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심이 투철한 공무원들

2010.12.28 23:33

와구미 조회 수:3331

전에 관공서에서 사용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한 적이 있었습니다. 프로그램 화면중에 날짜를 입력하는 부분 있는데 키보드로 직접 입력할 수도 있고 달력 아이콘을 클릭하면 달력 모양의 팝업이 떠서 그것을 이용하여 입력할 수도 있게 되어 있었죠. 웹 화면에서도 많이 보셨을겁니다. 그런데 팝업 달력이 일반적인 달력모양과 달리 '일월화수목금토'가 아닌 '월화수목금토일'의 형태로 되어 있었습니다. 아무도 그것에 별달리 신경쓰지 않았지만 신경쓰는 공무원이 한 명 있더군요.

하루는 회사 게시판에 요구사항이 올라왔는데 그 내용이 세속국가에서 살고 있는 평범한 사람이 보기에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이었습니다.

"그런 형태의 달력은 절대 사용할 수 없다. 그런 달력은 어디의 무슨 이교도들이 사용하는 이단적인 달력이다. 신성한 '주일'이 어떻게 가장 마지막에 올 수 있나. 당장 프로그램을 수정해 달라"

수정이야 얼마든지 해줄 수 있지만 세속국가에서, 종교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에, 특정 종교에 근거하여 무언가를 요구하는 건 상식적으로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기독교 입장에서나 이교도이고 이단이지, 타 종교나 비종교인의 입장에서 보면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립니까. 생각 같아서는 수정이고 뭐고 당장 반박하는 내용의 답변을 달고 싶었지만 저쪽은 고객이기도 하고, 저는 개인이 아닌 회사에 속한 사람이기 때문에 차마 그러진 못하고 그냥 수정해주고 말았던 적이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저는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요구냐며 툴툴대고 있는데 다른 동료가 그냥 수정해주더군요.


아래 포항시 관공서 봉투 사건을 보니 문득 생각이 나는군요. 하여간 대한민국이 국교가 없는 나라라는 것을 잊어버린 공무원들이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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