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06 01:04
- 1973년작이니 딱 반 세기 전 영화군요. 런닝타임은 2시간 12분. 스포일러... 랄 게 뭐 있겠습니까만. 최대한 피하며 적고 중요한 건 마지막에 흰 글자로요.
(전설의 그 장면! 입니다만. 영화를 다시 보니 딱 이렇게 보이는 순간은 정말 0.1초 밖에 안 되더군요. 괜히 웃음이 나왔던. ㅋㅋ)
- 이라크에서 유물 발굴하는 신부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합니다. 뭔가 의미심장하면서 아주 안 좋아 보이는 물건 하나를 득템하고는 의미심장하게 어두운 표정으로 의미심장하게 길을 헤매고 뭐 어딜 가고... 하다가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구요. 이 분은 이제 영화 끝나기 30분 전에나 다시 등장하시죠.
그래서 본격적으로 영화가 시작되면 두 가지 이야기가 병행 전개됩니다. 하나는 유명 배우 엄마를 둔 '리건'이라는 어린 소녀가 어느 날부터 아주 의미심장하게 이상해지기 시작하고 결국엔 악마에 빙의된 행동을 보이게 되는 전개구요. 다른 하나는 '카라스'라는 젊은 신부가 자신이 경제 사정 & 신부 일 때문에 돌보지 못한 엄마와 사별하면서 번뇌에 빠지게 되는 전개구요. 당연히 이 둘은 나중에 하나로 합쳐지는데... 시간이 꽤 오래 걸립니다? ㅋㅋㅋ
(번뇌하는 얼굴이 참 잘 어울려서 연기도 되게 잘 해 보였던 우리의 주인공 카라스 신부님. 제이슨 밀러라는 배우님께서 맡았구요.)
- 그러니까 엊그제 '배드 캅'을 보기 위해 그게 있던 유일한 국내 플랫폼인 웨이브에 가입을 했단 말이죠. 분명히 재작년인가 쯤에 가입해서 몇 달 이용했던 기억이 있는데 로그인 안 한지 한참 돼서 그런지 아예 제 정보가 사라졌더라구요? 덕택에 재가입하면서 첫 달 100원 혜택도 받게 되어 즐거웠던 것이고. 그래서 보려던 걸 본 다음에 또 볼만한 게 뭐가 있나... 해서 찾아보니 이게 보이더군요. 넷플릭스에 있을 때 한 번 다시 보려고 생각만 하고 미뤄두다가 결국 내려가 버려서 아쉬웠는데, 이 참에 다시 봤죠 뭐.
당연히 전에 봤던 영화이긴 합니다만. 언제 봤었는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오래 전 일이라 처음 보는 기분으로 즐겁게(?) 봤어요. 망각이란 게 이렇게 좋습니다 여러분!
(출세작 임팩트로 이후 커리어가 망했다... 는 수많은 스토리의 주인공 중 한 분인 린다 블레어. 하지만 뭐 저보단 훨씬 잘 살고 계신 듯하니 됐습니다. 요즘엔 엑소시스트 신작에도 얼굴을 비칠 예정이라 해서 관심을 받고 계시군요.)
- 오랜만에 다시 보니 가장 인상적인 건, 영화의 압도적으로 태평한(...) 페이스입니다. 뭐 요즘에도 천천히 시동 걸면서 분위기와 캐릭터부터 쌓아 가는 호러 영화가 드문 건 아닙니다만. 그 스케일이 달라요. 간단히 말해서 카라스 신부가 리건을 만나는 게 영화가 시작되고 1시간 20분 후의 일이구요. 도입부에 얼굴만 비쳤던 머린 신부가 카라스와 합류해서 엑소시즘을 시작하는 게 영화 끝나기 30분 전, 그러니까 런닝타임이 1시간 40분을 넘긴 후에요. 덧붙여서 그 전설의 엑소시즘 장면은 20분이 채 안 됩니다. ㅋㅋ 나머지는 에필로그가 또 10여분을 잡아 먹죠. 배짱이 대단하지 않습니까? ㅋㅋㅋ
(그러니까 이런 장면 보기까지 한 시간 사십 분이 걸린다는 말씀입니다. 하핫.)
- 일단 원작이 있다 보니 그러기도 했을 것이고. 또 아마도 감독의 성향과 경력의 영향도 컸겠죠. 이 영화가 윌리엄 프리드킨의 대표작으로 취급 받지만 ('프렌치 커넥션'이 어디에서든 언급되는 걸 본지 20년은 넘은 것 같군요) 그렇다고 해서 이 양반이 호러 감독이었던 건 아니잖아요. ㅋㅋ 전형적인 호러 문법 같은 건 좀 옆에다 치워 놓고 걍 차근차근 사실적인 분위기로 이야기를 끌고 가다가 후반에 들어서야 진짜 호러 영화 같은 나오는데. 그런 장면들 조차도 장면의 내용과 상황이 (당시 기준) 쇼킹하고 끔찍해서 그렇지 가만히 보면 그렇게 호러 영화 같은 느낌으로 찍어 놓질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기나긴 도입부의 빌드업이 지금 보니 참 적절하게 잘 먹히더군요. 그러니까... 이상한 얘기지만 좀 쓸 데 없는 디테일이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그 집 집사가 초반에 나치 아니냐고 주정꾼에게 욕 먹다가 시비 붙는 거라든가. 비서 겸 가정부처럼 일하는 샤론이라는 젊은이도 그렇고. 엄마가 영화 촬영하는 장면도 지금 보면 참 스토리와 아무 관련이 없구요. 리건이 병원 다니며 진단과 치료를 시도하는 장면들도 '뭘 이런 것까지?' 싶을 정도로 자세하고 길게 보여주는 부분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런 별로 안 필요해 보이는 디테일들이 자꾸 나오는 게, 보다 보면 이야기에 현실적인 느낌을 더해주더군요. 한참 보다가 '아 이게 실화 기반 영화였던가?' 하고 헷갈렸다니까요. ㅋㅋㅋ
(뭣 때문에 그렇게 부자 집안으로 설정을 했을까... 가 궁금했는데 이 장면에서 '88명의 의사가 실패했는데!'라는 대사가 나오는 걸 보고 납득했어요. 이쯤 되면 어느 깐깐한 관객이라 해도 아 그럼 엑소시즘이라도 해봐야겠네... 하고 납득하지 않았겠습니까. ㅋㅋ)
- 그리고 중요한 건 이 빌드업 파트가 지루하지 않다는 겁니다.
일단 시작부터 리건의 상태가 수상하다는 건 충분히 알려주고요. 적절한 타이밍에 이런 리건 상태에 대한 장면이 짧게 하나 하나 들어가면서 긴장감과 장르적 재미를 만들어 주죠.
덧붙여서 이 빌드업 파트가 참 성의 있다고 느낀 게, 마치 현실 삶에서 이런 일을 겪게 된 보통 사람들이 체험하게 될 과정처럼 짜여져 있습니다.
처음엔 얘가 이혼 스트레스 + 사춘기 때문에 이러는 게 아닐까 의심하죠. 그 다음엔 호르몬 문제 같은 걸 의심하고. 다음엔 뇌 기능 문제를 의심하고. 그 다음엔 아마도 당시로선 최신 아이템이었을 다중 인격 문제 같은 걸 의심하구요. 이런 식으로 리건의 상태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례들을 하나씩 단계별로 들이민 후에 '응 그거 아님' 이라는 식으로 하나씩 치워 버려요. 그러다 보면 결국엔 아 이거 빙의 밖에 없구나. 라는 단계에 다다르게 되고, 이 때부터 리건은 본격적으로 초현실적인 능력들을 발휘하며 호러 파트의 시작을 알립니다. 그러니 관객들 입장에서도 자연스럽게 이 상황에 몰입할 수밖에 없게 되죠.
이렇게 생각하고 보면 후반의 엑소시즘 장면이 짧은 것도 자연스런 귀결이었던 듯 합니다. 결국 이 영화가 제시하는 공포의 근원은 모가지를 360도 돌려서 엑토플라즘을 발사하고, 몸을 뒤집어서 계단에서 스파이더 워킹을 하는 무시무시한(!) 장면들이 아니라 '나에게 가장 가깝고 소중한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악마가 된다면'이라는 상상을 통한 일상 밀착형 공포니까요. 그 퇴치 과정은 그냥 이야기를 맺기 위한 도구 같은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구요.
(우리 사랑스런 금쪽이가!!!)
(자꾸 이상한 개인기를 해요!!! 라는 공포가... ㅋㅋ 지금 보니 사다코나 가야코의 선배가 바로 이 리건 캐릭터였구나 싶기도 하네요.)
- 본격 엑소시즘 장면은 뭐랄까... 솔직히 비슷한 류의 이야기들을 수도 없이 접하고 난 지금 보기엔 참 소박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냥 묶어 놓고 성서 읽고 기도하면서 성수 뿌리는 게 전부니까요. 그 과정에서 악마가 보여주는 각종 진기명기 퍼레이드 역시 수많은 후배 작품들과 아류작들을 통해 훨씬 더 센 걸 많이 봐서 뭐. ㅋㅋㅋ
하지만 그래도 그 장면들이 낡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감독 스타일대로 최대한 건조하게, 기록 영상 같은 느낌 들도록 연출된 장면들이 많아서 그런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엑소시즘 장면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게 리건이 공중 부양을 하고, 신부 둘이서 미친 듯이 같은 말을 반복하며 그걸 내려오게 만드는 장면인데요. 이 장면에선 갑자기 사운드를 거의 다 죽여 버리고 아주 고요하고 적막한 가운데 신부 둘이 외치는 말들만 들립니다. 그런 가운데 천천히 하강하는 리건의 모습을 길게 보여주는데, 이렇게 '강한 연출' 같은 것 없이 걍 실제처럼 보여주는 게 가장 임팩트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 장면 말씀입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멋진 장면이었어요.)
- 물론 두 신부의 드라마도 중요하겠죠. 일단 출연 분량으로 따지면 거의 특별 출연 수준인 머린 신부의 경우엔 언뜻언뜻 스쳐지나가는 디테일들과 막스 폰 시도우의 존재감이 열일을 하구요. (중간중간 괜히 뭔가 있는 듯한 표정을 짓고 의미 심장한 대사를 치는데 그게 뭔진 끝까지 모르겠지만 그냥 있어 보입니다. ㅋㅋㅋ) 카라스 신부의 경우엔 도입부에 제시된 엄마와 관련된 드라마와 그로 인한 신부 본인의 방황이 중심을 잡으면서 마지막의 '그 퇴치법'에 임팩트를 넣어주죠. 소올직히 말해서 이 부분에 대해 뭐 그렇게 막 공감할만한 무언가를 보여줬는가. 라고 묻는다면 글쎄요 그게 좀... 입니다만. 그걸 뭔가 있어 보이게 연출을 잘 했더라구요. 배우님도 연기도 괜찮고 마스크도 번뇌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 분으로 잘 뽑은 것 같고.
하지만 시대가 시대라서 그런지 지금와서 보니 이분들보단 오히려 리건의 엄마 캐릭터가 겪는 고통에 더 눈길이 갑니다. 아직까지도 멀쩡히, 활발하게 활동 중이신 엘런 버스틴이 참 공감 가게 잘 연기해주기도 했구요. 따지고 보면 이 영화에서 가장 고통 받는 분이 이 분이기도 하구요. 결정적으로 이젠 제가 애 키우는 부모이다 보니... (쿨럭;)
(엥? 이런 장면이 있었다고? 라고 당황하신다면 정상입니다. 깜찍하게도 프리드킨옹께서 영화 속 프레임에 이런 걸 미세하게 숨겨 놓으셨다네요.)
- 근데 에... 1973년 영화에 이런 거 따지고 들면 안 되는 건 잘 압니다만. 윌리엄 프리드킨 영화답게 이게 굉장히 또 남자들 이야깁니다. ㅋㅋ 애 엄마의 고통이 강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이 분은 클라이막스의 엑소시즘 장면엔 아예 등장도 못 해요. 게다가 이 분에게 주어진 드라마가 '아빠 없이 엄마가 혼자 애 키우느라 고생'한다는 이야기라는 것도 좀 옛날스럽고. 또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게 결국 엄마도, 딸도 아닌 우리의 고독한 남자 두 분 아니겠습니까. ㅋㅋ 엔딩 장면을 장식하는 캐릭터들도 카라스의 동료 신부와 집념의 형사님 이렇게 두 남자구요.
뭐 이게 이야기에 흠이 된다는 건 아니에요. 그냥 '아 그 감독님 취향 한 번 되게 확고하시네 ㅋㅋㅋ' 라는 정도의 말로 이해해주시면 됩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어도!)
(해결은 우리 싸나이들이!! 라는 느낌과 함께... 이 감독님 이런 사선 구도 참 좋아하신다는 생각도 들구요.)
- 마지막으로 우리 리건, 린다 블레어의 호러 쑈와 무시무시한 악마 연기는요.
솔직히 지금 보기에 이 분이 '연기를 잘 했다'라는 생각은 크게 안 들었습니다. 아니 물론 잘 했는데요, 배우의 연기보단 분장과 연출, 그리고 장면들의 아이디어가 더 큰 역할을 한 게 아닌가 싶었구요. 이 분이 이걸로 이미지가 콱 박혀 버리는 바람에 이후에 비슷한 역할만 계속했다... 라는 것도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그 시절이니까 그랬겠지. 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차피 진짜 계속해서 호러 연기를 해야 하는 후반부엔 늘 분장 두껍게 하고 나와서 배우 얼굴은 인식 불가이기도 하고요.
(이런 귀여운 어린이에게 그런 끔찍한 연기를 시키다니 아동 인권이!! 라는 생각이 21세기엔 조금 들기도 합니다만.)
(어쨌든 촬영장 분위기는 괜찮았던 걸로 마음을 놓아 봅니다. ㅋㅋㅋ)
- 대충 마무리하자면요.
시대를 풍미했던 명감독님이 리즈 시절에 남긴 명작이다. 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구요.
지금 보기에 막 무섭냐! 고 묻는다면 그건 아닙니다만. 그래도 엄마가 겪는 심적 고통에 빙의(...)할 수 있는 상황에서 보니 맘 편히 느긋하게 볼 순 없었고. 또 지금 봐도 꽤 근사해 보이는 장면들이 여럿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뭣보다, 무서운 건 둘째 치고 재미가 있어요. 호러 소재에 대해 사실적인 관점으로 접근하는 스타일은 지금 보기에도 신선한 느낌 들면서 좋았구요.
유일한 단점... 을 찾아보자면 이 영화에 나오는 거의 모든 것이 이젠 하나도 새로울 것 없이 흔하고 식상한 것들이 되어 버렸다는 건데. 이걸 단점이라고 지적할 순 없는 거잖아요. 이게 원조이자 그 익숙함의 근원인데요. ㅋㅋㅋㅋ
그래서 재밌게 잘 봤습니다. 혹시 아직도 안 보셨거나, 혹은 저처럼 기억이 거의 소각된 분들이라면 다시 한 번 보셔도 괜찮을 것 같아요. 지금 봐도 재밌게 잘 만든 호러 영화였습니다. 끝.
+ 근데 우리 카라스 신부님 얼굴이 자꾸 낯이 익게 느껴지는 거에요. 하지만 출연작들을 검색해봐도 딱히 눈에 띄는 건 없고. 그래서 왜 그럴까... 했는데, 배우 바이오그래피를 검색해보니 이 분 아들이 제이슨 패트릭이었네요? ㅋㅋㅋ 왜 '스피드2' 주인공 맡고 왜 키아누 아니냐고 욕 먹으셨던 분 있잖습니까. 지금 다시 사진 찾아보니 확실히 닮았어요. 그래서 익숙했던 걸로.
++ 계속 '사실적'이라고 글을 적고 있지만 사실 중반 이후로는 걍 확실하게 빙의와 퇴마로 흘러가기 때문에 사실적이란 말을 하긴 좀 애매한데요. 그 와중에 좀 재밌는 게, 카라스 신부가 던지는 대사들 중에 애매한 것들이 있거든요. 예를 들어 악마는 결국 카라스 엄마의 결혼 전 성을 모릅니다. 왜 니 힘으로 스스로 줄을 못 푸니? 라는 질문에도 '그런 하찮은 일엔 힘 안 써' 라는 전혀 설득력 없는 대답과 이죽거림으로 넘어가구요. 그러니까 이 '악마'의 능력이 그렇게 전지전능하지 않다는 걸 보여줌과 동시에 '혹시 사아실은 진짜 빙의는 아닌 게 아닐까?' 라는 여지를 살짝 남겨두는데요. 이런 부분들이 막판의 뻔한 전개를 조금은 더 재밌게 만들어줬던 것 같습니다.
+++ 본문에도 적었듯이 영화를 보는 도중에 잠시 '이게 실화 베이스였던가?' 라고 혼동을 했는데요. 그래서 검색을 해 보니 실화는 아니지만 대략 비슷한 느낌의 사례가 있어서 '엑소시스트의 실화 사건!' 이라고 뭔가 신비한 티비 서프라이즈 같은 느낌으로 설명하는 글들이 여럿 있더라구요. 소녀까진 아니고 여대생 한 명이 이 영화의 리건 같은 증상을 보여서 결국 구마 신부들이 출동... 했는데 막 반년을 넘게 엑소시즘을 시전하다 결국 그 여대생이 죽었다구요. 그래서 신부들 과실 아니냐고 재판까지 갔다는데. 신부들이 '아니 정말 빙의 맞다니깐요' 라고 주장하기 위해 증거로 제출했다는 영상들이 유튜브에 올라와 있습니다. 나중에 심심할 때 한 번 틀어볼까 말까 고민을(...)
++++ 근데 이 영화에 나오는 형사님 은근 귀엽지 않으십니까. 일단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방향으로 유능하시기도 하구요. 자기가 찍은 용의자에게 질척거리는 스킬이 웃겨요. 제가 영화 표가 두 장이 있는데 와이프가 오늘 못 가게 돼서 말이죠. 저랑 둘이 영화나 한 편 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ㅋㅋㅋㅋㅋ 처음에 카라스에게 시전할 때도 웃겼는데, 마지막에 카라스 동료에게 똑같은 짓을 또 하니 진짜 웃기더라구요. 그 와중에 영화 사랑은 진심인 것 같아서 더욱.
+++++ 정말로 이 영화의 결말을 모르는데 굳이 영화를 보고픈 맘은 안 생기는 분들을 위한 결말만 초간단 요약 스포일러 구간입니다.
엑소시즘이란 참으로 많은 에너지를 요하는 일인데 말입니다. 불행히도 우리 머린 신부는 이미 나이도 많은 데다가 지병까지 있어서 말이죠. 아직 모자란 카라스 신부가 멘탈이 나가 쉬는 동안 혼자서 엑소시즘을 행하고, 나중에 카라스가 애 엄마와 대화 후 심기일전해서 현장에 재입장하고 보니 이미 쓰러져 사망해 있는 걸로 퇴장입니다. 악마가 뭘 어쨌는지 같은 건 전혀 안 나와요. 힘든 표정으로 기도문 읊다가, 다음 장면엔 그냥 죽어 있는.
우리 의대 나오신 카라스 신부님께선 머린을 살려 보려고 심장을 내려치며 애를 써 보지만 실패하구요. 격분해서 리건을 붙잡아 바닥에 패대기를 치고는 마운팅 포지션으로 막 두들겨 팹니다. 하지만 악마는 껄껄대며 웃을 뿐이고. 그러다 결국 카라스가 외치는 것이 바로 그, 이 영화 이후로 클리셰가 된 악마 퇴치 스킬이죠. "악마 놈아! 리건 대신 나를 가져라!!!" 그리고 진짜로 악마가 자기 몸으로 들어오자 창 밖으로 몸을 날려 자살해 버립니다. 이걸로 악마는 리타이어. 그리고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카라스에게 동료 신부가 달려와 (아니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ㅋㅋ) 손을 잡아 주고는 떠나 보내요.
남은 건 그냥 에필로그입니다. 리건과 엄마는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가구요. 리건은 자기가 빙의 됐을 때의 일을 전혀 기억 못 한다네요. 떠나는 길을 배웅하는 건 마지막에 카라스 손 잡아 준 젊은 동료 신부구요. 둘을 보내고 혼자 걷는 신부에게 불굴의 형사님이 접근해서 또 '영화나 한 편 때리실래요?'라는 드립을 치는데, 생전에 카라스와 똑같이 '누구 나와요?'라고 물어 본 후에 똑같이 '그거 본 영화네요'라고 답한 후 씩 웃으며 걸어가는 신부와, 그를 따라가는 형사의 모습. 그리고 카라스가 자신을 희생할 때 박살낸 2층 리건 방의 창문을 보여주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2023.10.06 02:12
2023.10.06 21:51
제가 본지 오래 되어서 그걸 구분을 전혀 못했지 뭡니까. ㅋㅋㅋ 지금 댓글들 보고 '아 그랬구나!'하고 반성 중입니다.
그렇죠. 반세기 전 오락물이 이렇게 안 지루하고 재밌기가 쉽지 않은데요. 명작 대접 받는 건 다 이유가 있구나 했어요.
2023.10.06 02:23
2001년인가 2002년인가, 무삭제판 개봉했을 당시에, 저는 고등학교 영화감상반에 방과후 클럽활동에 참가해서(원래는 만화반을 들어가려고 했는데, 거기를 맡던 미술교사와 사이가 나빠져서 순전히 딴 걸 골랐던) 생전 안보던 영화들을 보는데, 그중 하나였습니다. 기억으로는 미이라2, 데이빗 핀처의 패닉룸(조디 포스터는 그렇다치고, 크리스틴 스튜어트를 처음 알게 된...남자애로 좀 오인도 한), 몇몇 영화를 봤더랬지요.
그때 아니었으면 그래도 영화를 언젠가 보긴 했겠으나, 오타쿠였겠죠ㅋㅋㅋ 영화 이야기 하자면, 그때도 이런 호러영화는 그냥저냥 보라고 하면 볼 수 있지만, 역시 굳이 찾아서 보는 건 안좋아하는 타입이네요. 무서움 느끼려고 영화본다는 감각자체를 한때는 이해못했으니.
2023.10.06 21:53
영화 감상반이면 인기 동아리 아닙니까. 아무 것도 안 하고 영화 보다 집에 가면 되는! ㅋㅋ
전 무서움에는 사실 거의 관심이 없고 그냥 재미로 호러를 봅니다. 호러만큼 창작자들이 지 멋대로 (물론 상대적으로 ㅋㅋ) 하고 싶은 거 다 해보는 장르도 없는 것 같아서요.
2023.10.06 09:17
저는 엑소시스트 보다 오멘을 더 지지하는 소수파였죠ㅎㅎ
케볘스에서 방송할 때 주인공 이름을 레이건이라고 번역해서 깼었던 적이 있네요.
소재가 된 실제사건은 roland doe라는 남자아이 이야기였습니다. 40년대에 있었던 일이라서 지금이었다면 다르게 해석했을 거라는 의견이 많은듯 합니다.
2023.10.06 21:54
사실 저도 오멘파였습니다. ㅋㅋ 어렸을 때 봐서 그랬는지 그냥 그레고리 팩의 우울 간지도 좋았고 영화를 가득 메우는 종말론적 분위기도 좋았구요. 몇몇 죽음 장면들의 임팩트도 있었고...
하지만 지금 와서 오멘과 엑소시스트의 평가를 비교해 보면 아마 다시 보면 예전처럼 좋아하진 않을 것 같기도 하구요. 확인을 해보고 싶은데 OTT에는 오리지널 오멘이 없네요. 온통 리메이크와 속편들 뿐인데, OTT든 iptv든 이런 쪽으로 좀 괴상해요. 예를 들면 '나이트메어'도 후속편들은 있는데 정작 1편은 없고 뭐 그런 식이에요.
2023.10.06 09:30
2023.10.06 21:55
SNL을 정말 많이 보시는 조성용님!! ㅋㅋㅋ 덕택에 잘 봤습니다. 뭔 말인지 잘 못 알아 들어도 웃겨서 좋네요.
2023.10.06 09:38
2023.10.06 22:01
이미 눈치 채셨겠지만 제가 바로 그 추가판과 원래 극장판을 구분 못 한 사람입니다. ㅋㅋㅋ 너무 오랜만에 봐서 뭐가 추가됐는지 눈치도 못 챘고. 또 말씀대로 스파이더 워크 장면이 원래 영화 속에 나왔던 걸로 기억의 왜곡을 일으키곤 전혀 눈치 못 채고 있었죠. 으하하.
근데 블래티는 정말로 이 이야기에 애착이 강했나봐요. 이것도 제작자로 참여했고 3편은 직접 쓴 속편에다가 감독까지 하고... 그러고도 모자라서 결국 자기 의도 들어간 버전까지 관철해내다니. 진정한 의지의 사나이 같습니다. 하하. 하지만 말씀하신 막판의 신부들 대화 장면은 저도 보면서 '아 뭐 이렇게까지 ㅋㅋ' 라는 생각을 했던 걸로 봐서 원작자보다 워너의 중역이 옳았던 것 같구요.
그리고 언제나처럼 상세한 oldies님 설명을 듣고 있자니 원래 극장판을 다시 보고 싶어지는데, 말씀대로 이게 지금 남은 vod들은 죄다 소리 소문도 별도 표기도 없이 나중 편집 버전으로 대체되어 버린 것 같네요. 음... 아쉽습니다!
2023.10.06 11:02
아무래도 볼 일은 없지만 내용은 궁금한 영화를 알고나니 속이 시원하군요. 그리고 인터넷에 퍼져있던 이미지로 몰랐던 것이 명확하게 나와있어요! 의사들이 모여있는 장면으로 가정되는 영화의 분위기요. 저는 초창부터 그런 대결이 나오고 영화 전체가 '엑소시스트'로 가득찬지 알았더니, 엄청 꼼꼼하게 소거법을 통해 빙의에 도달하는 내용이었군요. 건조하다는 표현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갑니다. 결론도 알게 되어 안 봤지만 더 아는척 하기 좋아졌습니다.
2023.10.06 22:03
저도 오래 전이라지만 그래도 한 번 봤던 영화인데 기억이 정말 깔끔하게 비워져서 '아 이게 원래 이런 영화였나?' 하고 초반엔 좀 당황했어요. ㅋㅋ
사실 그런 '건조한' 장면들을 짤로 많이 넣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스틸샷들은 임팩트 있는 장면들 위주로 채워지다 보니 그런 장면 담은 샷들이 거의 없더라구요. ㅠㅜ
2023.10.06 13:13
2023.10.06 22:04
십자가씬은 정말 그 당시 관객들 입장에선 기겁하고 충격 받고 뇌리에 박힐 수밖에 없는 장면이었던 것 같아요. 이번에 다시 봐도 '와 반세기전에 너무 격하셨네 ㅋㅋ' 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뭐든 오래 가는 서브 장르의 원조격으로 문을 연 작품들은 다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이 영화는 문을 열면서 동시에 닫아 버린 느낌이에요. 이후에 나온 비슷한 이야기들 중에 특별히 여기에다가 완전 새로운 무언가를 추가한 경우가 없지 않나 싶더라구요.
2023.10.06 14:27
dvd에 소개된 실제 사건을 보면 소년이 빙의되었고 몇달에 걸친 퇴마의식 끝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여대생이 퇴마 과정에서 죽음을 맞이한 사건은 별개의 사건으로 '엑소시즘 오브 에밀리 로즈'라는 영화로 제작되었습니다.
해당 사건으로 퇴마의식을 수행했던 신부가 형사처벌을 받았는데 영화만 봐선 충분히 처벌받을 여지가 있어보이더라구요.
스파이더워크 장면은 의외로 원작에도 간단하게 언급되는 부분인데, 악마가 감독 꿈에 나타나서 협박해서 해당 장면을 삭제했단 루머도 있었습니다.
오리지널 버전이 낫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초창기 dvd로만 볼 수 있고 그 이후의 영상매체들은 모두 확장판으로 내보내고 있어 오리지널 버전은 찾아보기가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실화 소개 자료는 극장판 dvd에 포함되어 있고, 서플에 대해서는 한글자막이 지원되지 않아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몇년전 발매된 블루레이 역시 당연히 확장판만 담고 있고 서플에 한글자막도 지원되긴 하는데 새롭게 추가된 서플 자료만 지원됩니다.
영화와는 달리 원작소설에서는 카라스 신부와 악마의 대화 장면이 매우 꽤 길게 묘사됩니다.
리건의 머리를 180도 돌리기도 하고 공중에 띄우기도 하는 악마가 힘을 보여달라는 카라스 신부의 요청을 거절하면서
'그건 천박한 힘의 과시야'라고 하는 대사가 전 제일 맘에 들었습니다. 영화에서도 원작소설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카라스 신부의 어머니와 관련된 내용은 원작소설보다 영화가 오히려 풍성하게 담겨있습니다.
원작소설에서는 정신병원이 아니라 집에서 혼자 살고 계시다가 돌아가신 걸로만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카라스 신부의 친구 역할로 나온 분은 실제 신부였다고 합니다.
원작소설은 1970년대에 이미 우리나라에도 발간됐는데요. 번역자가 무려 '바보들의 행진', '속 별들의 고향' 등을 감독한 하길종 감독입니다.
한동안 절판됐다가 최근에 문학동네에서 40주년 기념판을 새로운 번역으로 발간하였습니다.
잠깐 비교해봤는데 번역도 많이 달라졌고 기존에 없던 프롤로그 부분이 추가되었습니다.
이라크 유물 발굴현장에서의 메린 신부의 모습인데 영화에서 인상적이었는지 새롭게 추가되었네요.
근데 생각해보면 영화상에서 메린 신부의 비중도 크지 않고 딱히 활약상도 없는데 갈수록 진주인공 취급을 받는 것 같네요
2023.10.06 22:10
아, 에밀리 로즈 그 영화 제목도 들어봤어요. 전 영화는 안 봤지만 제가 검색해 본 실제 사건 내용으로는 말씀대로 처벌 받을 여지... 정도가 아니라 처벌 받아 마땅한 수준 같았습니다. 밥도 물도 안 먹이고 계속 엑소시즘을 했다니 멀쩡한 사람이라도 버티기 힘들었을...;
dvd쪽은 몰라도 vod들은 oldies님 댓글 보고 검색해 봤는데 말씀대로 거의 나중 버전으로 대체 되어 버린 것 같더라구요. 오리지널도 좀 남겨 주지 무정한 사람들...;
아. 그 대사가 '그건 천박한 힘의 과시야'라고 하니 악마가 폼이 나 보이네요. 영화에선 - 한국 자막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 정반대로 악마가 좀 없어 보이는 느낌이었거든요. '흥. 내가 시킨다고 시키는대로 할 줄 알았냐?'라고 살짝 삐지는 느낌이라(...)
근데 영화에서도 카라스 엄마가 세상 떠나는 부분은 좀 휙! 하고 벌어져 버려서 살짝 당황스럽긴 했습니다. 중간에 몇 초짜리 짧은 장면이라도 넣어주는 게 자연스럽지 않았을까? 싶었구요.
하길종씨 이름 정말 오랜만에 듣네요. 영화 정말 좋아하던 대학 선배가 자주 얘기했거든요. 이 사람이 살아 있었으면 한국의 스필버그가 되고도 남았을 천재라며... 언젠가 이 분 영화들도 볼 수 있는 건 한 번 찾아서 쭉 보고 싶고 그렇습니다.
그리고 메린 신부는... 솔직히 막스 폰 시도우가 치트키 아니었나 싶습니다. ㅋㅋ 말씀대로 출연 분량은 다 합해서 20분 될까 말까하고 실제로 뭘 해낸 것도 없는데 카라스보다 훨씬 폼이 나고 뭔가 있어 보이고요. 거기에다가 그 조각상 발굴 에피소드 때문에 뭔가 숨겨진 배경 스토리까지 있어 보여서 더더욱 그랬네요.
계단 거꾸로 내려와서 피 토하는 씬이랑 나중에 신부랑 형사의 대화 씬은 디렉터스컷 버전에 넣은 거네요. 옛날 영화이지만 봐도 봐도 조금도 지루하지 않고 명작이란 생각이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