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개에 대한 추억

2010.07.07 15:19

산호초2010 조회 수:2267

개에 대한 애정은 있는데 개고기는 맛있게 먹는 인간들은 도무지 모순이다, 그래도 나한테는 내가 길렀던 개에 대한 애정은 애정이고 개고기가 맛있는건 맛있는 것이고 -개고기 매니아형은 아니고 기회가 돼서 누가 사주면 마다하지 않고 먹는, 그래봐야 1~2년에 한 번?어찌되었든 먹을 때는 맛있다고 먹는 편- 그 두 가지가 같이 가는게 그냥 자연스러운데요. 한편, 경악스럽다,라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지도.

 

한 1년여동안 생후 1~2개월때부터해서 막내 외삼촌댁에 주기 전까지 개를 길렀던 적이 있어요.

'결혼 못하는 남자'에서 상구를 봤을 때 놀란게 우리집 개가 그렇게 비슷하게 윤곽이 또렷하고

깜찍하게 귀여운 치와와 잡종이었거든요. 치와와 대략 3대째 정도의 잡종???

귀염성있게 윤곽 또렷한 얼굴에 똑똑하고 자존심 강하고 약간 성깔있고 엄청 식탐이 강하고

밤에는 발이 안보일 정도로 마루에서 뛰어다니던 엄청 에너지가 넘치던 녀석이었죠.

지금 떠올려봐도 참 내가 좋아하고 눈을 못떼는 귀여움이 있는 녀석이었는데 하는 짓도 귀여웠고 .

개라고 다 좋아하는 편이 아니고 딱 좋아하는 스타일이 있어요. 사이즈도 그 '상구' 사이즈 정도를 귀여워함.

 개라는게 사람만큼이나, 아니면 사람보다 더 감정이 풍부하구나, 시간이 지나면 정말 가족의 일부가 되는거구나라는걸 많이 느꼈죠.

 

강아지때부터 항상 고개를 바짝 치켜들고 도도하게 다녔는데 개도 사람만큼이나 개성이 뚜렷하다는걸 알았어요.

개보다는 여우에 가까울 정도로 눈치가 빨랐어요. 무작정 애교를 떠는 편은 아니고 상당히 자기중심적인 성향이 강한데도

 귀여워서 어쩔 수 없이 마음 약해지게 하는 뭐 그런.... 지금도 기억나는게 원하는게 있으면-주로 음식이었음,,,,

그 엄청난 식탐에도 불구 비만까지 안간건 날라다니던 그 운동량때문이었는지;; 뒤에서 보면 통통한 엉덩이랑 뒷다리가 귀여웠는데요.-

한없이 감정을 가득담은 애절한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약간 눈물이 그렁그렁해 보이기까지)

온 몸을 바르르 떨어주는 놀라운 연기력까지. 지금까지도 그 눈빛은 잊혀지지가 않아요.

세상에 그 어떤 인간도 그런 눈으로 나를 봐준 적이 없는데ㅠ.ㅠ 뭐, 개가 사람을 이렇게 애절하게 쳐다보나 뭐 그런, 상황은 별로 그렇지도 않은데.

 

온 식구들의 귀여움을 받았고 그 당시 화목함과는 정말 거리가 멀었던 집안 분위기를 상당히 화목하게 만들어준 녀석이었어요.

나중에는 도저히 기를 수 없는 상황이라서 막내 외삼촌댁에 줬는데 막내 외삼촌이 워낙 동물을 귀여워하는 편이라서 잘 데리고 있어줬죠.

시간이 지나서 얘의 아들(???)도 데려다 기르고, -지 아빠만큼은 못하더군요. 귀염성도 그렇고 좀 덜 똑똑하고.

내 동생은 엄청 결벽증 환자인데도 불구하고 데리고 자고 온 장판을 물어뜯고 돌아다녀도 같이 동거동락했지만, 나는 그 만큼 그 아들녀석은 귀여워하지 않았죠.

 

우리집에서 떠날 때 나는 안봤어요. 엄마는 엄청 슬퍼했는데, 나는 그 녀석이랑 헤어지고 말했듯이 그 녀석의 아들까지는 길렀지만 다시 개를 기르고 싶지는 않아요.

 어떤 식으로든 잘못되면 너무 마음에 상처가 되는데다가, 어쩌면 개라서 더 마음이 아플 수도 있고. 헤어지는 것도 견디기 힘들고.

만약 어떤 인간이 그 때 우리 개를 납치해서 잡아먹었다면 온 가족이 엄청난 트라우마에 시달렸겠죠. 나는 그 인간을 잡아서 어떻게 해버리고 싶었을 것이고.

 

그 후에 듀게를 보거나 애완견 기르는 사람들을 보고 나는 개를 기르는게 이렇게 많은 에너지와 돈과 신경쓰이는 각종 일들을 동반한다는걸 뒤늦게 알게 되고 놀랐어요.

그래서 더욱 개는 도저히~ 기를 수 없구나,라는 생각이 완전 굳혀짐.

 

그 때는 광견병 주사 맞히고 우리집에서 먹던 음식 중에서 개가 먹을만한 거 주고(닭뼈같은거 주면 안된다는 거 정도는 지켰죠.)

마당에서 길렀는데 그냥 지가 자고 싶은데로 부엌(실내 부엌이 아니라 약간 부뚜막(????)같은 데가 있어서 그 옆에서 웅크리고 자기도 하고,

마루에서 자기도 하고. (신기한게 얘가 가끔 앞 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사람처럼 누워서 자더라구요.) 가끔 산책시켰고, 아직 짝찍기까지는 안했던 시기였고.(아, 수캐였어요. 그래서 손이 더 덜가는 면도 있었겠죠.) 그게 전부였어요. 그래도 신경쓰이는 면도 꽤 있었지만 도무지 다른 애완견기르는 사람들이 쏟는 그 정성과 에너지는 나로서는 상상이 안가는 일이에요. 기르는 기간이 1년밖에 안되서일 수도 있겠지만.

 

모르겠어요. 나중에 혹시(???) 내 애가 있게 되는데 그 아이가 강아지 기르고 싶다고 조르면 상당히 난감하겠구나,라는 생각은 가끔 해요.

 

내가 먹는 개들이 안됐구나, 그런 감정까지 담았으면 못먹었겠지만 나는 그 개들과 아무런 친분이 없잖겠어요.

내가 기르던 송아지, 내가 기르던 돼지, 내가 기르던 닭,,,, 그게 뭐가 되든 내가 정들였던 건 먹을 수도 없고 딴 사람들이 잡아먹는 것도 참을 수 없고 그렇겠지만

 나는 지금까지 안면없는 수많은 닭, 돼지, 소들을 먹었는데 안면없는 개한테도 별다른 생각이 없는 것 뿐이에요. 개를 너무 사랑해서 이 세상의 모든 개먹는 사람들의 행위가 싫다는 사람들의 감정적인 면을 '약간'은 이해도 가지만 개를 먹으면 동물에 대한 애정도 없는 인간이라고 단정짓는건 편견이라는거죠.

 

* 굉장히 이 논쟁에 여러번 끼어들게 되었는데 잘 생각해보면 '애기 안낳는 여자들은 이기적이고 애에 대해서 애정도 부족하고 블라블라'에 열받는 심정하고 비슷하다면

 또~ 이게 꽤 말거리가 되는거겠지만 나한테만은 이게 같은 맥락에서 열이 확 받는 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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