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1.08 18:25
1.
제대 며칠 전 소대원 다 모여서 송별다과회를 하고 있는데 상병 하나와 일병 하나가 막 울었습니다
나같은 천사고참이 제대를 하고 악마고참이 왕고를 달아 그런가보다 하고 내가 군생활 잘 했나 보구나 하고 그 때는 생각했었죠
몇 년이 지나 우연히 그 때 일이 다시 생각이 나더군요, 아무래도 좀 잊기 힘든 기억이다 보니 때때로 생각나기도 하고 했는데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다시 한 번 생각해보니 울던 후임병들 둘 다 저랑 악연이 좀 있었다는 게 기억났습니다.
하나는 훈련 때 낙오하면서 제가 살 빼라고 엄청 갈궜었고,
다른 하나는 제 딴에는 장난이었는데 여자 소개시켜달라고 툭하면 그랬죠, 짬밥차이가 아버지군번도 더 됐는데 스트레스 많이 받았겠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 둘 다 힘들었나 보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아서 울기까지 하구
여러가지 군대에서 거지같은 경험들 하고 오지만 가장 무서운 것중 하나는 이런 거겠죠,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된다는 것
2.
요즘엔 이력서를 볼 일이 많습니다.
그 중에 한 장을 꺼내서 꼼꼼하게 적혀있는 항목들을 하나씩 봅니다
사진이 있고, 생년월일이 있고, 학력기재란이 있고, 경력사항이 있고, 출신지와 현재주소도 있고, 자기소개서도 있고 뭐 그렇습니다.
그 이력서에 적힌 상황들을 가지고 그 사람의 사진을 들여다보며 제 경험에 빗대어 그 사람에 대한 선입견을 내립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쓴 자기소개서류의 글들을 봅니다.
자기소개서에는 똑같은 사람이 아무도 없지만
이력서에는 대충 3-4부류의 사람만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 하나하나의 기호와 취미는 모두 다르겠지만 그걸 제가 알 수는 없는 거고 알 필요도 없는 거겠죠
가끔 가다 실제 면접에서 이력서를 본 선입견과 다른 만남을 갖기도 하지만 그게 꼭 좋은 결과로 흐르는 건 또 아니더군요
이력서에 적인 인생 이외에 또 무엇이 우리에게 있을까요? 있다고 해도 누가 그걸 알아줄까요...................
(정상적인)가족, (정상적인)친구, (정상적인)동료...
주변에, 이력서 글귀 말고 마디처럼 박힌 숨은 내용을 더듬어 줄 사람들 많을겁니다.
이력 밑으로 숨은 인생이 가볍게 여겨지는 경우는 오히려 그 이력서를 낼 때 뿐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