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베일]

2023.11.30 14:54

thoma 조회 수:152

서머싯 몸의 소설 [인생의 베일]을 읽었어요. 

기대한 방향과 좀 달랐고 작가의 유명세에 비해 기대를 채워 주진 않았어요. 재미는 있습니다! 제 기대와 달랐다는 말씀.

아래 내용이 나옵니다.

 

1920년대 홍콩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하게 된 '키티'라는 여성의 성장 소설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이 소설에 나오는 중심인물 세 명 중에 내면의 생각과 그 변화를 따라가 보게 하는 인물은 키티 한 사람이고요, 남편 월터의 성격이나 인간됨은 키티의 눈에 비친 모습이나 키티와의 대화를 통해 드러나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을 뿐이고 불륜 상대인 찰스는 보이는 것이 전부라 내면이랄 것이 없어요. 따라서 인물 사이에 일어나는 화학 반응으로써 인물이 성장하는 드라마는 아니라고 봤네요. 

이야기 전달자가 외부에 있습니다만 사실상 1인칭 주인공 시선으로 전개됩니다. 키티, 그녀,라고 지칭되어 있으나 이야기는 키티만을 따라가고 외부 세계는 그녀의 시선을 통해서 전달돼요. 내용 전개가 1인칭 주인공 시점에 가까운데 표면적으로 3인칭 시점을 취한 것은 키티의 성격적 가벼움과 천박함을 객관적으로 드러낼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하겠죠. 키티가 맺는 가족 비롯 주변 인물과 관계의 부실함을 키티 본인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자세히 그릴 필요없고 거리감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도 있겠네요. 시점에 있어 이런 의도를 생각해 보았으나 한편으로는 남편인 월터를 깊이 다루지 않은 것은 아쉬웠어요. 생각해 보면 3인칭이면서 실질 1인칭으로 전개하였다는 것은 작가가 인물들의 내면을 '조금만' 다루겠다는 의도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결과는 그렇게 된 것 같아요. 


키티가 변화하고 성숙하게 되는 장치들도 무척 도구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던데요. 키티는 월터에게 불륜을 들키고 찰스의 본색을 확인합니다. 이후에 냉혹하고 자기파괴적인 월터의 결정으로 콜레라가 창궐하는 중국의 농촌 지역에 끌려가듯이 가게 되고, 그곳에서 일생을 헌신하는 프랑스 수녀들을 만나게 되고, 그곳의 자연에 감화받아요. 이국에 이국을 더하며 생경함에 생경함을 더하는 극단적인 외적 조건들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 경험은 단 두세 달 지속되는데 키티는 무척 변화하는 것 같이 보입니다. 사람이 그렇게 금방 변화할 수는 없다는 것을 홍콩에 돌아온 키티를 통해 작가가 지적하고 있기는 합니다. 이 부분도 불평을 조금 하자면 이런식으로, 키티의 이런 충동적 욕구에 끌리는 행동(찰스와 다시 관계함)을 통해 변화가 어려운 인간의 나약함을 보여 준다면 앞서 농촌에서의 장면들에 신뢰가 많이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변화는 쉽지 않고 이런저런 굴곡을 거치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정반합의 되풀이로 단련되어 간다, 라는 면도 있겠으나... 그래봤자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할 뿐이라는 김빠지는 장면이라는 느낌도 있었습니다. 소설의 끝에 가까워 인물의 다음 행보를 충분히 확인할 수 없어 그렇기도 합니다.


1920년대 영국인이었다면 이국에서의 사건을 다룬 이 책이  많이 흥미로웠을까요. 어쩐지 저에게는 몸의 소설이 그가 속한 계급을 옹호하는 내용으로 다가옵니다. [면도날]에 이어 다시 서머싯 몸의 책을 시도한 것은 조지 오웰의 언급 때문이었는데...아쉽네요. 서머싯 몸은 일반적인 높은 평가와 제 생각이 갈라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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