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드맥스의 세계

2024.06.13 12:19

돌도끼 조회 수:341


70년대에 몇 차례의 석유위기가 있었습니다. 심할 때는 한낮에 도심에 차가 안다니고, 도로에는 못움직이게 된 차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고 그랬다고 해요. 이런 세기말적인 광경은 디스토피아를 상상하는 창작자들에게 영감울 주게 됩니다.
'만약에 이 에너지 위기가 계속된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그렇게 석유위기에 영향을 받은 창작물들이 여럿 나왔고, 그중에 가장 유명한 게 매드맥스 시리즈죠.

근데 뭐 [매드맥스] 1편을 보면 이게 디스토피아인지 포스트아포칼립스인지 잘 표도 안납니다. 그냥 경찰관이 폭주족을 소탕하는 이야기잖아요. 배경그림이 상당히 썰렁해서 그렇지...

이렇게 황량한 그림이 나오게 된 건 만든 사람들이 가난했던 탓도 있습니다. 돈이 없어서 암것도 없는 황무지에서 찍은 거죠. 그래서 때려 박을 다른 옵젝트가 없으니 자동차끼리 서로 때려박도록 만든 듯...
어쨌든 영화속 세상은 연료위기가 계속되어서 사회체계가 무너지고 치안이 개판된 사회입니다. 영화속 폭주족들도 석유위기 때 봤던 차 가진 사람들의 아우성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고...
그치만 없는 돈으로 겨우 만들어낸 황량한 풍경이 아주 그럴싸했고 이게 아예 이 시리즈를 대표하는 이미지가 되었습니다.

1편이 초!대박을 치면서 자금이 좀 풍부해지자 2편은 본격적으로 막장이된 세상을 그립니다. 오프닝 나레이션에서 두개의 큰 부족들이 '검은 연료'를 두고 쟁탈전을 벌이다가 세상이 맛이가게 되었다고 친절히 설명해주죠. 그리고 이제 그 연료는 한줌밖에 안남아서 그걸 두고 사람들이 미쳐서 쟁탈전을 벌입니다.

여기서 사람들은 이게 미소의 핵전쟁을 의미하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시절엔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했죠. 그렇지만 정작 영화를 보면 핵피해 같은 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아무도 방사능, 오염같은 건 걱정도 안하고, 오로지 연료에만 집착할 뿐입니다. 그래서, 핵전쟁이 있었는가의 여부를 두고 논쟁도 있었습니다.(현재의 설정으로는 핵전쟁이 일어났다는 게 오피셜인것 같습니다)

[썬더돔]은 한줌 남았던 석유까지 다 말라버린 시대가 배경입니다. 맥스도 차를 굴릴 기름이 없어서 낙타를 동력원으로 쓰고 있고, 맥스가 십수년만에 처음 보는 문명사회였다는 바터타운에서는 기름 대신 대체에너지를 개발해서 차를 굴리고 있습니다.
그 대체에너지의 공급권을 쥐고 있는 마스터블라스터는 자신을 '아랍의 왕'이라고 부르면서 자기가 없으면 바터타운이 돌아가지 않는다고 큰소리를 칩니다. 이 시리즈의 근본이 석유위기였다는 걸 혹시 사람들이 잊었을까봐 다시 상기시키죠.

글구 이 3편에서 비로소 핵전쟁의 여파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바터타운 입구에서 물장수가 팔고있는 '깨끗한 물'에 맥스가 가이거 계수기를 들이대자 요란하게 드르륵거리는 소리가 나는 걸로 세상이 방사능에 오염되어 있다는 걸 맛보기로 보여주고, 혹시 가이거 계수기가 뭔지 모르는 관객들을 위해서 영화 후반부에 전쟁 후 생존자들의 친목모임이 등장합니다.

그치만 여전히, 핵의 흔적은 그닥 보이지 않죠. 피폭증상을 보이는 사람은 없고, 그런 걱정도 안합니다. 물장수와의 에피소드는 개그장면으로 지나가고요.
이번에도 사람들이 집착하는 건 연료ㅂ니다. 그외 다른 건 딱히 부족해보이지도 않아요. 바터타운에는 없는게 없는 것 같고, 대량으로 가축을 사육하는 여유도 있습니다. 거기다, 아주 소중한 자원일 말 한마리를 사람 한명 추방하는데 그냥 소모해버릴 정도로 대범한 소비를 하죠.
아이들이 살고있던 곳도 물 풍부하고 걔내들이 먹고사는데 지장이 있었던 걸로는 안보입니다. 애들이 사냥도구를 들고다닌다는 건 사냥감이 있었다는 말이겠죠.

그리고나서 30년이나 지나서 나온 4편...
멜깁슨이 요주의인물로 찍히는 바람에 어쩔수 없는 배우교체로 맥스가 환동해버렸죠. 그로인한 어쩔수 없는 시간대재조정과 소프트 리부트가 있었습니다.(007처럼, 동일인물이고 사건이 연결되긴 하지만 세월이 흘러 젊은 배우로 바뀌면서 세부 디테일이 달라지는 식으로...)
그렇게 나온 [분노의 도로]에는 30년간 바뀐 세계정세도 반영이 된 게 보입니다.


오프닝에서 서라운드로 극장안을 날아다니는 사람들의 절규를 통해서 대략적인 역사를 알려줍니다.
우선 연료쟁탈전쟁이 있었고, 그다음 물쟁탈전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서 핵전쟁([퓨리오사]에서 히스토리맨이 전쟁의 역사를 정리해주면서 3국핵전쟁이라고 이야기합니다)발발. 이렇게 3연속 콤보를 맞고 세상이 대충 망했습니다. 이중에 다른 두 전쟁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은데 물전쟁이 어떤 거였는지는 아직은 알수 없네요.

시계열을 따지게 되면 아주 복잡해지니까 관두고, 어쨌거나 [썬더돔] 이후의 세계입니다. 그것도 몇년 지나지 않은...

[분도의 도로]는 핵전쟁 이후 피폐해진 세상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방사능의 피해가 이제야 본격적으로 드러나서 암에 걸린 사람들과 돌연변이들이 도처에 나타났고, 전작들에선 막장인 세상속에서도 비교적 풍족한 처지에 있던 사람들 위주로 나왔지만 이번에 처음으로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의 끔찍한 삶도 보여집니다.
그렇지만 정작 또 세상이 그렇게까지 막장은 아닌게, 주인공들을 비롯해 핵에 아무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들(full-life)도 존재하고 이 사람들이 혹시나 방사능에 오염되어 half-life가 되지 않을까 주의하는 모습같은 건 나오지 않습니다. 이사람들을 실질적으로 위협하는건 방사능 피폭이 아니라 사막화인 것 같습니다. 물전쟁과 사막화. 그동안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미래의 위협이 핵전쟁에서 환경문제로 넘어갔다는 걸 반영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분노]를 보면 매드맥스 시리즈가 이제는 석유파동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삼부작이 제작될 때만 해도 석유위기가 아직 사람들 기억속에서 생생할 때였지만 지금은 역사책에서나 볼 수 있는 사건이니까요.

그동안 계속되었던 기름 부족의 속박에서 벗어났습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연료를 빼앗으려고 싸우고는 있지만 더이상 절박하지 않아요. 2,3편에서는 정말로 없어서, 조금이라도 남은 걸 어떻게든 확보하려고 용쓰던 거지만, 4편에서는 그냥 내 수중에 없으니까 남의 걸 빼앗아 쓰는 겁니다.
가스타운이라는 게 설정되면서 이제 연료는 거의 무한정으로 쓸수 있게된 걸로 보입니다.

70년대에는 과학자들이 21세기가 되면 화석연료가 고갈될 거라고 경고했었죠. 하지만 실제로는 탐사방법과 채굴방법이 발전하고 에너지를 쓰는 방식도 바뀌면서 당시 예상했던 것보다 더 오래뽑아먹을 수 있다는걸 알게되었고 2024년 현재에도 사람들이 석유가 오늘내일 고갈되버리지 않을까하고 걱정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내차에 넣을 기름값이 나날이 비싸지고 있을 뿐이죠. 그게 반영되어 기름이 풍부하게 묻힌곳-가스타운을 새로 발견했다는 설정이 생겨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시타델 주변은 자원이 풍족한 곳입니다. 몇몇 자원은 남아돌 정도로 있지만 이걸 독재자가 독점해서 측근들하고만 나눠먹고 있기 때문에 그외 다수의 사람들이 거지꼴로 살아가는 곳. 그러니 여기는 자원이 없지는 않지만 제대로 분배가 되지 않는 세상입니다.

[퓨리오사]에 이르면 방사능은 아예 걱정밖인 것처럼 보이고(더 앞 이야기이긴 하지만 영화 뒷 부분은 [분노]와 몇년 차이도 안나는데다 half-life가 넘쳐나던 시타델과 달리 더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한 디멘투스 무리는 그런걸로 고민하지는 않아보입니다.) 시타델 바깥 세상도 그닥 부족한 세상처럼 보이지 않게됩니다.
[퓨리오사]는 시리즈중 가장 스케일이 커져서 무려 일천대의 바이크를 보유한 갱단이 나옵니다.
천대의 바이크(숫자를 과장해서 말했을 수 있지만 기존 영화들과는 차원이 다른 대규모의 무리인 건 분명합니다)가 황무지에서 몇년을 싸돌아다닐 수 있다면 이건 절대로 연료가 부족한 세상이 아닌거죠. 연료는 그냥 지금 내손에 없을뿐 어딘가에 있는겁니다. 석유위기의 시대가 지나간 거죠.

거기다 그런 거대한 무리가 오래도록 황무지를 돌아다니면서 심각한 물자 부족을 겪었다는 징후도 없습니다. 그랬음 와해되었겠죠. 그니까 뭐가되었건 부족한 세상은 아닌 거죠. 이 세상은 자원이 풍족하진 않더라도 사람들이 먹고사는데 부족하지는 않을 정도로는 제공이 되는 곳이고, 없는 게 아니라 자원 채취하기가 어려운 세상, 그 흩어진 자원을 바이크갱들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조금씩 채집해서 먹고살고있는 세상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사회시스템이 없어서 있는 자원도 제대로 못뽑아먹고 있는 세상이 아닌가 싶은...

글구 여기 사람들이 대파국 이후의 심각한 물자부족에 시달리는 걸로 보이지 않는 중대한 이유는, 낭비벽이 심하다는 거...
[퓨리오사]는 파국이후 45년이 지난 뒤 시작하는 이야기라고 예고편에서 밝히고 있고, [분노]는 거기서 약 20년 후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이미 6-70년 가까운 세월을, 대부분 사람들은 태어났을때부터 평생을 모든게 부족한 세상에 살아왔을테고 자연히 살아가는 모든 행동에 절약이 배어있을 겁니다. 근데, 물이건 기름이건 총알이건 (2,3편에서 기름못지 않게 부족했던게 총알이었습니다. 그래서 냉병기가 애용되었죠.) 별것 아닌 일에 펑펑 써대요. 그냥 과시용으로. 기분내기용으로. 시타델이야 물자가 풍족하니 그럴 여유가 있다고 볼수도 있겠지만 사막에서 떠돌던 디멘터스 패거리도 별 다르지 않아서...

매드맥스의 세계는 참 이상한 곳입니다.
문명이 붕괴되고 전부다 박살났다는데도 희한하게 내연기관만큼은 남아돌아 거의 1인1차가 실현되어 있고, 다른건 다 실전되었어도 차량을 보수하고 튜닝하는 기술만은 날로 발전합니다. 핵전쟁후의 피폐한 세상이라지만 황막한 사막에서도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건 또 다 있는 것 같고, 방사능의 피해도 주인공들만 피해가는...

이 시리즈가 현실세계에서의 실제로 벌어졌던 자동차의 연료부족에서 시작되었고, 첫작품에서부터 내연기관끼리 때려박는 영화라는 정체성이 박혔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반드시 차는 나와야한다는 전제를 깔아두고 거기에 대파국을 끼워맞춘 거라서 이렇게 밸런스가 안맞는 세상이 나와버린 것일겁니다.
그래도 1-2-3편으로 진행되는 동안에는 나름의 논리적인 흐름은 있었죠.
어느정도는 멀쩡한 세상->기름이 고갈되어 극도로 부족한 세상->기름이 다 떨어져서 대체연료를 쓰는 세상.
그렇게 계속 가다가 4편 이후로는 꺼꾸로 총알과 기름이 넘쳐나서 펑펑 써대는 세상이 된거예요.

30년이나 지나면서 다시 이야기를 만들게되니 그동안 세상도 변하고 만드는 사람 생각도 변하고...

지금은 그냥 적당히 망한 세상같다는 분위기 속에서 내연기관이 질주할 수만 있으면 아무래도 상관없는 이야기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예 뭐... 매드맥스니까요. 정말로 다 부족하고 오염되서 자동차도 마음대로 타고 돌아다니지 못하게 되면 더이상 매드맥스가 아닌 거니까...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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