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27 02:08
* 이 글은 무려 십여 년 전 무대 캣츠를 본 경험과 오늘 본 영화 캣츠의 비교임을 밝힙니다.
과거 경험이 미화되었고 꽤나 보수적일 수 있어요. *
무시무시한 소문들을 들으며
1 언캐니밸리를 잘못 건드렸나보다 (폴라익스프레스 시절도 아니고 대체 왜?)
2 무대와 스크린의 매체 차이를 간과했나보다 (그 전문가들이 대체 왜?)
라는 생각을 했는데,
3 그냥 연출 자체도 못 했을 줄은 몰랐네요. (그 전문가들이 대체대체 왜왜?)
ㅎㅎ
1.
전 인간 배우의 고양이화에 대한 기괴함은 없었어요. (잘 못 해서 민망하긴 했고요)
바퀴벌레 씬도 눈을 움찔 움찔하긴 했지만, 미리 들은 바가 있어서 아마 덜 놀란 것 같아요. 그 씬 자체가 '흉측한 거지만 흉측하지 않은 척하기'가 의도이기도 하고... (그러나 의도만 보이고 매력은 없어서 역시 조금 뻘쭘..)
위에 언급한 2,3의 문제(?)가 가장 크다고 생각해요.
2-1.
연극, 뮤지컬과 같은 무대 vs 스크린의 어법이 여러 가지가 다르지만,
그중 하나가 무대는 마법, 영화는 리얼 이라고 생각해요.
쉬운 예로 무대에서는
작은 네모 상자 하나를 이제부터 의자라고 합시다, 하면 의자도 되고, 집도 되고, 강아지도 되고, 등등
밥 먹는 장면에서 빈 밥그릇만 달그락거려도 이건 밥 먹는 씬이다,라는 약속이 있죠. (심지어 밥그릇이 없어도)
무대(연극, 뮤지컬)에선, 가짜를 진짜라고 믿자는 약속과 마법이 있고, 그것에 참여하는 게 관객의 재미 중 하나예요.
하지만 영화에서 빈 밥그릇을 달그락거리며 밥을 먹는다고 하면
ㅋㅋㅋㅋ
무대 매체의 캣츠는
‘우리 눈에 보이는 건 사람이지만, 이제부터 고양이라고 믿기로 합시다, 레드썬!’이라고 외친 후 다 같이 약속하고 즐기는 놀이입니다. 유희적이고, 지능적인 놀이죠. 거기에서 사람과 고양이의 경계를 왔다 갔다 하는 건 그 놀이의 일부예요. 사람인데 고양이인 척하기로 하기, 라는, 속이고 속는 척하는 약속을 확인하는 암묵적인 (그래서 더 짜릿한) 신호죠.
그리고 무대 위의 배우는 (아무리 무대기술의 혜택을 받는다 한들) 인간의 한계를 넘을 수 없는 게 당연하고, 관객들도 그 이상을 기대하지 않아요. 그들이 너무 사람인 걸 알기 때문에, 사람이 아니란 걸 ‘믿기로 하자’는 재미가 있는 거고, 그렇기 때문에 작은 노력(작다고 하기엔 원작의 안무는 너무나너무나 훌륭하지만요)에도 불구하고 관객은 그 약속에 참여할 의사가 생깁니다.
하지만 스크린의 밥그릇은 진짜 밥그릇이어야 할 필요가 있고,
인간이 고양이인 척하고 나온다고 하면, 얼마나 실제 고양이 같을까? 라는 걸 기대하게 돼요. 더군다나 CG시대의 스크린 속 배우는 인간의 한계를 오억만 배는 뛰어넘을 것이라는 기대가 생기는 게 당연하죠. CG를 배제하기로 한 컨셉의 영화도 아니었고. 오히려 뿌려대기로 한 영화였고.
매체의 차이 때문에,
같은 동작을 해도, 무대 언어에선 넘어가지는 것들이
영화 언어에선 절대 그 마법이 걸리지 않아요.
CG의 기술을 믿었던 걸까요? 그럼 이제 그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볼까요.
2-2.
배우들의 몸에 붙은 털들이 이상해 보였다거나 하진 않았어요. 새로운 생명체인 것처럼 얼굴과 털은 아주 잘 붙어있었다고 생각해요. 그건 자연스러웠다고.
그게 고양이처럼 보였다는 말은 아니라는 게 문제지만.
그리고 그건 큰 문제고요!
문제는 그들의 움직임인데, 이건 연출과 관련해서 이야기할래요.
3.
무대 캣츠는 고양이를 너무 사랑하고 신비하게 여겨서, 그 멋진 고양이가 되고 싶은 인간 같았고(의묘화),
영화 캣츠는 인간이 너무 훌륭하기에 고양이들도 인간이 되고 싶어 하는, '인간을 따라 하는 고양이를 표현하는 인간'같았어요.(의인화)
첫 곡인 젤리클 송은 고양이들이 스스로의 타고난 훌륭함과 존귀함을 오만할 정도로 드러내는 곡이고, 그걸 몸으로 표현하며 관객을 홀리죠. (무대의 마법을 빌어서)
그런데 영화에서의 젤리클 송은 뭐랄까...뒷골목에 살지만 우린 우리의 리그가 있어 라며 자족...인간이 되지 못해 고양이가 된 존재들 같달까요. 인간이 되지 못해서 고양이가 되는 벌을 받은 것 같은 느낌..... (고양이님에 대한 엄청난 모욕!)
어째서 무대의 움직임보다도 더 움직임도 노래도 둔한 건지. 제작진이 포착한 고양이의 호흡은 뭘까. 싶어요.
인간 신체가 고양이를 완벽히 담아내거나 뛰어넘지 못하는 건 당연하고, 그걸 CG로 만들어줄 순 없었던 건가! (그렇게 언캐니밸리를 피하려 했던 걸까요? 근데 그럴 거면 왜 이런 기획을?)
CG력을 털 만드는 데에만 다 썼던 거면
그러면 캣츠 화보를 찍지 왜 움직임 영화를 만들었지 (움짤만 하든가)
그리고, 고양이를 그리면서 이렇게 편집 리듬이 날렵하지 못하고 둔탁해도 되는 건가...
철도 고양이와 마법사 고양이의 CG에는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거죠. 스케치만 해놓고 CG를 안 입힌 게 아닌가...
캣츠 뮤지컬 자체가 서사보다 컨셉 뮤지컬이고, 고양이들의 여러 모습을 찬미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좀 더 실험적이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아요. 그런 모험은 당연히 하기 힘들었겠지만.
고양이들의 세계가 더 멋지게 보였으면 좋았을 텐데.
배우들도 겨우 이 정도 CG가 붙을 거라곤 상상 못 했겠죠?
3-1.
그런 점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씬은 나이 든 극장 고양이 거스의 씬.
왜냐면 그 씬은 정말로 고양이의 모습을 한 인간의 삶을 이야기하니까요.
너무 인간같아 보이는 이 영화에 잘 어울리는 부분이죠. (극장에선 너무 고양이같은 인간이 그 얘기를 해서 마음이 흔들리는데, 여기선 다른 이유로.)
3-1-1.
거스의 움직임에 고양이스러우려는 억지가 없었기 때문에 + 그 몸도 옷으로 감췄고 + 털도 노인의 수염처럼 보여서
그랬을지도.
4.
그럼에도 불구하고 캣츠가 불호 망작이냐?
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다만 재미는 없을 수 있을 듯요.
전 사운드가 고르지 못한 극장에서 봤는데, 엔딩크레딧 때 가운데 쪽 빈자리로 옮겨보니 소리가 좀 더 좋긴 해서, 제대로 못 즐긴 게 아쉽더라고요.
이왕이면 사운드라도 즐길 수 있는 극장을 택하시길 추천드려요.
5. 매체 차이 이야기에 덧붙여서,
그래서 저는 뮤지컬 영화에 쉽게 몰입하지 못해요.
말하다가 갑자기 노래를 한다는 마법이, 연극적 언어의 연장으로 무대에선 자연스럽지만, 영화에선 아무래도 어색하더라구요.
사운드 스케이프가 갑자기 플랫하게 꽉 막히는 것도 답답하고.
그래서 아예 가상의 세계인 애니메이션 뮤지컬은 좀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레미제라블처럼 현장 녹음한 것도 덜 어색하긴 했는데
라라랜드 같은 건 사실 노래 시작할 때마다 그 부자연스러움에 손끝이 저릿해요.
2019.12.27 03:47
2019.12.27 05:51
2019.12.27 12:16
"라라랜드"에 열광했던 사람은 아니지만 오프닝 신을 영화관에서 봤다면 저도 엄청나게 감탄했을거에요.
2019.12.27 08:43
"언캐니밸리"를 건드린다는게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네요. 제가 용어를 몰라서요;;
동생이 "캣츠" 오리지널팀이 내한공연했을 때 보고 너무 감동을 해서
뉴욕에 가서 보고 싶다고 했을 정도라서 저도 "캣츠"가 굉장히 훌륭한 뮤지컬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영화로 넘어와서 역사에 남을만큼 망했구나 싶어요.
2019.12.27 10:09
실제와 꽤 닮긴 하지만 미묘하게 다를 때 느껴지는 불쾌한 감정입니다. 안드로이드 로봇을 볼때 느껴지는 이질감이라든지, 애들이 폴라익스프레스 보고 많이 울었다는 이야기 같은 경우요. https://i.imgur.com/1LPxl9G.png
2019.12.27 09:17
저는 뮤지컬 무대도 좋아하고 영화도 좋아하는데
뮤지컬을 영화로 표한하는 데에 대한 장점도 있다고 생각해요.
특히 노래하는 사람의 미세한 감정표현까지 잡아주는 클로즈업이 무대로는 느낄 수 없는 부분이죠.
레미제라블에서 앤 해서웨이와 사만다 바스크의 솔로곡들과 그 장면들에서의 클로즈업이 특히 좋았습니다.
캣츠는 원작도 안봐서..사실 기대도 없고 평이 워낙 괴랄하다는 분위기이니 보기가 꺼려지네요ㅎ 그나마 음향시설 좋은 영화관에서나 볼만한 가치가 있을 것 같긴 한데..
라이언킹이랑 비교한 이야기도 꽤 있던데, 저는 라이언킹의 경우 평을 박하게 받은 게 불쾌한 골짜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전반적으로 새로울 게 없는 내용이라 그런 것 같다고 이해했고, 동물들에 대한 표현 자체는 그냥 귀여웠어요ㅎ 그래서 차라리 캣츠도 그냥 실제 고양이들로 묘사했으면 어땠을지..ㅎㅎ
2019.12.27 11:11
2019.12.27 12:14
"라이언 킹"은 저는 실사가 더 마음에 들었는데요. 아들이 왕위계승을 한다는 설정 자체가 마음에 안들어서
그렇지 실사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어요. "방구석 1열"에서 말한 것처럼 사자가 성량 과시하면서 노래를 하는 모습 정도가 언캐니벨리하다고 볼 수 있겠지만 전체적으로는 잘 만들었죠.
2019.12.27 10:28
좋은 글 감사합니다 ^^
뮤지컬 영화에서 갑자기 말하다가 갑자기 노래하는 건 제게 장르적 즐거움이나 웃긴 포인트인 것 같아요. 그래서 미드 크엑걸처럼 코미디에서 더 잘 어울리는 것 같고, 너무 진지하면 저한테도 어색할 때가 있어요.
2019.12.27 11:18
2019.12.27 11:00
2019.12.27 11:25
2019.12.27 14:29
저는 <에비타>가 꽤 성공한 뮤지컬의 영화화라고 봅니다.
<캣츠>때문에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만 열심히 듣고 있습니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에비타>로 이어지는 시기의 곡들이 좋아요.
<라이언킹>은 고양이과가 무표정한 편인데 그 무표정한 얼굴에 입만 움직이며 더빙되니 이상했던 기억이 납니다. 나치 필 난다는 학부모들의 항의로 Be prepared 잘라먹다시피 하니 악당이 안 살았어요. 제레미 아이언스는 아무런 연락도 못 받았다고 하더군요. 영화끝나고 원곡 찾아 한동안 무한재생했습니다. 비욘세의 오바육바하는 창법도 겉도는 느낌이었고요. 애니가 동물들의 표정을 좀 더 풍부하게 표현했더군요. 몇 년 전에 3-d개봉할 때 봤는데 실사버전보다도 더 좋았습니다.
2019.12.27 15:45
인간을 따라하는 고양이 인간 캐릭터같이 보인다는 리뷰가 와닿네요. 뮤지컬 영화 중 괜찮게 봤던건 헤어 스프레이와 라라랜드에요. 특히 라라랜드의 오프닝에서는 무대에서의 라이브가 주는 감동에 못잖게 영화의 스케일(오! 헐리우드)에 감탄했던 기억이. 그 군무와 카메라워킹과 음악의 삼위일체라니.
근데 그뿐. 재관람은 안한다죠. 이상 뮤지컬 영화 안좋아하고 원스도 안본 1인이었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