구남친 이야기가 비중이 적지 않으니 그렇구요. '너'의 범위를 좀 확대해서 해석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겠고... 결정적으로 영화의 예쁘장하고 감성 터지는 분위기와 참 잘 맞는 제목인 것 같기도 해요.
2021.02.14 03:51
2021.02.14 04:09
2021.02.14 09:53
호더가 사실은 살신성인하여 환경보호의 역할을 하는 것이었던 것이었다.. 이런 주제로는 영화가 안만들어지겠죠..
말씀하신대로 사진만 봐도 정신적 문제가 있는 사람이 아니고 아까워서 못버리는 집이군요.
제 동거인의 본가가 그런 집인데.. 제 본가도 그렇긴합니다.
2021.02.14 14:24
그런 주제로 만들어도 코미디는 가능할 것 같습니다. ㅋㅋㅋ
네 본문에도 적었듯이 저도 정말 물건을 못 버려요. 그래도 결혼할 때 나름 엄청 버려서 짐을 많이 줄이고 오긴 했는데 결혼하고 10년간은 또 계속해서 쌓고만 있습니다... 언젠가 이사갈 때 현금으로 댓가를 치르겠죠. ㅋㅋㅋ
2021.02.14 11:59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작품도 미니멀리즘을 추구해서 참 정갈(?)하고 깔끔한 느낌으로 봤던 기억이 나네요. 그것 말고는 내용도 가물가물 분명 본지 1년이 넘지 않았는데 말이죠 ㅎㅎ
전남친 관련 플롯이 좀 불필요하게 컸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메인 포스터에는 아예 투톱처럼 같이 나와있던데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었는지 싶네요. 막판 터지는 감정선을 끌어내기 위해서라지만 좀 더 가족의 이야기로 풀 수 있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오빠 캐릭터도 더 파보면 좋았겠는데 머리 시원하게 미신 주인공 절친 역할 배우도 포스가 강렬하더군요 ㅎ
배드 지니어스에서부터 한 눈에 사로잡히는 매력을 가진 (이름을 외우는 걸 포기한) 여주는 이번에도 터지더군요. 배드 지니어스에서 무슨 동네 시장에서 산 것 같은 티셔츠랑 바지만 입고 다녀도 저세상 간지를 뿜어내더니 여기서는 흔한 인스타에서 미니멀리즘 추구한다는 사람들이 많이 입는 룩인데도 역시 뭔가 달랐습니다. 그런데 스릴러 시리즈는 뭔가요? 이 배우가 주연한 작품입니까? 넷플에 있다면 저도 보고싶네요.
2021.02.14 14:29
필름 카메라로 찍은 분위기 있는 스냅샷 감성이랄까... 그런 느낌이었네요. 스토리야 뭐 워낙 별 게 없으니 기억 안 나시는 게 당연한 것 같아요. ㅋㅋ
네. 저도 그 투톱처럼 나온 포스터들이 맘에 안 들어서 저걸로 올렸어요. 아마도 흥행 생각해서 그런 거겠죠. 남자 배우가 잘 생기긴 했더라구요.
주인공 절친 캐릭터는 나름 매력적이고 좋긴 했는데 역시 또 되게 공식적인 청춘 영화의 주인공 절친 캐릭터를 그대로 갖다 쓴 것 같기도 했어요. 성격 시원시원하고 할 말 다 하지만 그래도 주인공 곁에서 힘이 되어주는... 뭐 그런 거죠. 사실 이 영화 주인공이 절대 좋은 녀석이 아니잖아요. 그 친구는 꽤 괜찮은 사람 같은데 뭐하러 저렇게 열심히 도와주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ㅋㅋㅋ
그 시리즈 제목이 생각이 안 나서 제가 쓴 예전 글을 검색한 김에 걍 링크합니다.
http://www.djuna.kr/xe/board/13727964
글에도 적었지만 '저는 그럭저럭 잘 봤지만 남에게 추천하긴 겁나는' 작품이었다는 거... 강조하고 싶습니다. ㅋㅋㅋㅋ
2021.02.14 13:11
평소 후기를 보며 느끼는 바인데 참 성실하고 친절한 후기를 쓰십니다.
저기 악기 섞여 있는 어질러져 있음을 연출한 사진 같은 거나 내용 전개로 짐작컨대 저 같으면 비웃긴다, 다 흉내내기로 뭐하는 짓이냐 할 법한 영화도 이렇게 있는대로 잘(?) 써 주시니까요.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2021.02.14 14:30
그냥 이게 제 취미 생활이니까요. ㅋㅋㅋ
사실 글 적을 때마다 '이번엔 좀 간결하게 적어야지' 라고 생각하며 시작한 뒤에 등록 버튼 누르며 반성하는 패턴을 매번 반복합니다.
핵심만 간결하게 이야기하고 싶은데 그게 영 어렵더라구요 전. ㅠㅜ
2021.02.14 15:11
작품의 완성도와 관계없이 자세하게 쓰는 것 자체가 창작물에 대한 존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2021.02.14 15:55
영화를 안 볼 수 없게 만드는 글이네요. 취미라고 보기엔 의심스런 사유 문장.. 넘 많고.
태국영화는 몇 번인지 본 기억이 없는데 소개해주셔서 감사해요. 오늘 내일 찾아 볼게요.
2021.02.15 18:39
아... 그렇게 막 추천할 의도는 아니었는데!! ㅋㅋㅋ 정말 보신다면 부디 취향에 맞아서 재밌게 보시게 되길 빕니다.
2021.02.15 13:26
곤도 마리에는 넷플릭스에서 보셨겠죠.
[곤도 마리에 :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가 제 리스트에 자주 올라옵니다.
2021.02.15 18:39
아, 그거 맞는 것 같아요. ㅋㅋㅋㅋ 제목 볼 때마다 '쟤는 누군데?' 라고 생각하면서 한 번도 확인은 안 해 봤네요. 게으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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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이 유튜브에서 쓰레기집 청소하는 거 못본 모양이네요. 집 모양을 보아하니 내면이 황폐하고 얼크러진 사람이 아니라 기냥 추억이 많은 사람이고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