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8.07 13:20
한국 SF 영화가 개봉했을 때, 가능하다면 꼭 극장에 가서 보는 편입니다. 정확하게 뭐라 찝어 말할 수는 없지만 한국 SF 영화가 꾸준히 계속 나왔으면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죠. [더 문]도 마찬가지 오직 그 이유 때문에 보게 되었습니다. 아마 이 영화 장르가 호러나 로코였다면 결코 볼 일 없는 구성이었겠죠.
글 부제로 '한국인이라는 죄'를 붙일까 하다가 내용에만 적기로 했습니다 ㅋㅋ. 너무 어그로성 제목 같아서요. 일단 이 영화에서 때깔은 잘 나왔어요. 달에 도착하기 위한 지구 출발, 달 궤도 진입, 착륙선 분리 후 달 착륙, 달 탐사, 다시 달 이탈 후 궤도선과 도킹 이런 과정들은 그럭저럭 잘 그려져 있고 몇몇 디테일들을 가감하고 보면 CG도 꽤 잘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우주에서 태양을 맨 눈으로 본다던가 - 바로 시력을 잃게 됨 - 고정되지 않은 물품들이 계속 날아다닌다던가 하는게 신경 쓰였지만) 중력 묘사도 열심히 하고, 실제로 앞으로 지어질 루나 게이트웨이의 모습도 열심히 그렸습니다. 과학적 문제해결도 납득 선을 넘진 않았어요. 다만... 한국에서 재난만 일어나면 가상으로 배우들 캐스팅해서 구성하는 (이경영 씨가 마지막에 '진행시켜' 멘트를 하는) 시나리오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게 가장 큰 단점입니다.
[내용있음]을 달아놨으니 내용을 간추려보겠습니다. 한국은 유인 달 탐사 시도 첫 번째에서 실패하고 우주비행사 3명이 죽습니다. 영화 상에서는 두 번째 달 탐사에요. 그러나 달 궤도 진입 직전 태양풍이 불어 우주선에 문제가 생기고 우주선을 고치려고 선외작업을 하던 두 명이 추진체 유출 후 폭발로 사망합니다. 마지막 남은 한 명이 나로 센터의 귀환 명령을 무시하고 달에 착륙해 달을 잠시 조사합니다. 태양풍의 영향이라는 유성우가 몰려오고, 그걸 피해 착륙선으로 달 궤도 진입 후 궤도선 도킹 성공 후 유성우에 맞아 갈갈이 찢겨 달 뒷면으로 떨어지고요. 그 이후 여차저차해서 달 앞면에 도착해 루나 게이트웨이의 미국인들이 구해준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온갖 문제들이 한국인들의 프로세스를 무시한 자의적 선택에 의해 일어납니다. 첫 번째 우주 탐사 참사의 결함을 우주선 설계자가 이미 알고 있었고, 해결을 위해 발사 시점을 2개월 뒤로 밀어달라며 센터장에게 요청했으나 묵살 당합니다. 두 번째 외부 참사도 지구 센터에서 선외 활동을 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자의적으로 결정해서 하다가 두 명이나 사망합니다. 주인공은 첫 번째 우주 탐사 사망자의 아들로, 두 명이 죽었다 하더라도 달 탐사를 계속해야 한다고 억지로 달 진입을 합니다. 루나 게이트웨이의 메인 디렉터 김희애도 사적 감정으로 나사의 기밀 정보를 한국에 흘립니다. 영화 내내 등장인물들의 결정은 시종일관 이런 식입니다.
미국의 우주 탐사 투자는 컬럼비아 우주왕복선 사고로 굉장히 쪼그라들었는데, 한국은 우주선 하나와 세 명의 인재를 잃고도 금방 두 번째 우주선을 준비해 쏘아올린다는 상황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참으로 한국스럽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달 궤도 진입 중 두 명이나 죽었는데도 금방 분위기를 일신해서 달에 착륙하여 첫 발을 내딛을 때 한국 전체가 열광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게 정말 요즘 한국의 멘탈리티를 그대로 보여주는건가 싶었습니다. 첫 번째 참사를 일으켰던 전 센터장을 불러다가 문제를 해결하는데 일을 어떻게 처리했었든 막무가내의 능력주의가 느껴졌습니다. (현 센터장을 너무 핫바지로 만든거 아닙니까?) 기밀을 유출했던 김희애는 마지막에 (아마도) 나사 국장이 됩니다, 그림은 좋았지만 거기까지 가니 혼미스러웠습니다.
한국 영화에서도 [마션]처럼 말끔하게 문제에 봉착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면 안 되는 건가요. 선외 활동은 통신 장치가 망가졌을 때 메뉴얼 상 진행하도록 되어 있었으면 될 일이고, 우주 협회와의 갈등은 외교적으로 해결해줘도 김희애가 일장 연설하는 장면을 넣을 수 있었을 겁니다. 아버지의 유훈 때문에 안전불감증처럼 내려가지 않고, 합리적으로 달에 착륙한 후에 올라오는게 궤도 도킹상 더 유리하다는 설정으로 넣어도 되었을 겁니다. 왜 한국인이라는 원죄로 끝없이 비합리적인 선택으로 인한 고통을 받아야 할까요. 영화 결론으로 갑작스레 한국은 퇴출되었던 우주 협회에 (그런 2차 대참사에도?) 재가입 됩니다. 이런 유아론적 세계관으로 얼마나 더 나아갈 수 있을까 싶습니다. 좀 더 냉철한 SF를 바랍니다.
P. S. 실제 한국은 ... 하고 항우연의 우주탐사계획을 찾아갔는데 홈페이지가 개편되면서 미래 계획을 싹 날려버렸네요? 현재까지의 성과만 있고. 달 탐사 계획이 쭉 있었던 것 같은데 참 놀랍네요. 나로우주센터라는 구체적인 공간이 제시되면서 영화의 현실성은 좀 더 힘을 얻더군요. 월면차의 한국 타이어가 너무 잘 보여서 뿜었습니다. (당연히 협찬)
P. S. 2. 드라마를 부여하기 위해 첫 번째 달 탐사를 끔찍한 실패로 만들었는데, 항우연에게는 정말 악몽같은 설정이지 않나 싶습니다. 심지어 내부 해태로 인한 참사 결과라니. 그리고 내용상 08년생이 27살이던데, 35년에 달탐사 기대해 봐도 되는겁니까.
2023.08.07 13:49
2023.08.07 14:15
앞으로 한 2년 간 케이-력을 수급하지 않아도 잘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옆의 다른 관람객 분은 어떤 성취 장면에서 눈물을 닦아내시더군요. 아직 호소력의 생명이 남아 있는 것일까요?
제가 이 글을 안 썼다면 Sonny 님이 보셨을 거란 말이라면 조금 아쉽군요(?). 좀 더 통렬하고 명확하게 분석한 글을 볼 수 있었을 것 같은데요 ㅋㅋ. (감독이 상상하는) 한국 사람이 얼마나 가족주의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지, 그리고 그것을 애국과 동치시키는지, 결국 마지막은 세계(특히 미국)의 도움을 받아 어영부영 문제를 해결해 내는지 같은걸 시퀸스 단위로 해석해주셨을텐데 아쉽... 아니 저도 기술력과 구성이 너무 아쉽더군요. 연기자, 세트, CG 전부 빳빳하니 좋은데 인형 놀이를 하는 분이... (아직도 관제 센터에서 협업 대화 핑퐁이 기억에 남는군요 ㅠㅜ) 올 해 개봉한다는 [외계+인 2]를 기다려 봐야겠습니다. 여기도 분위기는 안 좋은데 저는 차라리 이 쪽이 더 나았는데 흑흑.
2023.08.07 16:34
어엇 감사합니다만... 저는 어떤 실패작을 조목조목 뜯어보는 그런 행위를 최대한 안하고 싶네요 ㅎㅎ 안그래도 제가 팔로우하는 어떤 영화인분께서 보자마자 이 영화 쌍욕을 갈기시더라고요 ㅠ
2023.08.07 16:47
아앗... 그럼 저는 제 몫을 했다는 것에 만족하겠습니다 ㅋㅋ. 그래도 거듭 언급했지만 영상 자체의 퀄리티에는 만족스러웠던 점이 있네요. 욕은 하고 싶지 않고.
2023.08.07 16:08
2023.08.07 16:36
아오 ㅋㅋㅋ 어디서 SF 장르 탓을 ㅋㅋㅋㅋ
2023.08.07 16:51
이제 기술력은 충분히 준비되었고, 이정표적인 작품만 나오면 될 것 같습니다. 냉정히 생각해보면 다른 나라에서도 말끔한 SF을 찍어내진 못 하니까 앞으로도 꽤 걸리지 않을까 싶어요. ([공각기동대]라던가를 떠올려보면...) [옥자]나 [설국열차]도 아주 마음에 들진 않았었고. 감정과잉이 한국 특산물이라면 맥락이라도 와닿았어야 했는데 거기까지 관객에게 잘 납득을 못 시킨게 안타깝습니다.
2023.08.07 21:06
저번에 '오징어 게임'으로 K-신파 및 K-드라마가 해외에서 신선하고 훌륭하다! 라는 반응을 끌어내는 걸 다 함께 목도한지라 그 버릇(?)이 쉽게 고쳐질 것 같진 않습니다. ㅋㅋ 오히려 전보다 더 맘 편히 지르면 질렀지(...)
2023.08.08 09:04
요새 그런 궁금증이 들긴 하더라구요. 극장 수익으로 순익분기점 계산을 보통 하는데, 내려가고 난 이후에는 버는 돈을 따로 계산하는지 아니면 손익을 메꿀 수 있는지요. 폭삭 망하진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확실히 이 작품도 외국 사람들이 자막으로 보면 느낌이 좀 다르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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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읽기만 해도 고통이네요. 김용화는 국뽕이 아니면 영화를 못만드는 걸까요? 그 망할 놈의 케이감성 진짜 신물이 납니다.
헐리우드에 뒤지지 않는 기술력을 가지고 적당한 신파 쥐어짜내기로 천만영화만 노리는 그 감성이 개짜증납니다 ㅋㅋㅋㅋ
보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잔오님의 장렬한 희생이 제 지갑을 구해냈네요 ㅠ